영국육아 158

[+1263days] 어린이집에서 배우는 것

누리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서 누리가 일방적으로 졸졸졸 따라 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이쁘게 생긴 빨간곱슬머리 영국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누리보다는 작지만, 부모 모두 영국인이어서 그런지 말(당연히 영어)을 잘했다. 누리는 그 아이를 친구보다는 언니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누리는 "친구"라고 했지만. 9월에 시작되는 학교부설 유치원의 신청마감이 1월에 있었는데 그때 그 아이의 아빠가 런던 밖으로 이사를 가는데, 이사갈 곳 유치원에 신청하려니 현재 사는 동네에 신청을 해서 전학을 가는 형식으로 옮겨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며 다른 부모와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그 아이, 누리가 졸졸졸 따라다니는 빨간곱슬머리 아이가 떠나갈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봄학기 중간방학이 끝나고 어린이집으로 돌아갔..

[+1259days] 정직한 신호

아파서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누리가 낮잠을 자고 있다. 아프면 빠지지 않는 낮잠. 몸이 아프다는 신호면서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쉬는 것이다. 참 자연스럽고 참 정직하다. 누리는 아파도 잘 노는 편인데, 아프기 전엔 늘 먹는 게 신통치 않다. 먹는 게 신통치 않아 아픈 건지, 아파서 잘 안먹는건지 늘 그 이유가 궁금하다. 잠들기 전까지 스템프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3일째되는 감금 생활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숨겨둔 장난감을 하나 방출했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지비와 통화 중인 전화기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더니 잠으로 빠져버렸다. 내 위에. 화장실에 다녀오고서 불을 끄지 않았는지 불 켜면 돌아가는 환풍기는 한 시간이 넘도록 세~세~ 돌아가고 있다. 뚜껑을 열어놓은 스템프 잉크 패드도 한 시간이 넘도록 잘 ..

[+1256days] 쿨한 육아

누리가 체육 수업을 받는 동안 보통 유모차를 두는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어느 날은 다른 엄마들, 그리고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동생들과 있었는데 아이 하나가 자신의 체구에 맞지 않게 큰 덤프 트럭 장난감을 들고 가다 철퍼덕 넘어졌다. 앞서 가던 엄마가 뒤돌아보며 "괜찮아? 도와줄까?"하고 물었다. 아이는 "아니"하면서 어기적 일어났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 같으면 달려 갔을텐데', '나도 다음엔 저렇게 해야지'하고 생각했다. 이곳에도 애착육아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들이 있지만, 아이들이 적당한 나이가 될 때까지 함께 자고 유모차보다 아기띠/캐리어를 사용한다, 전반적으로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한국과는 다르다. 좀 착찹하다고 해야하나. 한마디로 쿨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육아는 물론..

[+1241days]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

1.2002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할 때('지역선거'가 아니라 아직 '지방선거'인가?) 진보정당의 후보였던 K선생님이 여성당원, 지지자들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부산시내 걸어보기 - '교육, 복지' 뭐 이런 테마로 그런 선거운동을 했다. 그때 그 그림(사진)을 보면서 '그래 맞기는 한데 좀 스타일리쉬(?)하지는 않는 선거운동이네'하고 생각했다.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애 딸린(?)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정말 아이키우는 엄마들에겐 절실한 거였구나 싶다. 내가 아파도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지비가 회사를 쉬어야 하는 처지면서 하우스푸어로 런던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 키우기엔 한국보다 여기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착각(?)을 하게 되는 게 바로 그거다. 아직은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와 하루를 견..

[+1223days] 아이 눈높이 언어

예전에 한 선생님이 아이들이 하는 말은 귀신에게서 배우지 않는한 모두 부모에게서 온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 오늘 오후 런던 남쪽에 있는 한국마트에 다녀오면서 누리를 잠들게 하지 않으려고 옆에 앉아서 끊임없이 떠들었다. 보통 오는 길에 잠이 드는데, 늘 깨고나면 문제다. 피곤한 만큼 잠을 채우지 못한 탓인지 한참을 운다. 어찌 낮잠을 건너뛰었는데 잠들 시간이 되어서도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면서 잠들기를 거부한다. 겨우 책을 들고 침대에 눕는데까지 성공. 누워서도 침대 밖으로 나갈 껀수만 찾는 누리. 잠들기 전에 꼭 머리에 똑딱이 헤어핀을 꽂아야 한대서 "잘 때 머리 아프다고 안된다"고 했더니 "(머리핀을)위에 꼽으면 누워도 귀만 아프지 위는 괜찮다"고 해..

[+1210days] 아주 흔한 일

아주 흔한 일 저녁을 먹으려고 준비를 마쳤는데 누리님이 숨바꼭질을 꼭 하셔야겠단다. 물론 누리님은 지비가 퇴근하기 전 이미 저녁식사를 마친 상태. 늘 하던대로 나는 먼저 먹겠다 하였고, 지비는 내 뒤에 먹겠다 하였다. 식사를 교대로 하는 일은 누리가 아기 때나 지금이나 아주 흔한 일이다. 지비가 한국에 가면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먼저 식사를 마친 엄마나 언니에게 누리를 맡겨놓고 둘이 앉아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분의 손이 없는 우리는 식사를 교대로 하는 일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밥을 먹다보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렇게 손이 가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런 음식은 할 수도 없다, 한 시간 오븐에서 익힌 음식을 '즐길' 사이도 없이 쓸어 넣듯 5분 만에 먹어야 한다. 드물게 있는 일..

[+1207days] 육아와 커피

그 동안은 누리 뒤만 쫓아다니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다. 가끔 비슷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을 보면, 그 아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 코가 석자인데 내가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그냥 말을 삼켰다. 나도 내가 힘들 땐 옆에서 아무리 고운 말을 해도 그 말이 고맙게만 들리지 않았다. 연애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case by case라고 사람마다 상황따라 다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유독 육아에서는 경험이 더 중요시 되는 느낌이다. 각종 정보와 웹사이트에서 찾은 혹은 주변에서 전해주는 그 경험이 내 아이의 경우에 맞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들어맞지 않을 때, 그 때는 문제가 된다.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보면 육아도 아이와 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점에서 연애와 다를 게 있을까..

[+1197days] 육아에서 안되는 일

가끔 놀이터에 뜬금없는 복장으로 나타나는 아이들이 있다. 한 여름에 겨울코트를 입고 오는 아이도 있고, 때도 아닌데 백설공주 옷이나 근육질의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오는 아이도 있다. 요즘은 '겨울왕국 frozen'의 엘사 옷이 대세. 비가 오지 않는 날 장화를 신은 아이는 늘 있는 정도. 처음 그 아이들을 볼 땐 귀엽기도 하고, 부모가 안됐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 부모 마음이 팍팍 이해가 간다. 어제 새로 산 장화. 신던 장화가 작어져 비가 많은 가을부터 사려고 했는데 한국 다녀오고, 어린이집 가고 어영부영 하다보니 못샀다. 샀어도 바빠져서 장화 신고 공원 산책할 틈이 없었을 것도 같고. 어제 커피 마시러 나갔는데 클락스 clarks 절반 가격으로 할인해서 9파운드에 팔고 있길래 냉큼 샀다. ..

[+1179days] 반칙

누리가 어린이집에 처음 간 날 소개해준 선생이 자기 소개 카드를 써오라고 파란 A5 사이즈 종이를 줬다. 그 종이를 보고 지비는 왜 안써가냐고 묻곤 했는데 "어린이집 계속 다닐지 말지 결정을 못해서"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랬다. 얼마 전 체육수업을 마무리하면서 내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마음을 정했다. 일단 내년 7월까지는 이 어린이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금쪽 같은 2시간을 쪼개 자기 소개 카드를 만들었다. 나는 애들 숙제 부모가 하는 거 싫어한다. 반칙이니까. 그런데 동시에 내가 그런 부모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ㅜㅜ ) (그런데 이 카드는 아이들 목소리로 부모들이 만드는 거란) 이런 거 잘해가는 것도 다른 엄마들에게 민폐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오리고 붙이고(..

[+1148days] 어린이집과 기다림

영어에 마일스톤즈milestones라는 말이 있다. 한국말로 '표지석'쯤 되는데, 의미있는 변화/성장를 이르기도 한다. 그런탓에 육아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아이가 기었다거나, 걸었다거나 그런 때 쓰인다. 오늘이 누리에게 있어서 그런 날이다. 우여곡절을 겪고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가게 됐다. 주 5일 하루 2시간 45분인데 누리는 오후반. 9월에 2011년 9월~2012년 8월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자리를 채우고 난 다음 빈자리를 채우는 격이어서 오후반이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그다지 일찍 일어나지 않는 누리로 봐선 나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주 5일 밖에 안된다는 행정편의적 발상 때문에, 나는 주 2~3일 정도를 희망했다, 시작부터 주 5일을 하게 되었다. + (윗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