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1223days] 아이 눈높이 언어

토닥s 2016. 1. 25. 07:55
예전에 한 선생님이 아이들이 하는 말은 귀신에게서 배우지 않는한 모두 부모에게서 온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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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런던 남쪽에 있는 한국마트에 다녀오면서 누리를 잠들게 하지 않으려고 옆에 앉아서 끊임없이 떠들었다. 보통 오는 길에 잠이 드는데, 늘 깨고나면 문제다. 피곤한 만큼 잠을 채우지 못한 탓인지 한참을 운다.
어찌 낮잠을 건너뛰었는데 잠들 시간이 되어서도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면서 잠들기를 거부한다. 겨우 책을 들고 침대에 눕는데까지 성공. 누워서도 침대 밖으로 나갈 껀수만 찾는 누리.
잠들기 전에 꼭 머리에 똑딱이 헤어핀을 꽂아야 한대서 "잘 때 머리 아프다고 안된다"고 했더니 "(머리핀을)위에 꼽으면 누워도 귀만 아프지 위는 괜찮다"고 해서 날 깜딱 놀라게 만들었다.
누워서 머리에 꼽았던 핀을 뽑아들고 만지작 만지작하길래 내가 한 마디 했다.

나: 그렇게 들고 있으면 잊어먹는다.
누리: 아니 안먹어.
나: ...

할말을 잃은 나는 '아 바른말/표준어를 써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나: 잃어버린다.
누리: 아니 안버려.
나: ...

두 번 할말을 잃었다. 저 듣고 싶은 말만, 그리고 마지막 말만 기억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냉장고나라 코코몽의 로보콩이 "그렇게 하자콩"하고 말하는 것인가 싶었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주기 위해 마지막에 강조점을 주면 아이들은 그것만 기억할테니.

앞으로 이런 아이들의 특성에 유의해서 말해야겠다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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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없는 오늘의 사진.

한국마트에서 발견한 붕어빵틀. 예전에 이 붕어빵틀을 한국서 사올까 고심했던 적이 있었는데 사왔으면 울뻔했다. 물론 이 붕어빵틀을 오늘 사지는 않았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들린 리치몬드 공원 까페.
셋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으며 지비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일년 전에 이런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여전히 누리를 데리고 집을 나설 땐 누리의 끼니가 주요 고려 대상이지만, 예전만큼 준비하지 않고 집을 나설 수 있다. 간단한 아이용 샌드위치를 살 수 있는 까페만 가면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정도는 먹일 수 있으니까.

갈 길이 여전히 먼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까지 많이 오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