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육아 158

[+1071days] 누리-신데렐라

오전에 축구수업을 하고 들어와 점심을 먹고 집안 청소를 했다. 보통 오전에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집을 나서는 편인데 요즘 날씨가 비가 잦아서 비가 오지 않으면 당장 나가서 볼 일(놀이터, 장보기 등등)을 먼저 보고 청소 같은 건 뒤로 미뤄둔다. 청소하면 누리는 재빨리 달려가 청소기를 꺼낸다. 사실 꺼내려는 의지만 있을뿐이고 꺼내지는 못해서 내가 꺼내 주어야 한다. 청소기를 꺼내 가장 약한 출력으로 켜주면 한참 동안, 나름 집안 구석구석을 끌고 다니며 청소(하는 시늉)를 한다. 그 동안 나는 간단한 욕실 청소를 하고 바닥 닦을 막대걸레를 씻어 놓는다. 그 다음 청소기를 건내 받아 쒹쒹쒹 헤치운 다음 누리에게 막대걸레를 쥐어주면 집안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끌고 다닌다고 할뿐 닦는다고 하긴 어렵다. 그 동안..

[+1047days] 못말리는 오지랖

내년 1월이 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만 5년을 살았고, 이 동네에서는 6년을 살게된 셈이다. 올해 봄 M님을 만나기 전까지 한국 사람을 본적이 없는데 그 이후 봇물터지듯 한국사람을, 그것도 아이를 둔 엄마들을 만나게 됐다. 그래봐야 도합 4명이지만. 그 중에서도 M님과 Y님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두어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Y님과 인근 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날 M님도 청했다. 그래서 3명의 한국엄마 3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그런데 유아 3명은 좀 쉽지 않았다. 공원 놀이터에서는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는데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펍에선 쉽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지러지게 운다거나 고집을 피운다거니 하는 일은 없었지만 3명의 아이들을 모두 만족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러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1041days] 매일매일 홀리데이

누리가 교육 시스템 속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가 방학을 하면서 이런저런 할 거리들도 모두 방학/휴식기에 들어갔다. 심지어 도로마저 한산한 요즘. 모두들 방학을 맞아 떠난 것 같다. 물론 런던이라는 도시는 다른 도시에서 방학/휴가를 떠나온 사람들로 중심부를 채우고 있지만. 매일매일이 휴일인 우리가 혹은 내가 뭐가 힘드냐고 할지도 모르겠다만 매일매일 세 살이 안된 아이를 즐겁게 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즐겁게는 둘째치고 할거리를 마련해내는 게 창의력 제로인 나로써는 무척 힘이든다. 공부도 일도 잘하지는 않아도 아주 뒤처지지는 않았는데, 애 키우는 건 답이 없네. 답이 없어. 게다가 비까지 주룩주룩. 도시에서 자라고 살아온터라 날씨의 중요성을 이다지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애 키우면서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1010days] 다시 뚜벅

요며칠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 좀 부지런해져야겠다고. 언제 부지런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만. 얼마전 새로 만난 한국엄마가 아이 데리고 혼자서도 여기저기 다니는 걸 보면서 받은 자극의 결과였다. 지비는 그 엄마가 영국생활한지 오래지 않아 그런거라고 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내가 아이를 핑계로 피곤함을 핑계로 많이 위축되고 정체됐던 것은 사실이다. 혼자라도 누리 데리고 시내도 가고, 레스토랑도 가야겠다 맘 단단히 먹었는데, 그 뒤로 어디로 움직일 때마다 동행이 생겼다. 버려야 얻는다더니 그런 격인가. 며칠 전부터 오늘은 동행이 없어도 하이드 파크에 있는 놀이터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제 오후 오랜만에 친구가 연락이 와서 차 마시자기에 하이드 파크 로 약속장소를 잡고 누리와 나는 먼저..

[+969days] 핑크본능

지난 화요일 이웃이 딸을 데리고 차를 마시러 왔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내가 몸이 아파 집으로 왔다. 이웃은 막 아이의 신발 쇼핑에서 온 길이었는데 노란색 새 신발을 벗기며 쇼핑에서의 실랑이를 이야기했다. 이웃도 나처럼 핑크는 피해가려는 입장인데 아이가 핑크가 아닌 것은 신어보지도 않으려고 해서 억지로 노란색을 신겨 구입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멀지 않은 나의 미래, 혹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핑크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볼 때 사실 '왜 그렇게 키웠을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딸이 생기고보니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반강제다. 누리가 아기 때 옷을 사려고 보면 남아용 파랑, 여아용 핑크, 공용 (대체로) 회색 또는 (가끔) 노란색이다. 한번쯤 공용을 사보긴 하..

[+951days] 공포의 숨바꼭질

언젠가부터 누리가 사랑한 놀이 숨바꼭질. 아마도 어느 TV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가르치진 않았으니까. 긴긴 겨울과 겨울밤 작은 담요 한 장 가지고도 "hiding(숨기)" 할 수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점점 놀이가 문제가 되어버렸다. 문 밖에서 소리가 나면 후다닥 숨는 누리. 주로 놀이용 집이나 식탁 밑 혹은 작은 담요 아래. 그런데 후다닥 숨기에 시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다급한 마음에 울어버린다. 가끔은 후다닥 숨다가 여기저기 부딪히기도 하고. 특히 지비가 퇴근할 때는 정도가 심해 지비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한 십 여분간은 매일 같이 울음바다다. 지비로서도 환영받고 싶은데 자기를 보면 자지러지게 울기부터하니 짜증이 한계에 달했다. 지비의 퇴근뿐 아니라 집의 벨이 울릴 때..

[+946days] 아이들의 밥상

어제 아동센터에서 만난 이웃과 오늘 오전 놀이터에서의 소풍을 약속했다. 소풍이라 별개 아니라 점심을 싸들고가서 놀이터 벤치에 앉아 먹는거다. 나는 누리가 밖에서 먹을 수 있을만한 치즈+완두콩+버섯+새우가 들어간 짭짤한 번을 구웠고 혹시 몰라 햄과 치즈만 식빵 사이에 넣은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보통 번엔 잘게 자른 베이컨이나 햄을 넣는데 독일인 이웃의 남편이 무슬림이라(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베이컨과 햄을 대신해 새우를 넣었다. 그리고 스푼과 포크 없이 집어 먹을 수 있는 사과와 포도를 준비했다. 가서보니 이웃 아이의 점심은 여기서 라이스케이크라고 불리는 손바닥만한 쌀뻥튀기와 프렛젤 과자 그리고 건포도였다. 아이가 먹는게 그거라고 그렇게 준비해온 이웃. 한 시간쯤 뛰어놀다 허겁지겁 번을 먹던 누리는 친구가..

[+863days] 누리이모 리턴즈

또 페이스북으로만 올라갔던 근황이다. 누리이모 리턴즈 이게 좀 복잡했다. 처음 누리이모의 여정은 런던 1주일 + 터키 2주일 + 다시 런던 1주일이었다. 그런데 런던으로 떠나오기 며칠 전 언니가 지원한 연구보직의 인터뷰가 1월 20일께 잡혀 대학친구들과 함께하는 터키 여행도 줄이고, 뒤에 있던 런던 일정은 아예 없애게 되었다. 서운한 마음이 그득했지만, 인터뷰가 잘되면 언니도 좋고 여름에 다시 유럽에 올 수 있을 것 같아 내 마음은 그냥 고이 접어야했다. 친구들과의 터키 여행 일정을 일찍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와 다음날 다시 한국으로 가기 위해 온 언니가 신청한 연구보직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정을 조정하느라 쓴 비용도 비용이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줄여야 했던 여행일정이 무척 아깝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