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969days] 핑크본능

토닥s 2015. 5. 16. 07:17
지난 화요일 이웃이 딸을 데리고 차를 마시러 왔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내가 몸이 아파 집으로 왔다. 이웃은 막 아이의 신발 쇼핑에서 온 길이었는데 노란색 새 신발을 벗기며 쇼핑에서의 실랑이를 이야기했다. 이웃도 나처럼 핑크는 피해가려는 입장인데 아이가 핑크가 아닌 것은 신어보지도 않으려고 해서 억지로 노란색을 신겨 구입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멀지 않은 나의 미래, 혹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핑크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볼 때 사실 '왜 그렇게 키웠을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딸이 생기고보니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반강제다.

누리가 아기 때 옷을 사려고 보면 남아용 파랑, 여아용 핑크, 공용 (대체로) 회색 또는 (가끔) 노란색이다. 한번쯤 공용을 사보긴 하지만 같은 스타일의 옷도 공용이 1~2파운드 더 비싼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옷을 선물 받은 일이 별로 없지만 있다면 90%쯤은 핑크 계열.
아이용 가구만 해도 그렇다. 놀이용 테이블을 사려고 하니 파랑과 핑크 그리고 흰색 밖에 없어 한참을 망설이고 미루었다. 아이용 가구니까 흰색을 가급적 피하려고 했다. 그러다 같은 디자인에 연두색이 추가 되어 냉큼 샀다. 얼마 전엔 누리 침대와 서랍장을 샀는데 역시 색상은 파랑과 핑크뿐. 한참을 미루어도 새로운 색상은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핑크를 피해가고자 파랑을 사자니 그것 역시 지나치다 싶어 그냥 핑크로 샀다. 놀라운 건 누리의 반응이다.

누리는 아직 '블루'라는 단어는 알지도 못하는데 '핑크'는 안다. 그리고 (나로써는 문제인데) 핑크를 좋아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색상을 손에 쥐어주면 핑크를 외치는 누리. 거참 이상하다 싶다.

옷을 살 때 하도 아들이냐 물어서 파랑과 핑크 중에서 사야한다면 핑크를 사기는 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핑크는 피하고, 옷 스타일도 너무 소녀스러운 것은 피했다. 그런데 집을 나설 때 누리는 서랍장에서 가장 소녀스러운 것들을 골라와 입겠다고 한다. "프리티 프리티 pretty pretty(예쁜 것 예쁜 것)" 외치면서. 주로 핑크 혹은 붉은 색상 계열. 그리고 원피스 등등. 처음엔 '애가 왜 이런가?' 생각도 했다가 '너무 피한 반작용인가?' 하고도 생각했는데 알 수가 없다. 영국 아이들 프로그램엔 여자 아이들이 주요 캐릭터로 많이 나오지만 특별히 소녀적인 캐릭터들이 아닌데 어디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

핑크는 여자 아이들의 본능인가?

심지어 오늘은 우유를 핑크 컵에 마시겠다고 난리. 우리 집엔 핑크 컵이 없다. 이유식 통이 절반은 파랑 절반은 핑크였는데 아직도 그 용기들을 냉동용으로 수납장에 넣어놓고 쓰고 있다. 수납장을 열고 닫을 때 본 것이다. 결국은 그 이유식 용기에 우유를 담아 마셨다.




처음엔 핑크가 유전인가 생각했지만 내가 물려준 게 없으니 유전이랄 수는 없고 본능인 것 같다. 사회적 본능. 알게 모르게 가랑비처럼 스며든 본능.

아.. 어쩐다.. 나는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