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육아 166

[+1259days] 정직한 신호

아파서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누리가 낮잠을 자고 있다. 아프면 빠지지 않는 낮잠. 몸이 아프다는 신호면서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쉬는 것이다. 참 자연스럽고 참 정직하다. 누리는 아파도 잘 노는 편인데, 아프기 전엔 늘 먹는 게 신통치 않다. 먹는 게 신통치 않아 아픈 건지, 아파서 잘 안먹는건지 늘 그 이유가 궁금하다. 잠들기 전까지 스템프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3일째되는 감금 생활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숨겨둔 장난감을 하나 방출했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지비와 통화 중인 전화기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더니 잠으로 빠져버렸다. 내 위에. 화장실에 다녀오고서 불을 끄지 않았는지 불 켜면 돌아가는 환풍기는 한 시간이 넘도록 세~세~ 돌아가고 있다. 뚜껑을 열어놓은 스템프 잉크 패드도 한 시간이 넘도록 잘 ..

[+1256days] 쿨한 육아

누리가 체육 수업을 받는 동안 보통 유모차를 두는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어느 날은 다른 엄마들, 그리고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동생들과 있었는데 아이 하나가 자신의 체구에 맞지 않게 큰 덤프 트럭 장난감을 들고 가다 철퍼덕 넘어졌다. 앞서 가던 엄마가 뒤돌아보며 "괜찮아? 도와줄까?"하고 물었다. 아이는 "아니"하면서 어기적 일어났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 같으면 달려 갔을텐데', '나도 다음엔 저렇게 해야지'하고 생각했다. 이곳에도 애착육아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들이 있지만, 아이들이 적당한 나이가 될 때까지 함께 자고 유모차보다 아기띠/캐리어를 사용한다, 전반적으로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한국과는 다르다. 좀 착찹하다고 해야하나. 한마디로 쿨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육아는 물론..

[+1241days]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

1.2002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할 때('지역선거'가 아니라 아직 '지방선거'인가?) 진보정당의 후보였던 K선생님이 여성당원, 지지자들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부산시내 걸어보기 - '교육, 복지' 뭐 이런 테마로 그런 선거운동을 했다. 그때 그 그림(사진)을 보면서 '그래 맞기는 한데 좀 스타일리쉬(?)하지는 않는 선거운동이네'하고 생각했다.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애 딸린(?)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정말 아이키우는 엄마들에겐 절실한 거였구나 싶다. 내가 아파도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지비가 회사를 쉬어야 하는 처지면서 하우스푸어로 런던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 키우기엔 한국보다 여기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착각(?)을 하게 되는 게 바로 그거다. 아직은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와 하루를 견..

[+1211days] 그림 같은 풍경

한 마디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지비가 운동을 하느라 늦게 오는 수요일을 제외하고 저녁 설거지는 지비와 누리 몫이다. 이 뒷모습을 보고 "아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야"라고 했더니 "정말 힘들다"는 지비. 둘에서 어찌나 싸워대는지. 누리는 거품 가득 스폰지로 닦겠다며 사방팔방 거품을 튀기고, 지비는 그릇 미끄럽다 떨어진다 깨진다 조심해라를 계속 반복한다. 속내는 그러하나 뒷모습만은 참 아름답다 - 고 해두자. + 여행용 가방을 꺼내면 누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가방을 밀고 나간다. 그런데 잘 넘어지기도 하고, 일반도로는 공항의 매끄러운 바닥과는 달라 잘 밀리지 않으니 함께 밀어줘야 한다. 누리가 돕는다고 하는데 나는 배로 힘이든다. 나는 가방을 앞으로 밀고, 누리는 가방을 아래로 누르니 당연한 결과다. 그래도 ..

[+1210days] 아주 흔한 일

아주 흔한 일 저녁을 먹으려고 준비를 마쳤는데 누리님이 숨바꼭질을 꼭 하셔야겠단다. 물론 누리님은 지비가 퇴근하기 전 이미 저녁식사를 마친 상태. 늘 하던대로 나는 먼저 먹겠다 하였고, 지비는 내 뒤에 먹겠다 하였다. 식사를 교대로 하는 일은 누리가 아기 때나 지금이나 아주 흔한 일이다. 지비가 한국에 가면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먼저 식사를 마친 엄마나 언니에게 누리를 맡겨놓고 둘이 앉아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분의 손이 없는 우리는 식사를 교대로 하는 일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밥을 먹다보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렇게 손이 가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런 음식은 할 수도 없다, 한 시간 오븐에서 익힌 음식을 '즐길' 사이도 없이 쓸어 넣듯 5분 만에 먹어야 한다. 드물게 있는 일..

[+1207days] 육아와 커피

그 동안은 누리 뒤만 쫓아다니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다. 가끔 비슷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을 보면, 그 아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 코가 석자인데 내가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그냥 말을 삼켰다. 나도 내가 힘들 땐 옆에서 아무리 고운 말을 해도 그 말이 고맙게만 들리지 않았다. 연애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case by case라고 사람마다 상황따라 다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유독 육아에서는 경험이 더 중요시 되는 느낌이다. 각종 정보와 웹사이트에서 찾은 혹은 주변에서 전해주는 그 경험이 내 아이의 경우에 맞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들어맞지 않을 때, 그 때는 문제가 된다.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보면 육아도 아이와 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점에서 연애와 다를 게 있을까..

[+1197days] 육아에서 안되는 일

가끔 놀이터에 뜬금없는 복장으로 나타나는 아이들이 있다. 한 여름에 겨울코트를 입고 오는 아이도 있고, 때도 아닌데 백설공주 옷이나 근육질의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오는 아이도 있다. 요즘은 '겨울왕국 frozen'의 엘사 옷이 대세. 비가 오지 않는 날 장화를 신은 아이는 늘 있는 정도. 처음 그 아이들을 볼 땐 귀엽기도 하고, 부모가 안됐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 부모 마음이 팍팍 이해가 간다. 어제 새로 산 장화. 신던 장화가 작어져 비가 많은 가을부터 사려고 했는데 한국 다녀오고, 어린이집 가고 어영부영 하다보니 못샀다. 샀어도 바빠져서 장화 신고 공원 산책할 틈이 없었을 것도 같고. 어제 커피 마시러 나갔는데 클락스 clarks 절반 가격으로 할인해서 9파운드에 팔고 있길래 냉큼 샀다. ..

[+1186days] 학부모

오늘로 이곳 대부분의 학교들은 2주간의 크리스마스 방학에 들어갔다. 종교재단의 학교들이나 사립 학교들은 지난 주부터 방학에 들어간 곳도 제법된다. 종교재단의 학교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방학이 긴 건 이해를 하겠는데(이곳들은 부활절 방학도 길다), 수업료가 비싼 사립학교들이 긴 방학을 하는 건 이해가 안간다면서 지비와 웃었다. 누리가 가고 있는 어린이집 역시 학교와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기에 오늘로 2주간의 방학에 들어갔다. 오늘은 이번 학기의 마지막으로 오전/오후 반 아이들 모두 모여 캐롤을 부르고 부모들이 준비해온 점심을 먹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갈까 말까를 끝까지 벼르다 마지막에 누리에게 좋은 경험이 되길 바라며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일하게 있는 다른 한국 엄마가 파전을 준비해간다고 음식 리스트..

[+1179days] 반칙

누리가 어린이집에 처음 간 날 소개해준 선생이 자기 소개 카드를 써오라고 파란 A5 사이즈 종이를 줬다. 그 종이를 보고 지비는 왜 안써가냐고 묻곤 했는데 "어린이집 계속 다닐지 말지 결정을 못해서"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랬다. 얼마 전 체육수업을 마무리하면서 내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마음을 정했다. 일단 내년 7월까지는 이 어린이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금쪽 같은 2시간을 쪼개 자기 소개 카드를 만들었다. 나는 애들 숙제 부모가 하는 거 싫어한다. 반칙이니까. 그런데 동시에 내가 그런 부모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ㅜㅜ ) (그런데 이 카드는 아이들 목소리로 부모들이 만드는 거란) 이런 거 잘해가는 것도 다른 엄마들에게 민폐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오리고 붙이고(..

[+1178days] 혼자서 보내는 오후

나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먼저 보낸 사람들에게 했던 질문이고, 요즘 내가 많이 듣기도 하는 질문은 "누리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이다. 내가 들었던 대답은 대부분 청소, 장보기, 일처리(?) 이런 것들이었다. 앞서 어린이집을 보낸 경우는 주 3일 하루 반나절 보내면서 한 달에 500여 파운드를 내야하는 경우여서 나는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너무 비싸고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는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나도 장을 보거나 청소하는 데 시간을 쓰기는 썼다. 나머지는 시간들은, 최근 2~3주 정도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열심히 썼다. 집에서 까페에서. 사실 카드를 쓰는 시간보다 바뀐 주소체계에 맞추어 새로운 도로명 주소와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