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235

[20161220] 식사하셨어요?

한 선배가 전한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보여줄 게 없는, 평소에 잘 못먹는 사람들이 음식사진을 찍는다고. 그 글을 읽고서도, 그리고 그 전에도 열심히 음식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확실히 그 글 이후 음식 사진을 덜 올리게 됐다. 부끄러운 속내를 들킨 기분이었다고나. 그래서 찍어만 놓고, 폴더로 묶어만 놓고 묵혀버린 사진들. 그러면서도 계속 찍게 되는 건 습관일까? 그냥 그날 그날 먹은 것들 가볍게 올려보려고 한다. 이렇게 먹고 산다고. 라면 포장지에 담긴 '조리예'처럼 달걀이 익혀진 라면. 누리 우동 끓이랴, 챙겨주랴 정신없는 가운데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본 누리 뒷처리를 해주랴 여러 가지 일 동시에 하며 라면을 끓였다. 달걀 넣을 타이밍을 놓쳐 더 끓이면 라면이 너무 익..

[+1547days] 당신이 잠든 사이

한참 동안 블로그를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 열흘. 누리가 아파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올리자니 블로그가 육아일기를 넘어 병상일기가 될 것 같아 참았다. 아이가 아프면 나의 스트레스 게이지도 올라가서 어디에라도 하소연 하고 싶은 것인지.누리의 감기인지 독감인지는 거의 다 나았지만 가끔 콜록콜록 깊은 기침을 한다. 그런데 누가보든 애가 지금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 어제 오늘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있다. 어린이 집에 가면 또 두 시간 내내 밖에 나가 놀 것이 눈에 보여서. 누리가 아프기 전 같이 어울려 노는 아이 두 명이 아파서 어린이집을 며칠 쉬었다. 그 주에 어린이집 선생도 두 명 며칠 결근. 그리고 지난 주 월요일 오후부터 다른 친구 하나와 함께 누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누리의 담당 ..

[+1537days] 아이가 빠져나간 동안 - 부모 시간

누리가 폴란드 유아 스카우트를 시작할 때 지비는 누리가 없는 2시간 동안 뭘할까 생각했다. 인근 공원까페에서 커피 한 잔하면 되겠다며 좋아(?)했다. "나는 책 읽을테니 2시간 동안 나한테 말걸지 말라"고 했다. 매정하다 싶겠지만 정말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내겐 절실하다. 첫 번째 스카우트는 낯설어하는 누리 덕분에 두 시간 꼬박 참관을 했다. 두 번째 스카우트에는 지비가 취미삼아 하는 운동의 승격시험이 있어 장거리 & 장시간 외유. 결국 내가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두 시간이 숨가쁘게 장보고 커피 한 잔 원샷하니 다 흘러갔다. 세 번째 스카우트인 오늘 누리를 데려다주고 둘이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게 없어 상점들이 몰려 있는 리테일 파크 내 까페로 갔다. 평소에 누리 데리고..

[life] Christmas is around the corner

한 해 한 해를 보내보니 이렇다. 일단 2월엔 발렌타인데이, 3월~4월엔 부활절, 5월엔 어머니의 날, 6월엔 아버지의 날, 7월엔 바베큐와 여름휴가/방학, 10월엔 할로윈, 11월부터 크리스마스, 12월 말에 박싱데이, 해를 넘겨 1월엔 여름휴가 예약. 소비자가 쉼없이 물건을 사고 돈을 쓰도록 광고를 한다. 특별한 계획이 없던 우리도 때마다 날라드는 전단지를 보면 뭔가 계획을 세우고 돈을 써야할 것 같은 강박감마저 생긴다. 10월말 할로윈이 끝나자말자 한 해 중 가장 큰 이벤트(?)인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마케팅이 시작됐다. 누리도 이젠 크리스마스도, 산타도 안다. 아직 선물과의 연관성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주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 때문에 카드와의 연관성은 알게 됐다. 자기에게도 카드를 달란다...

[life] 오늘은 부자예요

한국의 내 또래 친구들처럼 큰 차도 없고, 집도 없지만(있어도 태반이 빚이다, 심지어 내 명의도 아니다) 오늘은 부자다. 우표 부자. 바다 건너 갈 크리스마스 카드들은 오늘 발송 완료. 한 주쯤 쉬었다가 다시 작업 해야지. 가끔은 벽에 댄 독백 같기도 하고, 짝사랑 같기도 한데 한 가득 우체통에 밀어넣을 때만큼은 훈훈하다. (발송요금을 지불할 땐 헉헉..) + 나는 정말 올드하구나.

[+1518days] 수면양말 미끄럼방지처리하기

영국의 가정집은 바닥이 카페트다. 욕실도 카페트인 곳이 있다. 우리집은 바닥이 장판은 아니고, 시트지 같은 것으로 마감이 되어 있다. 먼지 없고, 원하는대로 물걸레로 청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바닥이 차갑긴 하다. 더군다나 바닥난방도 안된다. 전통적인 영국집에 비해서는 따듯한 편이지만 한국의 난방에 익숙한 손님들은 다들 추워한다. 우리는 늘 슬리퍼를 신으니 상관이 없는데 누리는 슬리퍼를 줘도 신었다 벗었다 하다가 어느 순간에 보면 맨발로 다니고 있다. 한국 갈 때마다 수면양말을 사와 수면양말이 아닌 보온양말로 신기고 있다. 누리가 어릴 때 산 수면양말들은 바닥에 미끄럼방지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만 5세가 가까워져 오니 그런 양말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큰 아이들은 알아서 조심할 수 있으니. 한..

[+1514days] 재영 폴란드 유아 스카우트

지비와 내가 이곳 사람이거나 이곳에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라서 인간관계가 그렇게 넓지는 않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런던이라는 도시의 특성 때문인지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많이 없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의 반복일뿐. 취미로라도 사람들을 꾸준히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누리를 생각하면 특히 더 그렇다. 변함없이 볼 수 없는 가족은 영상통화로나 만날 수 있으니. 성격상 종교생활은 어렵고, 사실 참 많이도 권유받는다, 스카우트 같은 걸 생각해본적이 있는데 그 생각을 잠시 잊고 있었다. 지난 달 한국에서 친구와 친구의 두 딸이 다녀가고 부쩍 향상된 누리의 한국어에 지비가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지척에 있어도 가지 않던 폴란드 서점을..

[life] 보리차와 라면

또 보리차를 끓였다. 누리가 감기에 들면 내가 꼭 하는 일 중에 한가지가 보리차를 끓이는 일이다. 콧물을 줄줄 흘려도 해열제/진통제를 주는 것 외에 딱히 해줄 게 없다. 그냥 물보다는 낫겠지하면서. 세상이 좋아져서 끓인 물에 10분만 넣었다 빼면 되는 유기농 보리차 티백으로 달달한 보리차를 끓인다. 그리고 라면을 먹었다. 누리가 아프면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성격이 더 예민해진다. 누리 말고 내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하루하루 미루던 누리방 커튼을 달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엎친데 겹친다더니 멀쩡하던 누리방 블라인드가 목요일에 갑자기 떨어졌다. 나를 재촉하는구나 싶어 그날 당장 창문에 버블랩(일명 뽁뽁이)를 붙이고 금요일에 IKEA에 가서 커튼 재료를 사왔다. 그런데 포장을 뜯고 보니 벽에 설치할 커..

[keyword] 노키즈존 in Korea VS 콰이어트존 in UK

노키즈존 No Kids Zone in Korea 지난 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누리가 잠든 동안 한국 뉴스를 봤다. 한국에 어린이들 동반을 금지하는 식당 같은 곳이 속속 생기고 있다는 그런 뉴스였다. 해외사례로 노키즈존을 시행하는 영국의 한 펍(pub 선술집)이 등장했다. 우리에게 누리가 생겨도, 그 이전부터 우리 부모님도 식당 같은 장소에서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도 제지 하지 않는 '요즘 젊은 부모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건 나도 싫었지만 그 부모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못했던 건 내 미래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부모가 되지 않을까보다는 내가 아이를 제지할 수 있을까다. 아이들이란 게 그렇다. 인터넷에서 이런 건으로 푸념과 비난이 오갈 때 '왜 한국 아이들만'이..

[+1469days] '다름'을 알려주기

어제 장을 보러 마트에 갔을 때 일이다. 누리가 장바구니를 끌고가는, 딱 그 장바구니만한 키를 가진 여성을 발견했다. 우리가 흔히 난쟁이라고 부르는. 지금 찾아보니 '저신장 장애/장애인'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그 여성을 보고 누리가 나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왜 작아?" 옆에 있었던 지비는 누리의 시선과 '사람', '작아' 정도를 알아듣고 그 여성을 두고 하는 말인지 바로 알아챘다. 물론 한국어여서 주변에서 알아들은 사람은 없었겠지만 나는 좀 당황했다. 누리의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작지도 않았다. "어.. 원래 작은 사람이야"라고 답해줬는데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답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일이 종종 있다. + 지난 학기에 누리와 어린이집에서 친하게 지낸 친구는 엄마가 자마이칸 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