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235

[life] 감을 깎다가

요즘은 밤마다 감을 깎는다. 딸기, 블루베리, 라즈베리의 계절이 끝났다(딸기는 스트로베리). 이제 이런 베리들은 맛없고 비싸다. 단단한 과일들의 계절이 왔다. 몇 년 전만해도 영국은 감이 참 흔하지 않은 과일이었는데, 사람들이 먹기 시작하자 수입이 늘었는지 이젠 흔한 과일이 되었다. 특히 요즘 같은 계절엔. 누리도 잘먹고, 가격도 싸서 사두고 사과와 함께 매일 밤 깎아 먹는다. 감을 깎다보니 중학교 2학년 때 단감을 좋아한다던 담임 선생님이 떠오른다. 스타일이 있는 사회 선생님이었는데, 좀 멋졌다. 어느날 좋아하는 과일 이야기를 하며 단감이라고 말했다. 보통은 수박이거나 딸기 뭐 그런거 아닌가. 홍시는 싫고 사각사각한 느낌이 좋다나. 그 이후로 (단)감을 보면 늘 그 선생님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

[life] 회사는 왜 그럴까?

지비는 로펌에서 일한다. 아쉽게도 변호사/법률가는 아니다. 로펌에서 일하는 IT 스태프인데, 하는 일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고 듣자하니 네트워킹 엔지니어라는 것 같다. 역시 잘 모른다. 회사가 자율시간 근무제와 재택근무를 도입한다고 해서 좋아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이는 회사의 변호사/법률가들에게 해당되는 일이고 이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IT 팀이 포함된 비지니스 서포트 파트는 장기적으론 주7일/24시간 , 단기적으론 8am-8pm 지원 시스템으로 운영한다며 근무시스템이 바뀌게 되었다. 두 개의 IT팀이 운영되고 있는데, 그 중 한 개 지비가 소속된 팀에선 원래 1명의 결원이 있었고, 최근 심장질환 돌연사로 동료 한 명을 잃었다. 그래서 지비 포함 3명의 팀원이 있는 팀이 8am-8pm 지원 시스..

[life] 이탈리안의 유머코드

지난 일요일 일주일 동안 우리 집에 두 딸과 함께 머물런던 친구가 다음 여행지로 떠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만 나는 심한 몸살 감기를 동반한채로. 아침 먹고 친구를 보내고 빨래 두 번 돌리고, 집 청소하고, 점심 먹고, 혼자 낮잠을 한숨잔 뒤, 장도 보고 커피도 마실 겸 집을 나섰다. 까페에 들어가 지비와 내가 마실 것을 주문한 다음 계산하고 커피를 받기 위해 바 앞에 서 있다가 누리가 마실 것 - 베이비치노 주문을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 다음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있던 직원에게 "미안한데 잠시만"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불렀다. 주문 받던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하고 내쪽으로 몸을 숙인 직원이 "어떻게 도와줄까?"하고 물었다. 내가 "미안한데 내 딸에게 줄 베이비치노 주문하는 걸 잊었..

[place] 영국박물관 British Museum

한국에서는, 그리고 나도 '대영박물관'이라고 불렀던 '영국박물관'에 지난 주 토요일에 다녀왔다. 얼마전 지비 가족이 왔을 때 갔던 곳이기도 한데, 그 때 누리와 나는 선물가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주엔 한국의 추석을 테마로 하는 이벤트들이 있어 다녀왔다. 일년 반 전에 언니가 영국을 방문했다. 언니가 차에 타서 '대영박물관'이 영어로 뭐냐고 물었다. 입국할 때 이민국 직원이 여행목적을 물었는데 '여행'이라고 답했더니 어디 갈꺼냐고 되물은 모양이다. 언니의 머릿속엔 '대영박물관'이 있어 "Great UK museum" 라고 했더니 이민국 직원의 반응이 "%$#%#$%" 그랬단다. 이민국 직원은 언니가 과연 영국을 제대로 여행할 수 있을지 걱정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서 '대영박물관'은 th..

[+1462days] 이제 만 4살

어제로 누리는 드디어 만 4살이 되었다. 어제의 기록은 어제 남기고 싶었지만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서. 올해 생일은 어린이집에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해볼까 생각했었는데, 누리 생일 앞뒤로 그 친구들 생일이 있어 우리가 미리 시간을 잡기 위해 말을 꺼내면 부담을 가질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그 친구들 중 한 명의 생일이 있었는데, 엄마가 만든 케이크와 두 개의 헬룸 풍선을 받은 아이 사진을 보니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풍선 2개 이외에도 스쿠터를 선물로 받았다. 누리는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부는 건 알지만 '생일'이라는 개념이, 생일엔 '선물'을 받는다는 개념이 아직 없다. 그래서 케이크를 먹으면 생일 막론하고 촛불을 불려고 한다. 그런데 굳이 우리가 '생일-선물..

[place]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V&A museum

런던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 곳이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이다. 볼 거리가 많고 아름답다는 것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라면 볼 거리가 너무 많은 것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건물이 아름답긴 하다. 이 박물관을 올해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았다. 작년 연말 누리와 갈 곳을 찾다 크리스마스 방학 프로그램 - 팝업 퍼포먼스가 있는 것을 발견해서 가게 됐는데 이후에도 '훈련'차원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이 팝업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 팝업 퍼포먼스는 30분 정도 길이의 공연/워크샵이었는데 시의적인 이벤트/테마를 주제로 마련한 공연이었다.나는 언젠가 누리와 공연장에 가보고 싶었는데 누리가 공연장의 어둠을 견딜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30분이나마 익..

[+1456days] 어린이집 개학

두달 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오늘부터 우리는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다. 2시간 45분이라는 길이에는 변함이 없지만 오전반으로 옮겼다. 비가 많이 오고 일찍 어두워지는 가을-겨울이라 오후반 생활도 나쁘지 않지만, 내년부터 유치원-학교에 가게되면 오전 8시 45분 등교니 연습/습관이라도 되라는 마음에 오전반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오후에 다른 무엇인가를 해볼 요량이었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겠다. 지키지 못할 약속 같아서. 어쨌든 오전/오후반 모두 100여 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인데 그 아이들 중 7~8명만 계속해서 이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니 쉽게 옮겨질 수 있었다. 다른 어린이집(주로 학교 어린이집)으로 옮겨간 수는 3~4명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유치원에 진학(?)하였다. 8시에서 8시 반 사이에 일어..

[+1455days] 잘가 그리고 고마웠다.

누리 방 만들어주기는 아직도 시작만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다. 그대로 정체만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비 아버지가 오실 즈음해서 쓰임이 적은 그리고 덩치가 큰 물건들을 집안에서 치웠다. 이베이 중고장터에 올려 새로운 물건을 사는데 더하고 싶었지만 아이들 물건이라 그런지 팔리지 않았다. 아이에게 좋은 것 새로 사주고 싶은 마음은 부모공통이었던지. 아기코트는 팔렸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가격이라 우리가 취소했다. 10파운드. 코트, 포티, 장난감 모두 싸서 얼마 전 쌍둥이를 본 친구에게 다 줘버렸다. 코트를 보내기 전 기념촬영 유모차는 일찍 팔아 치우려고 마음 먹었는데, 중고시장에 올리려니 그래도 쓰임이 생기지 않을까 하루 미루고 일주일 미루다 가장 나중에 중고시장에 올렸고, 오늘 오전 새주인이 와서 ..

[+1454days] 드디어 Cbeebies Proms!

'드디어'라고 썼지만 사실은 2주 전에 다녀온 프롬스를 이제야 올려본다. 어제 프롬스 마지막 공연 라이브를 보면서 숙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BBC Proms는 BBC에서 매년 주관하는 클래식 공연축제다. 두달 여 동안 클래식 공연이 매일 밤낮으로 로열 알버트 홀 Royal Albert Hall에서 열린다.☞ BBC Proms http://todaks.com/210 ☞ 프롬스 어린이 프로그램의 비밀 http://todaks.com/1428 치열한 예매 경쟁에서 표를 예매한 성취감이 잊혀지고도 남을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BBC의 유아채널인 Cbeebies의 프롬스 공연을 보러가게 됐다. 그날은 8월 말 공휴일이었다. 누리는 당일까지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공연장 가까이 가서 요즘 TV에..

[+1452days] 속보 - 구름다리건너기, 드디어 해냈다!

놀이터 생활 3년만에 쾌거 만 4세 생일 앞두고 매일 연습 + 요즘 누리는 놀이터에 가면 바로 구름다리로 달려간다. 한 3~4개월 발목만 잡아주면 건널 수 있는 상태였는데, 그래도 잡아주긴 잡아줘야했다. 지난 주말 지비 앞에서 혼자 대롱대롱 매달려보더니 한 주 내내 혼자 첫 칸에만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러더니 오늘 갑자기 해냈다. 자기도 신이 아는지 연달아 5번쯤하고서는 기운이 빠져 더 하지는 못했다. 나도 참 신기했고, 주변의 엄마들도 몇 살이냐고 묻고는 신기해 했다. 그게 모두 1년 반 동안 체육수업에 시간과 비용을 들인 결과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 이제 자주 가는 놀이터에서 대부분의 기구는 혼자 오르고 내릴 수 있게된 누리. 심지어 그네도 처음만 밀어주면 다리를 앞으로 뒤로 접어가며 혼자서 높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