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48

[life] 발렌타인데이가 뭐라고..

한국에서도 이런저런 상업적 '무슨무슨 날' 건너 뛰고 살던 사람인데 아이 덕분에 제대로(?) 챙기고 산다. 이번엔 발렌타인데이.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그 전날 누리와 쿠키를 구웠다. 발렌타인데이에 만들면 그날 티타임엔 먹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 전날 만들었다. 오전에 반죽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오후에 꺼내서 모양대로 잘라 굽고, 저녁 먹은 뒤에 초코렛으로 꾸몄다. 사실 내가 '사랑이 넘치는 사랑꾼'도 아니고, '베이커'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아이랑 시간 떼우는 기능이 더 많은 활동의 일부라고나 할까. 누리야 미안해.😭 보통 쿠키를 구우면 녹차 아니면 카카오 파우더를 넣는데, 발렌타인데이니까 핑크핑크한 쿠키를 만들어볼까하고 비트루트 가루를 샀다. 푸드 컬러링처럼 아주 선명한 핑크는 아니지만 나름 자연..

[life] 설날맞이

설날을 맞아 줌미팅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누리이모가 선물한 한복을 입고 세배하면 세뱃돈을 준다-고 누리에게 전했다. 그랬더니 부끄럼쟁이 누리도 세배를 하겠다고 나서기는 했는데 실수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길래 '사전녹화'를 했다. 세배와 바이올린 연주를 사전녹화해서 (누리가 그렇게 원하던) 화면공유를 통해 가족들과 나눴다. ☞ youtu.be/rIVYslV5UGo ☞ youtu.be/vZKdoKhIeXk 한국과 영국이라는 거리도 거리지만 정말 Covid가 아니었다면 생각해보지 않았을 세상이 열린 기분이었다. Covid를 통해 휴교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차례대로 영상통화를 하며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했을테다. 그런데 이제 여든살 전후인 부모님도 휴대전화에 줌앱을 깔고 설인사를 나누게 됐다. 세상이 달라졌..

[life] 우리끼리 챌린지 - 런던에서 부산까지

그래도 누리가 크리스마스 방학을 하기 전에는, 그러니까 누리가 학교에 갈 때는 하루에 9천~1만보 정도 걸었다. 100% 운동 삼아 걸은 날은 며칠 안되고, 대부분은 장을 보러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갔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던 주말 Covid 대응이 4단계로 상향되었고, 그로부터 다시 2주일 뒤 휴교와 함께 봉쇄 Lockdown가 발표되었다. 그때 지비에게 집에서 타는 운동용 자전거를 사자고 했다. 그 전에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땐 집이 좁으니 부정적이던 지비도 이번엔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가장 저렴한 접이식 자전거를 사려고 했는데, 사람들 생각이 모두 비슷하니 웬만한 운동용 실내 자전거는 품절이었다. 며칠 찾아보다 포기한 나와 달리 지비는 집요하게 재고가 들어오는지 확인했다. 1월 중반이 넘어..

[life] 렛 잇 스노우

한국에서도 눈 구경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여기서도 눈 구경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별로 불만이 없다. 눈 없는 지역에서 자라서 눈이 반가울 것 같지만, 그건 잠깐이고, 어려운 기억이 더 많다. 차 막히고, 춥고 그런. 심지어 내가 타야 할 런던에서 한국가는 비행기가 결항됐던 슬픈 기억까지. 그런데 이런 건 어른의 마음이고, 아이들의 마음은 다르다. 나도 어릴 땐 눈이 마냥 반가웠다. 이틀전부터 영국 일부지역엔 홍수경보가, 런던을 포함한 일부지역엔 눈예보가 있었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뉴스(특히 날씨 뉴스)를 보고 듣는 누리도 그 소식들어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창밖 눈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도 누리였다. 그때 지비는 빨래를 걷어 접고 있었고, 나는 화장실을 청소..

[life] 수퍼히어로(feat. 록다운)

Covid 대유행과 봉쇄를 경험하며 영국 사람들은 새삼 국민건강서비인 NHS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바로 얼마전까지 보수당 정부가 NHS를 잘라내고, 졸라매고 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굴러가게하는 사람들 - 교사, 배달 노동자, 유통업 종사자들의 노동에 고마움을 느낀다. 여기서는 봉쇄lockdown 기간 중에도 일하는 사람들을 필수노동종사자essesntial worker라고 하는데, 요즘 이들의 임금과 대우가 그에 걸맞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종종 들린다. 휴교와 함께한 두 차례 록다운을 경험하며 영국에서 '학부모들에게'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사람들이 있다. 록다운1.0때 전국민의 체육선생을 자칭하며 나선 조 윅스Joe Wicks. 운동지도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데 ..

[life] 록다운 2.0

4년 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투표로 결정되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이 영국에 사는 외국인인 우리들은 사는데 문제가 없는지 궁금해했다. 누리와 지비는 영국과 폴란드 국적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나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국적으로 살고 있으니 표면적으론 문제가 없는데, 가지고 있는 영주권이 유럽인의 가족으로 받은 것이어서 그런 조건과는 무관한 영주권으로 변경해야 한다. Covid로 어수선한 이 때에-. 그래서 어제 거의 일년 만에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이미 영주권을 받을 당시 필요한 서류들은 다 증명되었고, 카드를 새롭게 갱신하는 절차와 비슷해서 추가로 제출해야 할 서류들도 간단했다. 지문 채취와 사진을 위해서 비자센터를 방문해야 했는데, 나름 걱정을 했던지 전날 밤 비자센..

[coolture] 부모에서 양육자로

Covid 대응을 보면 영국이 아주 뒤쳐진 나라 같지만, 그건 정치의 수준이 그렇다. 물론 정치의 수준이 시민의 의식 수준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제도나 문화면에서 그 어느 곳과도 비교불가 앞서 나가 있는 것들도 많다. 국민건강서비스인 NHS가 그렇고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그렇다. 이 두 가지는 한국의 건강의료보험이나 미디어 관련 법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비와 나, 둘다 영국인이 아닌 부모로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는 BBC의 유아/어린이채널인 Cbeebies와 CBBC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웠다. 육아는 물론 영국에 관해서. 누리와 같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 방향이 100%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자란 사회(한국과 폴란드)보다는 ..

[life] Happy again(feat. 봉쇄와 전면휴교)

오늘 저녁 영국 총리가 Covid 대응 조치로 다시 봉쇄lockdown을 발표했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봉쇄와 달리 잉글랜드 내 모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간다. 2020년의 마지막 날 개학 2주 연기를 발표했지만 2주로는 해결이 안된다는 계산이 나온 모양이다. 지난 연말 영국의 국경을 닫히게 한 변종 Covid가 영국 남부를 넘어 전역으로 확산된 것이 이유인 것 같다. 전염력이 기존 바이러스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뉴스도 많지만 단순히 전염 확산 방지를 위한 기본 룰 - 개인 위생과 집합 및 이동 금지를 지키지 않는 개개인들의 행동을 질책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더 많아지고 있다. 나는 후자가 확산에 더 기여했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바이러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종이 되었어도 발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