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coolture] 부모에서 양육자로

토닥s 2021. 1. 7. 21:15

Covid 대응을 보면 영국이 아주 뒤쳐진 나라 같지만, 그건 정치의 수준이 그렇다.  물론 정치의 수준이 시민의 의식 수준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제도나 문화면에서 그 어느 곳과도 비교불가 앞서 나가 있는 것들도 많다.  국민건강서비스인 NHS가 그렇고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그렇다.  이 두 가지는 한국의 건강의료보험이나 미디어 관련 법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비와 나, 둘다 영국인이 아닌 부모로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는 BBC의 유아/어린이채널인 Cbeebies와 CBBC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웠다.  육아는 물론 영국에 관해서.  누리와 같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 방향이 100%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자란 사회(한국과 폴란드)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엔 더 나은 사회라고 98% 확신한다.

 

누리는 이제 유아채널에서 이동해 어린이채널을 더 많이 본다.  그래도 가끔 유아채널의 프로그램들을 보기는 한다.  어린이채널 CBBC에서 지비와 나도 열심히 보게 되는 프로그램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My Life라는 프로그램이다.  Cbeebies에는 My Family라는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다.  프로그램 이름처럼 아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난민캠프의 아이도 있었고, 뮤지컬 배우인 아이도 있었다.  이런 특별한 아이들이 아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안되지만, 그런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99%의 아이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보며 나와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알고, 그 사람들과 사는 세상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될 것 이다.  그런 프로그램을 한 번 본다고 아이들이 가치관이 형성되거나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아이들과는 차이가 있다.

 

최근 본  My Life의 에피소드는 엄마가 성전환을 해서 아빠가 된 내용이었다.  물론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본 에피소드는 변화의 당사자인 아빠가 대화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담겨 있었다.

 

 

 

☞ https://www.bbc.co.uk/iplayer/episode/m000pz3c/my-life-series-11-when-mum-becomes-dad

 

 

오늘 아침엔 Marrying Mum and Dad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보통은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의 결혼식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내용이다.  오늘 보여준 가족은 엄마와 K의 결혼식이었다.  K는 엄마의 동성 배우자.  개인적으로는 K를 '또 다른 엄마'나 '아빠'라고 부르지 않아 더 좋았다.

 

 

☞ https://www.bbc.co.uk/iplayer/episode/b0bkys34/marrying-mum-and-dad-series-7-14-circus

 

영국은 이제 한부모, 재혼가정 그런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TV에서 동성 가족을 보여준다고 영국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가족 형태에 동의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미디어는 두 걸음 정도 더 앞서서 사람들이 한 걸음을 옮기도록 당기고 있는 모양이라고 할까.  그런게 미디어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

 

이런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하려면 각종 등록 서류에 '부'와 '모'를 쓰도록 하는 서식이 유럽처럼 '부모1'과 '부모2'로 써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는데(parent1과 parent2) 쓰려고보니, 우리말 '부모'엔 그대로 '부'와 '모'가 여전히 들어가 있다. '그래?'🧐하고 parent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여전히 '어떤 사람의 어머니와 아버지 a person's mother or father'로 정의하고 있다.  '그래?2'🧐하고 parent의 어원을 찾아보니 '양육bring up'의 의미다.  그러면 'mother와 father’가 아닌 'parent1과 parent2'로 쓰려는 의도도 진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말을 한국어로 바꾸면 거기서 거기지만.  

 

작은 차이지만, 여기서는 학교에서 이메일을 보내올 때 '부모들에게 dear parents'라고 쓰지 않는다.  '부모와 양육자에게 dear parents and carers'라고 쓴다.  낳아준 부모와 살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그래서 '아이를 주로 돌보는 사람'을 추가해서 쓰는 것이다.   나는 이 표현이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포용하는 작지만 큰 변화며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에도 그런 변화가 스며들어 '부모에서 양육자'로 혹은 더 나은 표현으로 바꾸는 걸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