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3년 61

[food] 점심 한 그릇

일전에 집에 손님이 오면서 내 일 덜어준다고 점심시간 피해서 온다는거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손님이 점심시간에 맞춰 오는 게 좋다. 좀 마음이 바쁘긴 하지만 나도 겸사겸사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으니까. 보통은 저녁을 넉넉하게 만들어 한 끼 분은 지비가 점심 도시락으로 싸가고, 한 끼 분은 남겨두었다 내가 점심으로 먹는다. 라면을 줄여보겠다고 사두지 않으니 정말 귀찮을 땐 빵에 햄과 치즈를 올려 먹고 만다. 그러다 어떤 날은 혼자 잘 먹어보겠다고 이것저것 넣고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근데 결론은 대부분 국수 뭐 그런 한 그릇 음식이 대부분이다. 수제비 김치비빔국수 된장찌개 만두국 집에 혼자 있으면 잘 먹기가 어렵다. 그래서 예전에 결혼한 친구가, 전업주부였는데, 점심을 나가서 사먹는다고 했..

[life] 긴 욕조의 장점

지난 주에 바르셀로나의 상인이가 욕조에 물받는 중이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응 욕조 목욕?'하다가 좋다길래 '나도 해볼까'하고 날을 잡았다. 잡은 날은 요가가 있는 날인 일요일, 요가 후. 아주 오래 전에 B언니가 일본여행을 다녀오면서 사다준 입욕제. 한국에 갔을 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길래 '혹시'하면서 챙겨왔다. 나 역시도 욕조가 있는 집에 계속 살아왔지만, 여기서도 한국서도, 한 번도 욕조 목욕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왠지 물이 낭비되는 것 같았고, 욕조 청소하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목욕은 목욕탕에서 해야지!' 하면서. 지난 번 한국에 갔을 때도 "목욕탕 목욕탕" 노래만 부르고 목욕탕 갈 겨를이 없어, 3주를 있어도, 그냥 왔다. 몇 년 묵은 때를 불려 씻어 줘야 할 것 같아 상인이의 격려..

[taste] Pancake Day

마트에 가보면 일년내내 기념할 날이 있다. 마트로선 기념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상품판매기간인데, 이런 것만 부지런히 따라 가도 일년이 가득찬다. 그런 걸 상술이라고 하는데, 한 여름을 제외하고 날씨가 평평하다 못해 심심한 이곳에서는 그 상술에 휘둘려 소소한 이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아주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하여간 어젠 팬케이크데이 Pancake Day. 팬케이크데이의 유래는 부활절 전 금식기간에 앞서 기름진 음식을 먹는데서 왔다고 한다. 그게 어떻게 영국에선 팬케이크가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난주 마트에 가보니 냉장고 하나에 팬케이크만 가득 채워져있었다. 그거 보면서 '집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팬케이크 가루가 내게도 있었지' 하면서, 드디어 그 녀석을 먹어치..

[taste] 설맞이 챌린지, 만두만들기

이번 설맞이 챌린지로 만두를 만들었다. 얼마전 이웃블로그에서 손으로 만든 만두를 보고 '나도 해볼까?'하고 설맞이 챌린지로 정했다. 여기저기 만두만든다 소문은 다냈는데, 막상 하려니 쪼끔 귀찮아졌다. 특히 저녁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 고기만 안먹는 채식주의라 약간, 쪼금 더 귀찮아졌다. 그래도 새우넣고 해보자며 주메뉴인 비빔밥 준비를 끝내놓고 만두만들기 시작. 만두소는 내가 비밤밥 재료를 만드는 동안 지비에게 다지라고 맡겨두었다. 비빔밥 준비를 끝내고 결과를 보니 아주 큼직큼직하게 다져놓은거다. "더 잘게 잘게" 주문을 했지만 '식감'도 중요하다는 지비의 의견을 수용하여 그냥 만들기로 했다. 작은 대나무찜통만 있어서 그걸로 부지런히 5~6개씩 쪘다. 요건 테스트용 만두. 만두소를 만들 때 후추와 간장 조금..

[taste] 봄이 올듯말듯

봄이 올듯말듯하다. 추워서 꼼짝못하던 1월이 가고 2월이 오니 햇빛도 다르게 느껴졌다. 근데 요며칠 다시 춥네. 그래도 확실한 건 아침은 조금 더 일찍 오고 있으며, 밤의 어둠은 조금 더 천천히 오고 있다는 사실. 지난 토요일 산책갔다가 사온 무화과 한 상자. 24개 들었는데 £3.5라면서 "싸다싸다"하면서 사들고 왔다.한국에서 먹던 말린 무화과는 달아서 도저히 못먹었는데, 이건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여기선 fig라고 한다. 발음하기 어렵다. ○비에 좋다니 열심히 먹어야지 하면서 사왔다. 보통 네 개 정도 들어서 £2~3하는데. 근데 집에와서 보니 윗면이 붉으스름한 것과는 달리 아랫면은 여전히 푸르스름해서 익혀서 먹겠다고 창가에 내놨다. 지비랑 하루에 두 개씩 먹었는데 반쯤먹고 나니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

[book]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오소희(2008).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북하우스. 나에게 여행에세이는 대리만족이면서 사전정보 수집인데, '도대체 갈 것 같지 않은 아프리카의 여행에세이를 읽어서 뭐하겠누'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지나칠 수는 없어서 한 번 읽어봤다.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아프리카는 못갈 것 같다. 풍토병도 풍토병이지만, 현지인들에게 럭셔리여행 밖에 안되는 여행이 마음에 들지않고, 검은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꼬리를 물고 따라 올 것 같아서. 또 그보다 앞서 개인적으로 내 두다리와 대중교통수단으로 여행할 수 없는 곳은 '못간다' 정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여행으로 다져진 모자지간의 탄자이나 우간다 여행기. 그런 두 사람도 아프리카에서 무릎이 꺾여야했는데 하물며 나같은 사람은 ..

[life] 토요일

지비의 친구 발디가 지난 토요일 점심 초대를 했다. 어떤 사건이 있은 뒤 관계가 약간 소원했는데, 내가 임심을 했다는 이야기를 다른 친구에게서 듣고 지난해 발디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발디가 우리가 사는 집과 가까운 여자친구네로 이사를 들어오면서 좀 더 자주 보게 됐다. 중간격인 하이스트릿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이번엔 발디와 그의 여자친구 프란체스카가 점심 초대를 한 것이다.우리집에서 프란체스카집까지 걸어서 30분. 중간에 마트에 들러 디저트용 아이스크림도 산 걸 생각하면 20분이 조금 넘는 거리인가보다. 약속시간인 1시에 맞추어 도착하니 발디와 프란체스카는 금새 침대에서 나온 모습이었다. '점심은 먹을 수 있는 걸까?' 걱정했는데, 프란체스카가 준비한 커리는 어젯밤에 요리됐고, 쌀만 ..

[taste] 영계삼계탕

주말엔 주중에 못먹는, 준비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음식을 해먹는다. 대부분 고기일 경우가 많다. 요즘 들어 자주 먹는 건 삼계탕.마트에서 아무리 작은 닭을 사도 들어갈만한 솥이 없었는데 마트에 판매하는 작은 닭이 들어갈만한 솥을 구매하고선 몇 번 해먹다 말았다. 아무리 작아도 퍽퍽한 닭이 싫어서. 그러다 우연하게 발견한 Poussin. ☞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Poussin_(chicken) '이건 닭같은데?'하면서 마트 냉장고 앞에 서서 바로 검색. 750g 미만의 어린 닭이란다. '그럼 영곈데?'하면서 한 번 먹어보니 지비랑 나랑 한 끼 먹어치울 양이라 딱 쫗고, 고기도 퍽퍽하지 않아 몇 번 해먹었다. 지비에겐 '나무맛나는 치킨스프'일뿐이지만 거부감 없이 잘 먹는다..

[taste] Moleskine Petit Prince Limited Edition

별로 바쁘지도 않으면서 해가 바뀌면 꼬박꼬박 수첩을 산다. 위클리는 메모 공간이 부족하고 데일리는 메모 공간이 너무 많다. 매년 그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 위클리로 결정. 몰스킨 12months 위클리는 £10 미만인데, 어린왕자 특별판을 보고 말았다. 본 이상 잊기가 어렵다. 모든 곳이 £14.99. '그래 커피 두잔 마시지 말자'면서 흐뭇하게 주문하고 기다렸다.2012년의 마지막날이 다되가는데 물건이 도착을 안하는거다. 그 가운데 도착한 이메일. 물건이 없는데 다른 상품으로 하는 건 어떻겠니하는 이메일. 참고로 찰리브라운도 있고 스타워즈도 있다는 고마운 멘트를 뒤로하고, 그냥 '얼른 현금으로 환불해달라'고 했다. 꼭 어린왕자 특별판일 필요가 없었는데 이런 일을 한 번 겪고나니 더 간절해지는 얄궂은 사람..

[taste] 요즘은 펜네

펜네Penne는 새끼손가락 두마디만한 파스타다. 구멍이 뻥 뚫린 모양. 영국에 처음 와서는 이렇게 짧은 파스타만 먹었다. 그러다 면 종류가 땡겨서 그것만 한참 먹었다. 특히 근래엔 소스없이 올리브오일만 두르고 채소 넣어 먹다보니 두께가 두꺼운 짧은 파스타는 더 안먹게 됐다.이 펜네는 특히 두꺼워 소스 없이는 먹을 수가 없고, 그래서 더 손이 안가는 파스타인데 마트에 가니 할인을 하길래 '오랜만에 토마토 소스가 들어간 파스타나 먹어볼까?'하고 잘라진 토마토캔과 함께 사왔다. 토마토 소스의 파스타는 다져진 쇠고기를 넣고 만드는 볼로네즈가 가장 평이하다. 평이한대로 만들어 먹어더니 뭔가가 심심하다. '이 심심함의 정체는 뭘까?'하고 고민하다 '파마산 치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마산 치즈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