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 91

[day11] 긴 휴가의 장단점

휴가가 6주쯤 되니 특별한 일 없이 빈둥빈둥 보내는 일도 있다. 긴 휴가의 단점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하다. 3박 4일, 5박 6일 그렇게 정해진 휴가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겠지만. 나는 병원 두 곳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누리에겐 특별한 일이 없었던 하루였다. 내가 병원 간 사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집청소도 하고, 저는 돕는다지만 도움은 그닥 되지 않는,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할아버지의 여가생활에 참견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여가생활, 그리고 보자기 하나 뒤집어쓰고 빨간 모자/두건/망토 아이도 되었다가 하늘을 나르는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보자기가 초록색이네. + 이렇게 금쪽 같은 휴가 하루가 흘러갔다. 정말 금쪽 같이 보낸 하루.

길을 떠나다. 2017.04.11

[day05] 뽑기

런던에서 주로 장을 보는 마트에도 계산대 근처에 동전을 넣고 돌리면 장난감이 담긴 플라스틱 공이 굴러나오는 - 일명 '뽑기'가 있었다. 이 게임기(?)의 정식 명칭은 뭘까? 누리는 늘 궁금해했지만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다. 언니, 오빠들이 하는 거라고 말해줬더니 누리도 언니가 되면 하겠다고 했다. 구경하는 일은 있어도 동전을 달라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 와서 그 뽑기 기계들로만 가득 채워진 가게를 발견하고 걸어들어갔다. 누리 말고, 내 발로. 여러번 맞춰도 계속 맞지 않는 전자손목시계를 누리는 꺼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리의 애장 아이템이 됐다. 3000원 이상의 기쁨을 주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또 하자 그러면 어쩌지? + 그리고 친구들도 만나고, 먹거리 리스트에 줄을 좍좍 긋고, (거의 매..

길을 떠나다. 2017.04.10

[day04] 돌봄노동도 돌봄이 필요하다

한국 오기 전 먹거리 리스트를 만들었다. 아주 중요한 리스트라기보다 그냥 가보고 싶고, 먹어보고 싶은 걸 저장해두었다. 그 리스트에 줄을 좍좍 긋기 위해 매일 같이 나가도 부족한데 오늘은 그 모든 일을 접어두고 병원을 가야했다. day04 다리가 아파 잠을 자지 못했다고 앞 일기에 썼는데 아주머니들에 둘러싸여 일하는 언니의 의견으로는 허리가 원인일 수 있었다. 아이 키우다 허리 디스크가 많이 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월요일을 기다리는 동안 폭풍검색을 해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한국으로 오는 동안 거의 만석의 비행기에서 운 없이 다른 승객과 나라히 앉아와야 했다. 운이 없다고 썼지만 표를 두 장만 샀으니 어쩔 수 없고 당연한 일이다. 지비의 배웅, 언니의 마중을 희망하면 주말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이 ..

길을 떠나다. 2017.04.04

[day02-03] everyday holiday

휴가와서 우리가 하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무척 하찮을지도 모르겠다. 놀이터에 나가 놀고,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빵집에 가서 빵을 사먹고. 사람들이 매일매일 하는 일들이고, 우리 역시 런던에서 매일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하던 것이다. 다만 지금은 한국에서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우리에겐, 누리에겐 아주 특별한 휴가다. day 02 누리랑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갔다. 아기돼지 삼형제와 매직램프. 누리에겐 인생의 첫(만화)영화다.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을 본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영화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어둠을 부담스러워할까봐, 카툰을 보러가자고 집을 나섰다. 시차적응이 안되서 집을 나설 때도, 돌아올 때도 무척 힘들었지만 영화 자체는 ..

길을 떠나다. 2017.04.03

[day01]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긴 여정의 끝으로 어제 부모님집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이 자고 오전 10시 반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다시 9시 반쯤 잠자리에 든 걸보면 누리는 금새 시차를 극복한듯하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고. 처음으로 타본 장거리 K항공사. 기대가 높았다. 비행기는 낡고 청소가 안된 것 같았지만 좌석이 넓어서 좋았다. 좋았던 것은 잠시. 만석의 비행기에서 누리를 재우느라 꼼짝마 자세로 10시간을 날아왔다. 1시간 지연출발에 맘 상했는데 도착시간을 비슷하게 맞춘걸 보면 역시 한국 항공사. 직원들도 친절하고 다 좋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니니 그 기준으로 또 한 번 항공사를 평가하게 된다. 누리에게 제공된 기내식은 별 열 개에서 점수를 주자면 별 한 개 정도. 가져다 준 승무원의 친절함이 별 한 개다. 영양이고 뭐고 집에서..

길을 떠나다. 2017.04.01

[day12] 알쏭달쏭 의료보험

우리가 한국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누리 이름 앞으로 의료보험 청구서가 날아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의료보험 공단에 전화를 해봤다. 출입국 기록이 의료보험공단에 자동으로 공지되어 우리가 한국에 체류하면 자동으로 의료보험이 청구되는 것인데, 이번에 청구된 것은 지난해 가을에 입국했을 때 의료보험료였다. 우리는 의료보험이 일시정지된 상태기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일시정지를 해지하고 의료보험료를 내야한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출입국 기록이 의료보험공단과 공유되어 우리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은 의료보험료가 청구된다고 한다. 의료보험이 일시정지 상태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도 한국에 있는 기간만큼 무조건 의료보험료가 청구된다고 한다. 의료혜택을 받으나 마나 의료..

[day24] day after day

한국행은 day23에서 끝났지만 딱히 뭐라고 마무리를 지어야할지 떠오르지 않아 day24. 어제 음식만 먹으면 설사를 하는 누리를 데리고 대략 11시간 비행기(인천-런던 구간만)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비행기가 40여 분 연착했으니 거의 12시간. 설사하는 누리가 걱정스러워 상하 여벌 옷 3벌에 바지만 3개 더 추가하여 기내에 들고갈 짐을 쌌다. 가방은 무거웠지만 걱정하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차적응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난 누리와 함께 간식도 먹고 , 한국에서처럼 EBS U채널도 보면서 틈틈히 검색을 해본 결과 누리의 설사는 감기/중이염으로 처방받은 항생제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병을 나으려고 먹는 약으로 또 다른 병을 얻다니. 항생제 때문에 얻은 설사지만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유산균 ..

[day20] 한국병원방문기

화요일 저녁 잠시 외출하면서 누리를 부모님께 맡겨두고 나갔다. 집을 나선지 3시간만에 누리가 좋아하는 로보콩을 안고 귀가하였다. 두 시간은 잘 놀다가 한 시간은 발코니에서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누리. 누리가 그날 밤새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일어나서 한참을 울기도 했다. 그러다 이른 아침인 6시쯤 일어나 구토하고 만 누리. 특별히 열은 없어보여 물을 많이 주고 밥도 조금씩 주었다. 오후에 낮짐으로 빠져든 누리 - 아프다는 증거. 그때부터 몸에 열이 있는듯해서 영국에서 가져온 해열제/진통제를 먹이고 지켜보기로 했다. 하루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병원에 가보란 부모님의 의견에 한 걸음도 걷기 싫어하는 누리를 안고 나섰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났다. 목 안이 많이 붓고 귀 안에도 염증이 조금 있어 항생..

[day19] 흥 칫 뿡!

예전에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버스운전사였다 글을 쓰시는 분을 모신적이 있다. 그 분 책과 글을 읽으면서 짐작만했던 고단한 버스운전사분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빠듯한 쉬는 시간이 교통정체로 기점으로 늦게 들어오면 잘려나가는 식이었다(요즘은 그렇지 않겠지). 들을 땐 재미있지만 다시 한 번 새겨보면 슬픈 일화 중 그런 내용이 있었다. 한국의 버스운전사들은 운전도 잘하고, 시간도 잘 지키고, 밥도 빨리 먹고, 화장실도 잘 참을 수 있어야하는데 눈도 좋아야 한다는. 버스 정류장에 선 승객이 자신이 운전할 버스를 탈 것인지 말 것인지 멀리서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스가 다가올 때 미동도 없던 승객이 버스가 지나가면 불만신고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초능력/ 예지력 /독심술로 승객의..

[day6] 일타쌍피의 날

외숙모님이 비슷한 때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한 사촌동생네와 우리에게 밥을 해주고 싶으시다고 점심 초대를 하셨다. 사정상 사촌동생이 머물고 있는 이모네로 집결. 외국생활하고 있는 사촌과 나를 위해 닭볶음탕(닭도리탕), 아이들을 위해 햄버거 패티를 준비해주셨다. 고기를 먹지 않는 누리는 준비해간 토마토, 오이 그리고 김과 밥을 먹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사촌동생의 아이들은 나이가 많아 놀라웠지만 누리를 잘 데리고 놀았고, 영어 한 마디 하지 않는 누리는 언니 오빠들을 쫓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지인을 만나 커피까지 마셨으니 일타쌍피. +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리는 피곤을 주체하지 못해 코알라처럼 내게 매달려 왔지만 또 하나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누리에게도 나에게도. 사촌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