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239

[life] 영화 Sorry we missed you.

벌써 '보통'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고는 있었다. 보통은 커녕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 대열에 내가 끼여 있지 않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고 싶지는 않다. 나 또한 그 대열 언저리에 있는데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그 대열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닥치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그리고 열심히 해도 그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우리 사회가 그렇게 허술하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 사실을 83세의 감독은 매정하리만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Sorry we missed you 2008년 경제 위기 때 일자리를 잃은 주인공은 모기지로 얻은 집도 잃게 된다. 대출을 갚을 길이 없으니. 이런..

[+2600days] 할로윈 밤나들이

유럽에는 11월 1일을 맞아 망자의 날을 기리는 곳이 많다. 그 날에 보통 묘지를 찾는다고 하는데, 영국에선 미국의 영향 탓인지 할로윈을 점점 더 큰 축제로 챙기는 것 같다. 시장의 마케팅도 큰 몫을 하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아이가 있는 집은 이런 날을 그냥 지날 수가 없다. 우리도 그렇고. 누리는 작년에 처음으로 trick or treat이라고 불리는 할로윈 밤나들이를 나갔다. 주변에 살던 한국맘의 제안으로 나갔다 큰 재미(?)를 보고 올해는 벌써부터 할로윈을 기다려왔다. 작년까지 입던 마녀 옷은 작아져 새로 살까도 싶었는데, 다른 옷을 입고 싶다는 누리.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고양이 얼굴이 그려진 검은 드레스(원피스)와 고양이 귀 머리띠로 간단하게 꾸미고 같은 반 친구와 동네를 한 시간쯤 걸었다...

[life] 수납장 프로젝트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는 건 아닌데, 심리적으로 쫓기는 가을을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 누리는 가을학기 중간방학을 맞았고, 내 일상은 '일시정지'. 그래서 몸으로 할 수 있는 걸 이 기간에 하기로 했다. 미루고 미뤘던 수납장 마련. 한 2주 정도 틈틈이 IKEA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연구했다. 마음은 이쁘고 튼튼한 걸로 하고 싶지만 통장잔고는 정해져 있으니 취향이고뭐고 거기에 맞춰서 진행했다. 지비가 출장가서 돌아오는 날 하루 전에 집으로 배송. 돌아오는 날 바로 제작(?)시키려니 배송이 늦어질 수 있겠다 싶어 하루 전에 배송예약했다. 마침 비가 온 날이라 집에서 누리랑 각종 크라프트 & 베이킹을 하며 기다렸다. 다행히 빠진 물건 없이 도착. 그런데 막상 물량을 보니 전동 드라이버와 드릴이 필요할 것 같아 ..

[+2546days] 당신이 미안한 게 미안합니다.

누리와 BBC의 유아 채널인 Cbeebies를 보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지난 7월에 공연된 Cbeebies Proms가 방송된다는 걸 알게 됐다. Proms는 BBC에서 주관하는 클래식 공연 축제인데 2~3년마다 Cbeebies의 출연자들이 진행하는 어린이 공연이 있다. 3년 전에 누리와 갔었고, 올해도 우리는 운좋게 표를 구해서 갈 수 있었다. 운좋게 표를 사기는 했지만, 못산 사람들이 많으니, 좌석은 공연장 맨 뒤 그러니까 공연장 천정 바로 아래였다. 마침 우리가 공연을 보러 간날이 한국에서 언니가 런던으로 오는 날이여서 우리 모두 설레는 하루였다. 좌석이 어이 없게 시야가 제한된 좌석이었다. 출연진들의 정수리만 그것도 측면에서 보이는 좌석이었다. 티켓 예매가 시작되는 정시에 구입한 좌석이었는데. 지난..

[life] 다시 집으로

한국으로 간다는 글 하나 던져 놓고, 이번에는 가서 부지런히 기록을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가기 전에도, 가서도 정신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니 보름이 조금 넘는 일정을 꽉 채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나의 집'이라고 부르는 런던으로. 사실 나도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가 런던 상공에 들어서면 '이제 집이구나'라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다. 하지만 나에게 집이란 한국이라는 생각이 늘 자리잡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변하지 않을 생각과 마음인데, 시간이 지나면 바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니 다급하게 한국으로 떠나면서 미뤄둔 일들이 고스란히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어제부터 누리가 학교에 가서 하루하루 한 가지씩 헤쳐내고는 있지만, 이곳에서 하루하루가 더해지니 또 할 일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오늘 ..

[life] 언니와 런던 여행 - 칼 마르크스 묘지

언니가 런던에 도착하고 이틀은 누리가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이라 학교에 가야했다. 아침에 함께 누리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누리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언니와 인근 공원에 산책을 가기도 하고, 이제까지 런던을 5번 방문한 언니도 가보지 않은 곳 - 칼 마르크스의 묘지도 함께 갔다. 하교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와 누리를 데리고 학교 앞 공원에서 다시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을 보냈다. 물론 누리만 다시 발바닥에 땀나도록 놀이터를 뛰어다니고 우리는 그늘에서 준비해간 커피나 물을 마셨다. 학교에 아이를 등교 시키고 하교 시킬 때 부모나 보호자가 가야하는 모습, 학년 말이라고 아이들이 카드를 써온 모습을 언니는 색다르게 봤다. 보통 카드와 꽃, 초콜릿, 프로세코 정도를 선물로 들고 온다. 한국에서는 김영란법 이후..

[+2509days] 웨스트앤드의 꿈 - 뮤지컬 마틸다

언니가 런던에 오기 전 누리에게 보고 싶은 뮤지컬이 있는지 물었다. 누리는 요즘 열심히 읽고 있는 Roald Dahl의 책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마틸다를 보고 싶다고 했다. 누리의 경우는 낮공연이라야 볼 수 있는데, 아직은 나이가 있으니 2시간 반이 넘어가는 뮤지컬을 밤에 보기는 어렵다, 언니가 시간이 있는 요일과는 맞지 않아 뮤지컬 마틸다는 포기했다. 그러다 문득 누리와 동물원에 가기로 한 날을 옮겨 다른 날에 가기로 하고, 뮤지컬 마틸다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런던의 뮤지컬을 당일 아침 구매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표를 살 수 있다는 Day seat 시스템에 도전해보기로 하고 낮공연이 있는 날 일찍 집으로 나섰다. 박스 오피스가 열리는 시간에 들어갔지만 방학기간에는 day seat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life] 이번엔 Father's day

작년 여름 영국의 호수지방을 여행하기 위해 가입한 내셔널 트러스트 회원 기간이 끝나간다. 끝나기 전에 어디 더 가볼 곳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집에서 멀지 않은 햄 하우스 Ham house에서 Father's day 기념 이벤트인 Pint race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름 그대로 맥주 500ml 보다 약간 더큰 파인트pint를 들고 달리는 이벤트. 햄 하우스는 벌써 다녀왔지만, 일요일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내서널 트러스트는 영국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관리하는 일종의 자선단체/비영리기구다.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을 소유자에게서 기부 받기도 하고, 자산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유산을 구입/보존/관리하기도 한다. 보통 이런 곳을 한 번 방문할 때 입장료는 8~16파운드 정도인데, 일년에..

[English] 영국시간 9시 43분

누리가 요즘 시간/시계 읽기를 배운다. 학교에서 O시 30분 후 그리고 15분 전/후를 배운 모양이다. 집에 시간 읽기 워크북이 지난 크리스마스 때부터 있었는데 꺼내보지 않다가 지금 틈틈이 한다. 15분 전 또는 15분 후 중학교 시절 '~분 전'은 to, '~분 후'는 past라고 우격다짐으로 외웠는데 그렇게 가르칠 수는 없고 착하게 & 반복해서 알려주려니 몸 안에 사리가 생기는 것 같다. 다행인 점은 15분 혹은 ¼이 quarter라는 걸, 30분 혹은 ½이 half라는 걸 주입이나 암기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거다. 일상생활에서 그런 단어를 많이 쓰니. 그럼에도 왜 to나 past를 써야하는지, 이런 단어를 쓸대 기준이 되는 '시'는 뭘로 해야하는지 여전히 헛갈리는 모양이다. 1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