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5년 54

[life]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1

누리와 수영장에 갔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카페에 들렸다. 평일 점심 까페엔 의외로 혼자 애를 데리고 나와 간단히 요기하는 엄마들이 많다. 그 마음 팍팍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은 간단히 요기하는 노인들. 가만히 둘러보니 그렇다. 수영 뒤 허겁지겁 토스트를 먹던 누리는 우리 옆에 휠체어에 탄 할머니가 자리를 잡는 순간 딱 굳어버렸다. 할머니가 아무리 웃어줘도, 누리더러 이쁘다고 말을 걸어와도 누리가 먹던 점심을 그만 먹던 순간부터 나는 겉으로만 웃고 속은 타들어갔다. 애 점심을 먹여야는데. 어쩌다보니 또 그 할머니가 딱 누리 정면이네. 결국은 누리가 보던 책을 앞에 세워줬다. "우린 숨기 놀이 하는거야"하면서. 그러니 그 책 뒤에 머리만 숨겨서 토스트를 먹기 시작하는 누리. 간간..

[etc.] 세대차이

지비가 일 때문에 삐삐/호출기/페이저 pager를 받아왔다. 앞으로 며칠 동안 업무 이외 시간에 삐삐로 연락이 오면 인터넷을 통해 업무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그런 일. 당연히 업무 외 수당이 있다. 삐삐 한 통 오지 않아도. 이야길 하다보니 삐삐를 사용해보지 않은 지비. 대학 들어가기 전엔 이동통신수단이 없었고, 바로 모바일/휴대전화를 사용했단다. 이게 작동되는지 걱정을 해서 그렇게 걱정이 되면 뒤에 적힌 번호로 호출해보라고 했더니 그 번호로 문자 보내면 되냔다. 정말 삐삐가 뭔지 모르는구나. 이런 게 세대차이구나. 참고로 삐삐는 전화로 그 번호를 호출하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는 시스템이랍니다. 음성사서함에 음성을 남기고 호출자 번호를 입력하면 그 번호가 삐삐에 뜨는 것이지요. 또는 음성을 남기지 않고 ..

[life] 4월 16일

오늘 아침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2년 전 오늘 사진을 꺼내 추억을 나누란다. 문득 누군가의 타임라인에도 1년 전 오늘을 기억하라고, 2년 전 오늘을 기억하라고 이런 메시지가 떴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 페이스북이 참 눈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조용히 지나가려던 오늘 말문을 열었다. 2년 전 오늘 큐가든에 갔다. 이 땐 회원권이 없었을 때인데 이웃의 아이 엄마의 초대로 봄맞이 겸 산책을 갔나보다. 우연히 2015년 4월 16일 오늘도 큐가든에 갔다. 날짜를 고른 게 아니라 만나기로 한 친구의 휴일에 맞춘 것일 뿐이다. 친구는 일터의 혜택으로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나는 회원권이 있어 언제 한 번 가자 가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게 오늘이 되었다. 출입구에 놓여있던 화분 앞에 서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keyword] Council House 공공임대주택

주차장에 둔 차 앞유리가 (좀 오버하면) 박살이 났다. 지난 주 수요일 누리랑 수영장을 가겠다고 짐을 이고 지고 주차장에 갔더니 이런 상황이었다. 내가 CSI 아니라도 차 위에 찍힌 발자국이 내 발보다 작은 걸로 보아 아이들이 한 짓임을 알 수 있었다. 부활절로 2주간 방학을 맞은 심심한 아이들이었을 꺼라고 생각했다. 차가 이 모양으로 발견된 즉시 건물 관리는 자기들 책임은 아니라며 CCTV 등 경찰 조사에는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발뺌을 했다. 문제는 당시 주차장 문이 고장나 활짝 열려 있어 관리측과 좀 다툴 문제가 남아 있다. 그런데 지비는 싸우고자하는 투지가 없어 내가 투사로 나서야할 판이다. 그 사이 경찰이 보고서 작성과 지문 채취를 위해 두 번 다녀갔고, 지금은 CCTV를 수거해서 범죄 장면(?)을..

[life] 지비 생일

벌써 몇 주 전에 지나간 지비 생일. 한 달 채우기 전에 남기려고 했는데, 한 달 다되어 간다. 바나나 케이크 생크림 케이크 한 번 만들어볼까 했는데, 몇 가지 검색해보니 전기 핸드 블랜더 없이 케이크 다운 케이크를 만드는 건 무리. 거기다 생크림까지. 쉽게 포기했다. 세상 별로 어렵게 살지 않으니까.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 아쉽다 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바나나 케이크. 일전에 구워봤던 바나나 로프(☞ http://todaks.com/1130 )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은데 비쥬얼은 케이크라 해도 억지 같아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구워봤다. 생일 선물로 9시까지 자게 내버려두고 누리와 함께 일찍 일어나 휘리릭 구웠다. ☞ 참고한 레시피 http://www.bakingschool.co.kr/recipe/reci..

[food] 사과 파이 데니쉬 Apple pie danish

마트에 장을 보러가면 마트에서 만든 무가지/잡지를 종종 들고 온다.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트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누리 손에 쥐어주면 꼼짝않고 들고 있다. 그것이 마치 사명인 것처럼. 그 동안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집에 돌아와서 틈날 때 펼쳐보면 신천지가 따로 없다. 맛있고 예쁜 것들로 가득차 있다. 이런 기분을 느끼라고, 그래서 구매하라고 마트에서도 돈 들여 그런 것들을 만들겠지. 예전엔 그 잡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음식들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음식처럼, 그 조리법들이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읽어내기도 난해했고, 재료들도 낯설었는데 이젠 그-으-렇게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음식재료들이 조금은 익숙해지기도 했고, 조리법들도 대충은 가늠이 된다. 여기 음식들은 재료가 낯설어서 그렇지 대..

[life] 시간

대학 마지막 학년에 들었던 보도사진 수업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봤다. 교수님이 현직 사진기자였나, 전직 사진기자였나 하여간 그랬다. 그분이 들고오신 디지털 카메라(코닥이었던 것 같다)는 마치 폴라로이드를 연상시키는 모양새면서 가격은 무려 백만원대. 그런데 백만화소였다. 졸업 후 잠시 일했던 일터에도 디지털 카메라가 있었는데 소니 S75. 당시 가격 역시 무려 백만원대였다. 자세히는 백이십만원쯤. 그런데 삼백만화소. 요즘 같으면 휴대전화 카메라가 (비)웃을 일이다. 그랬던 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관광지 카메라 키오스크. 이젠 필름을 팔기보다 디지털 카메라를 위해 건전지를 팔고 메모리를 팔며 급속충전을 할 수 있다. 참 시간이 많이 흘렀나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내 앞에는 앞으..

[food] 호두 크림치즈빵 Walnut Cream Cheese Bread

한국가면 즐겨하는 일 중에 하나가 빵집에 가는 일이다. 여기엔 식빵 아니면 케이크 식이여서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달달한 빵들이 그립다. 단팥빵, 슈크림빵 그런 것들. 멀리 살며 대단한 것이 그리운 게 아니라 이런 소소한 것들이 그립다. 머핀, 로프 케이크들을 구우면서 빵 굽는 법을 찾아보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과정이 있었다. '밀가루에 구멍을 파서 소금, 설탕, 이스트를 넣고 서로 닿지 않게 섞는 과정' - 왜 이 과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냐면 어차피 섞으면 닿을텐데 어떻게 닿지않게 섞는지 '글자 그대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 동영상, 포스팅을 본 다음 '밀가루 코팅'이라는 표현을 보고서야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빵 만들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빵은 ..

[life] 일주일의 일상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추모의 침묵 지난 화요일 누리와 이웃의 아이가 꺼내놓은 동화책을 책장에 다시 넣다가 종이에 손이 베였다. 어떻게 베였는지 알 수 없어도 종잇장 끝에 피가 묻어났을 정도로 베였다.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오후에 햇살이 좋아 누리를 데리고 놀이터에 다녀왔는데, 열심히 놀았는지 돌아오는 길 유모차 앉아 잠이 든 누리. 집안에 들어와 유모차를 살며시 세워둔채로 누리도 더 재우고, 나도 좀 쉬기로 하였다.휴대전화로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아는 분이 가족을 잃었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담담하지만 무거운 슬픔이 읽히는듯해서 어떤 위로의 말도 찾지 못하고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어버렸다. 계속 위로가 될만한 말을 찾았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 가까이 있으면 남아있는 가족 그리고 할 수..

[life] 죠나 żona

어제 오전 동네 공원 안에 있는 까페에서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이 만남의 시작은 지난 화요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 이제 나타나셨어요!" 지난 화요일 이웃의 아이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공원에 가자고 했다. 날씨는 추웠으나 비는 오지 않았으므로 그러마 했다. 약속 시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이웃이 없는 것이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늘 이런 식이다)해서 이왕 나왔으니 누리 혼자라도 조금 놀리다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웃이 전화가 왔다. 공원 내 있는 아동센터에 있다고. 아이들과 노래하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데 이쪽으로 오지 않겠냐고. 딱히 마음이 끌리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워서 그러기로 했다.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 절반쯤 지났을 때였고, 누리는 시끄러운 오디오 소리에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