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동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추모의 침묵
지난 화요일 누리와 이웃의 아이가 꺼내놓은 동화책을 책장에 다시 넣다가 종이에 손이 베였다. 어떻게 베였는지 알 수 없어도 종잇장 끝에 피가 묻어났을 정도로 베였다.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오후에 햇살이 좋아 누리를 데리고 놀이터에 다녀왔는데, 열심히 놀았는지 돌아오는 길 유모차 앉아 잠이 든 누리. 집안에 들어와 유모차를 살며시 세워둔채로 누리도 더 재우고, 나도 좀 쉬기로 하였다.
휴대전화로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아는 분이 가족을 잃었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담담하지만 무거운 슬픔이 읽히는듯해서 어떤 위로의 말도 찾지 못하고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어버렸다. 계속 위로가 될만한 말을 찾았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 가까이 있으면 남아있는 가족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떠나간 가족까지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럴 수도 없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 멀리 있다.
그래서 침묵하면서 며칠 보냈다. 가볍게 웃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지 않으면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떠나간 분과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한 추모였다.
한 번도 만난적이 없는 한 사람을 추모하면서 생각보다 내 앞에 이러한 이별들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는 사실도 생각하게 됐다. 일본에선 일반인들도 유언장을 쓰는 키트kits가 있다고 하지만(법적 효력과 상관없이 주변을 정리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것의 일환으로), 이러한 이별에 준비라는 게 있을 수 있나 싶다.
내가 할 말을 잃은 것과는 별개로 일상은 그대로 굴러간다. 밥도 먹고, 산책도 가고. 그리고 늘 그랬던 것 마냥 누리는 또 감기에 걸렸다.
또 감기
소소하게 바쁘게 보낸 일주일이었는데, 어젯밤 누리 숨소리가 심상치 않다 싶더니 목감기가 왔다. 새벽에도 깨서 한참 동안 힘들어했고, 오늘 낮에도 가끔씩 깊은 기침을 토했다. 평소와 같지 않은 느낌에 본인도 어쩔 줄 몰라 울곤했다. 그 평소와 같지 않은 느낌은 고통인데 누리는 그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날라온 이메일 - 아마 NHS였을테다 - 에 보니 영유아들은 평균적으로 일년에 10번 정도, 어린이집과 같은 집단 생활을 시작한 경우는 12번 정도 감기에 걸린다고 한다. 가만히 돌아보면 누리는 그 평균치에 훨씬 못미치는 수지만, 누리가 고통을 감당할 줄 모르는 것처럼 나도 누리의 감기를 감당하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오래 전에 약속된 만남이었지만 기침을 토해내는 아이를 데리고 온 이웃을 원망하기도 하였고,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와 도서관에 온 엄마들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흔한 감기쯤이야' 생각하는 영국의 사람들을 지비와 함께 씹기도 하였다.
아니다. 종잇장에 손 좀 베였다고 호들갑 떨지말고, 이런 일로 투정 말자. 지금까지 크게 앓지 않고 자라 준것도 고마운데. 그냥 얼릉 나아라, 누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