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5년

[life] 죠나 żona

토닥s 2015. 3. 2. 06:29

어제 오전 동네 공원 안에 있는 까페에서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이 만남의 시작은 지난 화요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 이제 나타나셨어요!"


지난 화요일 이웃의 아이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공원에 가자고 했다.  날씨는 추웠으나 비는 오지 않았으므로 그러마 했다.  약속 시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이웃이 없는 것이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늘 이런 식이다)해서 이왕 나왔으니 누리 혼자라도 조금 놀리다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웃이 전화가 왔다.  공원 내 있는 아동센터에 있다고.  아이들과 노래하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데 이쪽으로 오지 않겠냐고.  딱히 마음이 끌리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워서 그러기로 했다.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 절반쯤 지났을 때였고, 누리는 시끄러운 오디오 소리에 끼지도 못하고 내 다리만 붙잡고 있었다.  끝날 때쯤 비누방울 놀이, 공 놀이가 있어 잠시 어울린 누리.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많은 조부모가 있어서 놀라웠다.  정말 영국의 풍경도 변하고 있는 것인지.  그 중에 아시안으로 보이는 아이 엄마가 한 명 있었다.  영국이니까, 런던이니까 하고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웃과 나는 조금 더 아이들을 아동센터 옆 놀이터에서 놀리기로 했다.  누리가 놀이터 미끄럼틀이 빠져서 반복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이 이웃은 아이 기저귀를 갈러 다시 아동센터에 다녀왔다.  그 때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아시안 아이 엄마가 나한데 한국말로 "한국 사람이세요?" 그런다.  깜짝 놀랐다.  상대방은 내가 누리에게 한국말을 하는 걸 보고 한국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고.  그런데 그 상대방은 아이에게 줄곧 영어로 이야기해서 나는 어디 필리핀 정도 되는가 했다.


이야기해보니 M님은 영국생활 10여 년 했고 누리보다 한 달 빠른 아들을 둔 엄마.  M님도, 나도 이 동네 한참 살면서 처음 한국 사람본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M님이 하신 말씀이 "(날더러)왜 이제 나타나셨어요!"였다.  혼자서 아이 키우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비슷한 나이 아이들이니 같이 키웠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날더러 아이에게 한국말 하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본인은 아이가 말이 느리니 좀 중심을 잃었다고, 영어를 더 많이 쓰게 된다고.  그러면서 아이가 3개국어를 해야하니 어렵다고.  "누리도 (3개국어) 그래요!"하면서 이야기하다보니 그 집도 아이 아빠가 폴란드 사람!  공원에서 막 웃었다. 반가운 마음에 꼭 다시 만나자고 연락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어제 다시 만났다.


M님의 남편은 일이 있어 못오고 M님과 우리 둘 그리고 두 아이가 공원 안 까페에서 만났다.  이런저런 아이 키우는 이야기하다보니 시간이 금새 흘렀다.  오후에 지비가 운동을 가야해서 이른 점심을 먹어야겠기에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일어났다, 다음에 만나기를 기약하면서.




폴란드인 남편의 한국인 아내 - 죠나[각주:1]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 한국인 '아내'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  이 블로그를 하면서 비슷한 경우 - 한국인 아내와 폴란드인 남편 - 커플을 둘 정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는 동생 B 소개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Y님도 알게 되었고.  이로써 런던에 우리와 같은 경우는 세 커플 알고 있었는데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M님까지 이제 하나 더 늘었다.


폴란드는 역사도, 국민성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런 폴란드 남편과 영국이라는, 폴란드도 아닌 한국도 아닌 곳에 사는 한국인 아내들의 이야기는 '아내' 프로젝트에서 꼭 따로 가지 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물론 영국엔 영국인 말고도 다양한 국가의 남편들과 부부가 된 한국인 아내들이 많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우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손바닥 마주쳐가며, 맞장구치며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폴란드인 남편의 한국인 아내는 따로 가지 치고 싶었다. 


언제쯤 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 고개 두 고개


M님이 아이가 '조금' 자라서 이제는 견딜만 하다고.  아이가 어릴 때가 더 힘들었고, 그 때 만났으면 서로에게 더 힘이 되었을꺼라며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만나게 되서, 아이들도 서로 친구할 수 있어서 너무 반갑다고 하셨다.  그렇긴 하지.  '조금 견딜만'하게 되었지.  '괜찮은 정도'가 될려면 아직 멀긴 하지만서도 한 고개 두 고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나 지비가 들고나면 다른 일을 하다가더 번쩍 일어나던 누리는 이제 지비가 운동을 간다고 손을 흔들며 나가도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끝났다는 걸 더 아쉬워하고, 먹던 토마토를 다 먹었다는 걸 더 아쉬워한다.  벌써-.



  1. 폴란드어로 아내가 żona라고 한다. 아내들은 żony.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