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9년

[life] 푸드 로망 - 생크림 케이크와 치킨 로스트

토닥s 2019. 12. 25. 08:51

먹는 걸 두고 거창하게 로망식이나 싶겠지만, 자라면서 먹던 음식을 맘껏 먹지 못하는 환경에 살고 있으니 그렇다.  늘 먹고 싶은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내게는 한국에서 먹던 빵류와 케이크류가 그 중 한 가지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빠리 빵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머핀도 만들어보고 쿠키도 만들어보면서 꼭 만들어보고 싶은 건 케이크와 빵이다.  빵은 반죽기, 제빵기가 없으니 엄두를 내기 어렵고, 케이크 정도는 핸드 블랜더로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연말을 앞두고 핸드 블랜더를 구입했다.  아무래도 연말엔 디저트류를 구울 일이 많다.  핸드 블랜더 구입후 야심차게 도전했던 마카롱은 더 이상 도전하지 않는 것으로 정했고, 이번엔 생크림 케이크에 도전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은 빵틀이 없어 기존의 빵틀을 이용해서 구웠더니 아주 앏은 빵이 만들어졌다.  빵은 딱딱하고, 생크림은 녹아내리는 기분이라 만든 걸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25일 지비의 사촌형네 가져가려던 생크림 케이크는 쿠키로 대체했다.  생크림이 녹아내려 보관은 어렵겠다며 다 먹어버렸는데, 먹고나서 나의 살림 자문인 J님께 사진을 보내면서 빵은 딱딱했고 생크림은 녹아내리더라고 했더니, 하루 정도 냉장고에 묵히면 빵은 촉촉해지고 생크림은 좀 단단해 진다고.  벌써 다 먹어버렸는데-.

어쨌든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생크림 케이크, 해봤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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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선 미국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 파티에 칠면조를 먹는다.  유럽에선 이브엔 생선을, 크리스마스엔 고기를 먹는터라 우리는 주로 이브엔 해산물을 먹어왔는데 누리가 이번 크리스마스엔 통으로 구운 칠면조를 먹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본 공연에서 산타의 테이블에 놓여있던 통칠면조의 영향이었다.  우리는 사람수가 적으니 닭으로, 작은 닭으로 합의해서 올해 처음으로 통으로 구워본 닭.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통으로 구워본 건 나도 처음.

크리스마스의 대표 음식이라는 브러셀 스프라웃(미니 양배추)도 베이컨+밤과 볶아냈다.  지난 주말 초대 받아간 지인 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요크셔 푸딩, 이름만 푸딩이고 빵대신 먹을 수 있는 빵(?)이다.  닭을 구워낸 오븐 팬에 스프 스톡과 밀가루를 풀어 찍어 먹는 소스도 만들었다.  처음으로 사본 크랜베리 소스까지.  대충은 갖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었다.  이것으로 로스트에 대한 누리의 로망도 조금 해소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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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절도 그렇지만, 이곳의 크리스마스도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먹는 것으로 끝난다.  날씨가 추워서 밖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더 그런 것도 같다.  밖에 나간다고 하면, 나가서 장을 보는 정도.  그래도 누리가 있는 우리는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 오고 가는 길에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시간을 잠깐씩 보낸다.  이 겨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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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예전보다 줄여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  영국의 문화가 카드를 많이 보내기는 하지만, 그래서 우리도 제법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인사치레는 빼고 한 줄이라도 꼭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만 보냈다.

그런데 오늘 생각치도 않은 사람들에게서 크리스마스 카드가 쭈루룩 왔다.  벌써 크리스마스라 답장을 보내기는 어렵겠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서라도 꼭 보낼 생각이다.  그 동안 내가 보낸 마음이 그저 벽에 한 독백은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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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이 많지 않은 블로그지만 오가는 모든 분께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합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