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9년

[life] 나이 feat. 배+생강+계피+통후추

토닥s 2019. 11. 21. 21:01

특별한 계기 없이, 그저 피로 누적으로 얻은 감기가 오래가고 있다.  한 2주 전 며칠 목이 깔깔하더니 열이나 몸살도 없이 목소리가 가버렸다.  소리도 안나고 쉰소리만 나고 있다.  약, 사탕도 소용이 없고 다급한 마음에 내 손으로 배, 생강, 계피, 통후추를 넣고 끓여 마셔봤다.  별 효과는 없었지만, 목이 답답할 때마다 커피, 차, 유자차 골고루 끓여 마시기도 번거롭고, 남겨둔 생강 반토막과 배 2개가 있어 한 번 더 끓여 마시기로 했다.  생강 껍질을 까다가 나도 모르게 '아 향이 좋네'하고 생각하다 깜짝 놀랐다.  마늘, 생강 몸에 좋다는 건 다 싫어했던 사람인데-, 나이가 든건가 싶어서.


음식을 하면서 마늘, 양파, 파를 많이는 쓰지 않아도 꼭 쓴다.  이제 파까지는 가끔 즐기게 됐지만 아직도 마늘, 양파는 지비에게 몰아주곤 한다.  지비는 한국가서 고기 구워먹으면 구운 마늘도, 심지어 생마늘까지도 먹는다.   나는 평생 먹어본적도 없는 구운 마늘을 맛있다고 먹는다.  어쨌든 대표 초등입맛인 내가 무의식중에 생강 향이 좋다고 생각해서 깜짝 놀랐다.  나이가 들면 먹는 취향도 변하는 것인지.


문득, 대중문화이론 시간에 마흔을 넘긴 교수님이 아직까지 트롯트는 본인 취향 아닌데 자신도 나이가 들면 트롯트가 좋아질지 의문이라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로부터 15년 훌쩍 지났으니 교수님은 지금 연구실에서 트롯트를 들으실지도.

어느날 생각하니 대학교 1학년 때 늙었다고 놀려먹던 선배들의 나이를 내가 훌쩍 지나 있었다.  그때 선배들 나이 스물 여섯, 일곱.  그리고 다시 어느날 생각하니 서른 한 살로 이 세상을 떠난 김광석보다도 내가 나이가 많았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더더더더 나이가 많다.  그래서 감기가 쉽게 낫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몸은 진실이자 자연이니 어쩔 수가 없다.  얼른 배+생강+계피+통후추 물이나 마저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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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지난 화요일 터키 상점에서 모과를 발견했다.  한국처럼 단단한 모과는 아니지만 모과는 모과.  잘라서 설탕과 버무려두었다.  이것도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