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9년

[life] 영화 Sorry we missed you.

토닥s 2019. 11. 13. 09:00
벌써 '보통'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고는 있었다.  보통은 커녕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 대열에 내가 끼여 있지 않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고 싶지는 않다.  나 또한 그 대열 언저리에 있는데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그 대열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닥치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그리고 열심히 해도 그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우리 사회가 그렇게 허술하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 사실을 83세의 감독은 매정하리만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Sorry we missed you

2008년 경제 위기 때 일자리를 잃은 주인공은 모기지로 얻은 집도 잃게 된다.  대출을 갚을 길이 없으니.  이런저런 일자리를 떠돌던 주인공이 마침내 찾은 일은 택배.  사실상 관리감독을 받지만 사용할 차도 직접구입을 해야 하는 이른바 자영업자 self-employed.  방문 요양보호사 아내의 이동수단인 차를 팔아 택배차의 계약금을 마련한다.  아내가 버스로 이동하며 힘들게 일을 해내는 동안 주인공의 일은 점점 꼬여만 간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 자기와는 다른 삶을 바랬던 아들도 문제아로 학교에서 쫓겨날 처지.  엎친데 겹친 격으로 주인공의 택배일도 평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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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극장에 종종 간다.  누리 방학이면 꼭 하루는 간다.  본의 아니게 아동용 영화를 빠짐 없이 보고 있다.  우연하게 본 이 영화의 소개 글을 보고, 하루 꼬박 컴퓨터 앞에서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고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보고 싶었다.

20대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기 위해서 사람을 만났다.  대략 일년에 50여 편 영화를 봤고, 거기에 공부+일+영화제를 더해 70여 편은 봤던 것 같다.
영국에서 보낸 30대.  십 년 동안 영화를 네 다섯 편 본 것 같다.   그래서 박차고 나가 본 영화인데-, 일단 나이가 들어도 무뎌지지 않는 감독이 놀라웠다.  영화를 보며 흘린 눈물 덕에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라도 찬물로 세수한 것마냥 정신이 번쩍 드는 영화였다.  맞다, 우린 이토록 매정한 현실에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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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와서 마주한 쇼핑몰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추운 날씨에도 화사하고 포근하면서도 활기차 보이는 풍경.  그 뒤에 가려진 매정한 현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정신 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