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3년

[life] 토요일

토닥s 2013. 1. 29. 20:09

지비의 친구 발디가 지난 토요일 점심 초대를 했다.  어떤 사건이 있은 뒤 관계가 약간 소원했는데, 내가 임심을 했다는 이야기를 다른 친구에게서 듣고 지난해 발디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발디가 우리가 사는 집과 가까운 여자친구네로 이사를 들어오면서 좀 더 자주 보게 됐다.  중간격인 하이스트릿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이번엔 발디와 그의 여자친구 프란체스카가 점심 초대를 한 것이다.

우리집에서 프란체스카집까지 걸어서 30분.  중간에 마트에 들러 디저트용 아이스크림도 산 걸 생각하면 20분이 조금 넘는 거리인가보다.  약속시간인 1시에 맞추어 도착하니 발디와 프란체스카는 금새 침대에서 나온 모습이었다.  '점심은 먹을 수 있는 걸까?' 걱정했는데, 프란체스카가 준비한 커리는 어젯밤에 요리됐고, 쌀만 익히면 된데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이었는데 맥주랑 와인이랑.( ' ');

새우를 넣은 커리였는데 사실 커리는 나만 코리안도 빼고 먹으니 그럭저럭 먹을만했는데, 인도쌀인 바스마티가 영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한 참 뒤에 겨우 마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실패한 것 같다.



키보드가 있어 누구꺼냐고 한 마디 물었는데, 몇 년째 쓰지 않은 키보드를 연결해서 연주해보겠다고 난리법석.  키보드는 프란체스카의 아버지 것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서 어머니가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연주할 줄 아는 프란체스카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초보라며 프란체스카가 연주한 곡은 바흐였다.  호..  또 한 번 건반 악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누리 크면 음악 수업 받게 해야지 하면서.





누리가 발디를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낯선 얼굴에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는데, 울지 않고 멍하니 쳐다만 보더란.  얼마 전에 누리를 데리고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계속 울어대는통에 고생을 했다.  베이비 마사지 세션에선 안그러는데.  아마도 소음 때문인 것 같다니 친구가 집에 있을 때 라디오든, TV든 틀어놓으라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된다.  한국 가기에 앞서 많은 사람과 공공장소에 익숙해지라고 기회가 될 때마다 데리고 다닐 예정이다.




앞에서 얼굴 보여주고 뒤에서 마스크 씌운 이유는 나나, 지비나 표정이 별로라서.( - -);;


프란체스카는 GP(보건소 격 병원) 트레이닝 중인 의사다.  아동전문의가 되려고해서 그 어느 누구보다 누리에게 관심이 많다.  몸무게며 골격이며 따져보고, 백신 접종은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아이도 잘 다룬다.  여동생에게 아기가 있다는 것 같다.  그래서 익숙한 것도 같다.  지비와 나로써는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볼 곳이 있어 좋다고 생각만 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쯤 프란체스카가 둘이 영화보고 싶거나 볼 일이 생기면 자기가 누리를 봐 줄 수 있으니 사정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 어떤 제안 보다도 솔깃했다.

예전에 커피를 마시면서 만난 프란체스카는 영국사람답게 거리가 느껴져  "참 영국사람 같다"고 지비랑 이야기했는데, 토요일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발디는 무슨 복으로 저런 영국애들만 계속해서 만나는걸까?"하고 이야기 나눴다.  문제는 그 관계가 3년이 한계치라는 것.  이번에는 발디가 그 한계를 극복하기를 지비랑 나는 간절하게 바래본다, 약간의 사심을 품고서.  흠흠..(ˇ ˇ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