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3weeks] 모유수유, 정말 모든 사람이 가능한걸까?

토닥s 2012. 10. 6. 19:38

내 임신을 옆에서 지켜본 S님은 늘 '수월해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수월한 임신'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비교적 문제없이 임신 기간을 지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물 흐르듯 지금까지 왔는데, 출산 후 정말 넘기 힘든 난관을 만났다.  바로 모유수유다.


모유수유만 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다니까 해보겠다고 계획하고 시작했다.  모유수유를 해보겠다고 하니 임신 초기 만났던 K선생님이 "모유수유, 하면 될 것 같죠?  안쉬워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어려우면 Breastfeeding Drop In Clinic을 챙겨보라고 조언을 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도 나도 모르게 모유수유를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모유수유가 그냥 되는 줄 알았나보다.  정말 안쉽다.


누리를 낳고 병원에서 바로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아니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조산사의 도움으로 누리를 안고 젖을 물렸다.  누리의 턱이 열심히 그리고 한참 동안 움직여서 모유수유가 그렇게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을 그러고 있었는데도, 그 뒤 누리는 울었다.  지비랑 내가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조산사가 와서 보고 배가 고파서 그렇다고 했다.  "젖을 물렸는데"라고 했더니 아직 모유가 생기지 않았다고 우유를 줘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유가 생기기까지 며칠이 걸리기도 하며 비록 모유가 없더라고 계속 젖을 물려야 모유가 더 빨리 생긴다고.  그래서 그 때부터 모유가 없어도 젖을 먼저 물리고, 그래도 울면 우유를 주는 패턴이 시작됐다.


집으로 돌아오고 첫번째 방문했던 조산사에게 아직 모유가 생기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니 가슴을 눌러보고, 힘껏 짜보고 곧 생길꺼라고 했다.  역시 모유가 없어도 20~30분 젖을 먼저 물리라는 조언과 함께.  누리가 태어난지 5일째 되던날 방문한 조산사에게도 모유가 생기지 않았고, 그때는 가슴마저 굳어져 아프다고 했더니 앞선 조산사와 같은 조언을 했다.  그리고 모유수유를 도와주는 조산사, Kelly의 번호를 주고 갔다.  그 번호로 며칠을 전화하고 메시지를 남겨도 답신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모유가 없는 젖을 20~30분 물리고 난 다음에 누리가 울면 우유를 줬다.  누리가 늘 울었고 먹는 우유량도 줄지 않고 있었으므로 우리도, 조산사도 아직 모유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리가 태어난지 열흘째 되던날 세번째 조산사가 방문했다.  별 문제가 없냐는 질문에 모유수유가 문제라고 대답했고, 앞선 조산사가 준 번호로 연락해도 모유수유를 도와주는 조산사 Kelly의 답신이 없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Kelly에게 전화를 했다.  세번째 조산사가 다녀가고 한 시간이 안되서 Kelly가 집으로 왔다.  그 때까지의 상황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 땐 굳어진 가슴을 약간 풀렸지만 여전히 모유는 나오지 않는다고.  내가 '악' 소리가 날 정도로 힘껏 가슴을 눌러보면 한 방울도 안되는 모유가 맺힐 듯 말 듯 했다.  보통은 아기를 안는 자세에 문제가 있지만, 내 경우는 워낙 초반부터 시도왔던터라 자세에는 문제가 없었다.  Kelly는 20~30분이 아니라 한 시간을 젖을 물리라고 했고, 우유를 주지 말라고 했다.  한 시간동안 아기를 안고 있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칭얼대는 아기를 한 시간씩 안고 있는 것도 쉽지 않았고, 밤이 되면 그 칭얼거림이 심해져 우리는 우유를 주고 말았다.  이틀 동안 낮시간 열 시간 중 대여섯 시간을 누리를 안고 젖을 물렸다.  팔도 아프고 계속 물린 탓에 가슴도 아팠다. 

금요일, 토요일 거의 굶다시피 한 누리의 뱃속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나서 지비랑 나는 Kelly의 조언대로 우유를 주지 않는 방법은 안되겠다 생각하고 한 시간을 먼저 젖을 물리되 그 뒤엔 우유를 주기로 했다.  예전에 먹던 것보다 약간 적은 량의 우유를.


그 동안 한국의 가족들은 어린 아기를 굶기면 안된다고 걱정이 많았다.  그러고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엄마도, 언니도 모유가 안나와서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엄마의 경우는 모유가 거의 안나와서 좋다는 돼지 다리, 생선 다 끓여먹어도 소용이 없어서 3개월쯤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 동안 울어댄 큰언니의 경우 분유도 먹지 않아 3개월부터 쌀미음을 먹일 수 밖에 없었다고.  그리고선 두려워서 둘째언니와 나 때는 그냥 처음부터 분유를 먹였다고 한다.  조카 둘을 놓은 큰언니의 경우는 모유도 나오지 않았고, 그때만해도 모유를 크게 권하지 않던 때라 짧은 시도 끝에 바로 분유를 먹였다고.  분만진통이 길지 않은 건 엄마와 큰언니가 마찬가지라서 그 덕을 봤나 했는데, 이런 것도 닮는 걸까?  엄마와 언니는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특히 누리 배고프게 하지 말고 분유를 주는 걸 생각해보라고 했다. 


가족력이 그렇다고하면서 포기해야 할까 하다가 모유가 잘 생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다.

☞ http://www.babycentre.co.uk/baby/breastfeeding/problemsandsolutions/lowsupply/


모유 공급이 원할하지 않는데는 다음과 같은 것이 이유가 될 수 있다고.


- 갑상선 호르몬 저하와 같은 호르몬 문제

- 유방 수술 전력이나 관련 질병

- 분만 중 과다 출혈

- 자궁 내 태반 잔여물

- 특정 약물 복용


이 대목을 읽다가 다섯 가지 중 내가 확실하게 두 가지가 해당된다는 걸 알았다.  자궁 내 태반 잔여물은 알 수 없지만 갑상선 호르몬 저하와 분만 중 과다 출혈이 내가 해당됐다.


여전히 모유가 나오지 않는 가운데 지난 월요일 Health Visitor가 왔을 때 내가 해당하는 이 두 가지가 모유수유가 어려운 이유가 될 수 있냐고 물었다.  지비는 그것이 이유라는 전문가의 판단과 의견이 있으면 나도 힘들고, 누리도 힘든 모유수유 시도를 중단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Health Visitor는 또 다른 형태의 방문 조산사다.  그녀는 분만 중 과다 출혈이 초기 모유 생성이 어려운 일시적인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지금 현재 빈혈과 같은 문제가 없다면 나의 경우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갑상선 호르몬 기능 저하의 경우도 지금 현재 약물을 먹을 정도가 아니라면 이유가 될 수 없다며, 한 시간씩 계속해서 젖을 물릴 것과 우유주는 것을 중단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분만한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이 할 수 있는 게 모유수유라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면 된다"고.


'하면 된다'라는 말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따위의 말들과 함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상황을 무시한 강제로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안되겠다고 판단이 서기 전까지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러던 지난 수요일 커뮤니티 헬스 센터에 조산사를 만나러 갔다.  역시 아무 문제가 없냐는 질문에 모유수유가 유일한 문제라고 했다.  나이든 조산사가 내게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물었다.  신생아가 있는 우리가 잘 잘리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밤중에 깨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고 이야기했고, 밥은 잘 먹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내가 잘 쉬고, 잘 먹어야 모유수유도 잘 된다고.  그 짧은 말 한 마디에 눈물 날뻔했다.


그 날 오후에 집에 들른 알렉산드라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너도 나도 분유먹고 자랐지만 지금 문제 없지 않냐고.  너무 걱정말라"고. 

맞는 말이다.  그 날 마음 먹었다.  모유수유가 안되서 우유를 주게 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고.  물론 그렇게 마음먹었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지난 월요일 우연하게 지비와 본 프로그램.  Cherry Healey라는 프리젠터가 모유수유에 관한 고통담과 성공담을 보여준 프로그램.  이 프리젠터는 예전에 출산과 관련해서 다양한 옵션을 보여준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스스로의 경험담과 어우려져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지비와 나는 깨달았다.  이 프로그램 안에는 모유수유로 어려움을 겪는 산모가 나온다.  성공담을 통해 모유수유의 유익함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 몇 가지 사례 중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건 없었다.  자세의 문제에서 오는 어려움을 커뮤니티 서포터/클리닉을 통해서 극복하는 사례나 사회적으로 모유수유 지원 시설이 많지 않은 점 등이 언급됐지만.

이 이야기를 언니에게 했더니 어쩌면 인종적으로 출산이나 모유수유가 아시아인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단다.  이 곳 병원이나 조산사는 그런 차이를 부정하지만, 글쎄 완전히 부정하긴 어려운 것 같다.


모유수유 안되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과 되면 참 좋겠다는 마음도 함께 일단 해본다.


누리야 배고파도 조금만 참아보자.  나도 팔이 아파도 참아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