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1week] 누리 사브주크 신고합니다!

토닥s 2012. 9. 29. 18:17

지난주 목요일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찍은 사진들이다.  사실 출산하러 갈 때 작은 카메라를 들고 갈까 큰 카메라를 들고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출산 가방이라는 걸 싸고보니 꽤나 짐이 많아 작은 카메라를 챙겨넣었다.  하지만 정작 출산 과정에선 가방에 카메라를 꺼낼 겨를이 없어 휴대전화로만 사진을 찍고 말았다는.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지비랑 나는 아기가 자는 동안 탐색전에 들어갔다.






발도 꺼내보고 손도 꺼내보고 둘이서 "아 신기해" (^ ^ )

발을 꺼내보니 아기를 식별하는 태그가 두 발에 차여져 있어 실수로 두 발에 채웠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한 쪽이 쏙 빠지고 말았는데 그걸 겪고서 "아, 빠질 수도 있으니까 두 발에 채우는구나"하고 둘이서 바보 돌깨는 소리를 했다.



내 딸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손이 이쁜 것 같다고 했더니 문안을 온 B언니는 사정없이 "원래 아기들 손은 다 이뻐!"라고 말씀하심.( i i)

그러면서 발가락 긴 건 날 닮았다고 하심.( . .);;




한국의 가족들은 아기 눈뜬 사진을 좀 찍어보라고 하시는데,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아기들은 눈뜰 일이 잘 없다.  어렵게 포착한 사진.



멀티링구얼multilingual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지비.  폴란드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아기 표정은 알쏭달쏭한 표정.  뭔가 다르다고 느끼긴 하는건지 멀뚱 쳐다본다.



멀티링구얼로 키워진다면 좋기야 하지만 쉽지는 않아보인다.  특히 내 입장에선 한국어가.  내가 그렇게 말이 많은 타입도 아니거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집에서 자전거로 10분거리엔 폴란드문화예술센터가 있어 의지만 있다면 폴란드 이민자녀를 위한 주말학교나 어학원에 보내는 건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조금 부풀려서 동네마다 폴란드 음식거리를 파는 가게도 많고, 폴란드인을 만날 기회도 많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서쪽 런던은 일본인이라면 모를까 한국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  서쪽런던에 위치한 액튼 Acton엔 일본공립학교가 있어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음식점도 꽤 있다.

누군가가 노팅힐Notting Hill에 한인교회가 있는데 2세를 위해서 거기에 나와보는 건 어떻겠냐고.  아무리 언어가 중요하기로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직 없다.



사진처럼 볼 살이 많지는 않은데 사진으로 본 누리는 볼 살이 무척 많아보인다.  집에만 있다고 우리가 그저 아기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좀 그런 셈이긴 한데, 지비는 꽤나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원에서 오고, 만 하루를 꼬박 보낸 다음 지비가 서둘러 한 것은 출생신고.


그전까지 누리의 서류 표기명은 'Baby Kim'.  아기를 낳기 전 주말 "이제는 이름을 정해야겠다"며 지비가 '하나'와 '누리'중 정하자고 했다.  '하나'는 지비가 마음에 들어한 이름이긴 하지만, 유럽에도 '한나'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우리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한국인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름이었다.  지비는 내가 좋아한 '누리'와 '보리'중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누리'로 하자고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누리'는 출생 전에 '누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



병원에서 준 서류를 들고 나가 순식간에 출생신고를 하고 돌아온 지비.  태어난지 42일 안에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지비가 좀 이런 면에 서두르긴 한다.  지비말에 의하면 기다린 건 30분, 신고는 5분도 안걸리더란다. 

영국의 출생 신고는 의외로 간단하다.  병원에서 준 서류엔 아기의 NHS 번호가 있다.  NHS 번호는 국가의료시스템의 번호이다.  한국처럼 주민등록번호 같은게 없는 이곳에서는 NI 번호라고 고용과 관련해서 필요한 국가보험번호와 함께 개인을 인식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그 번호와 병원에서 준 신청서를 작성해 살고 있는 지역의 registry office에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registry office는 한국으로치면 호적신고 기관쯤된다.  출생도 신고하고, 결혼도 신고하는 곳.  출생 신고 과정에서 안 건 꼭 아빠 성만 성으로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면 엄마 성은 물론 아무 성이라도 물려줄 수 있다고 한다.  막말로 이름은 '누리'로 성을 '만세'로 주어 '누리 만세'라는 이름을 줄 수도 있다는 것.  이 이름은 누리가 성인이 되면 또 자신의 원하는 바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이름을 '누리 사브주크'로 신고했다고 하니 주변에선 왜 내 성을 미들네임으로 넣지 않았냐고 묻는데, 나는 굳이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름이 주는 정체성도 크지만, 정체성이라는 건 어떻게 키워지느냐에서 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요것이 누리의 출생증명서다.

얼마전 영국의 여권 신청서의 부모란이 'father'와 'mother'로 표기 하지 않고 'parent1'과 'parent2'로 바뀐다더니, 차별철폐차원에서, 출생신고는 그대로인듯.  하기야 부모라는 뜻이 낳아준 부모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는 요즘 부지런히 '증거'들을 모으는 중이다.  일전에 해럴드가 임신 축하 선물로 준 성장기록책을 채우기 위해서.  그 책에 보면 첫번째 손님란이 있어, 아기를 보러온 알렉산드라를 첫번째 손님으로 찍었다.  알렉산드라는 무지하게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친구지만 이날만은 특별히 허용.  고맙고맙. (^ ^ )


알렉산드라는 아기보기로 일한 경험이 있어 우리에게 많은 도움과 정보를 주고 있다.  누리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겠다는 야심도 가지고 있다.  폴란드인 아빠에, 한국인 엄마, 그리고 이탈리아인 아줌마까지.  '세상, 세계'라는 뜻을 가진 누리는 정말 이름답게 인터네셔널하다.  그런 걸 고려하고 지은 이름은 아닌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