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30weeks] 한 지붕 세 국적

토닥s 2012. 7. 12. 03:28

아기가 생기기 전부터도 우리에게 아기가 생기면 아기의 국적을 어떻게 할 것이냐와 같은 질문을 종종 받곤 했다.   사실 아기가 생기기 전에 우연히(?) 그 이슈에 관해서 생각하고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지비의 영국 시민권 신청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아기도 없이 '그냥' 정보를 찾아봤다.  


지비는 현재 영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유럽인은 영국 시민권자와 똑같은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굳이 영주권도, 시민권도 필요없는데, 비유럽인인 나와 (그때 당시에는) 미래에 생길지 모르는 가족을 위해 가지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영주권을 가지게 됐다.  영주권은 일종의 시민권을 받기위한 단계로 필요한 것이었지, 그 이상 이하의 의미도 없었다. 

막상 영주권을 받고 보니 나에겐 특별히 이로운 점이 없었다.  내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받는데 유럽인의 가족으로서는 5~6년이 걸리고, 영주권자의 가족으로서는 2~3년 정도가 걸린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나는 이미 앞선 경우의 5~6년의 중간 시점에 있기 때문에 유럽인의 가족에서 영주권자의 가족으로 비자를 바꾼다고해도 그 시점으로부터 2~3년이 걸린다는 건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유럽인의 가족으로서 영주권을 받는덴 전혀 돈이 들지 않지만, 영주권자의 가족으로 영주권을 받는덴 돈이 든다는 점.  굳이 내 비자를 바꿀 이유가 없었다.


하여간,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비가 영주권을 받고 1년이 지나서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시기가 됐을 때 그것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다가 '아기가 생기면?'이라는 궁금증이 발동해서 그 정보도 찾아보았다.  지비는 아기가 생기면 폴란드 국적을 주고 싶어했다.  유럽내에서는 폴란드 국적이나 영국 국적이나 사는데 차이가 없는데, 없으니까 지비는 폴란드 국적을 주고 싶다는 주장이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가 보기에 유럽 밖에서 두 국적에 대한 처우를 볼 때 영국 국적을 가지는 것이 나을 것 같았지만, 당시만 해도 눈 앞에 닥쳐온 현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 네 맘대로" 정도가 내 입장이었다.



한국 국적은 생각해본 일이 없냐고?  내가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주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당시엔 언젠가 생길 아기가 아들일지, 딸일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들일 경우 아무래도 군대가 걸렸다.  이중국적 문제는 현재는 불법이지만, 한국 기득권층의 자녀들이 해당되는 문제기 때문에 멀지않아 해결될 것으로 보고 그 부분에 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이야기긴 하지만 이십여 년 안에 통일이 되기도 어려워보이고, 물론 그 단계로 진전될 수는 있다고 본다, 더 안타깝게도 북한이 사라지게(?) 된다하더라도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적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는한 군복무제는 계속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형태가 조금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미래의 아들이 원할리도 없지만, 나는 미래의 아들을 反평화체제의 희생물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딸일 경우는 '본인이 원하면 한국 국적은 고려해 본다', 아들일 경우 '본인이 원해도 한국 국적은 안되겠다'에서 정리 됐다.


영국에서 사는 우리가 아기가 생기면 어떻게 폴란드 국적을 줄 수 있을까 알아보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문제가 생겼다기보다는 얼마나 복잡한가를 알게 됐다.  의외로 한국 국적을 주기는 쉽다.  폴란드 국적을 주려면 일단 지비와 내가 폴란드에 일종의 주민등록을 해야한다.  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여기 살면서 과정이 쉽지 않고, 폴란드에서 영국에서 각각 준비해야할 서류와 번역 공증해야 할 서류들이 만만하지 않았다.  내가 폴란드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추가적인 서류들도 필요하다.

영국의 경우는 비자 관련 법들이 무척 까다로운 편이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명확한 편이다.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 UK Border Agency 홈페이지에 시간을 투자하면 준비해야 할 비자의 카테고리, 서류, 절차 등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폴란드의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았고, 그 어려움 때문에 영국에 살면서 자녀에게 폴란드 국적을 주려고하는 사람들의 불만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지비가 영주권자이기는 하지만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된 상태에서 태어난 우리 아기는 신고만으로 쉽게 영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고, 여권도 우체국에서 신청만하면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이라기보다는 편의상 아기는 영국 국적을 가지는 것으로 아기가 생기기도 전에 정리됐다.

지비의 시민권도 이후에 내가 시민권을 신청할 때, 나는 신청할지 안할지도 모르는데, 함께 하면 비용이 준다는 이유로 뒤로 미뤘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정리하고 보니 우리 가족이 해외나들이를 하게 되면 지비는 폴란드 여권, 나는 한국 여권, 그리고 아기는 영국 여권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좀 이상하긴 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