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0년

[book]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토닥s 2010. 11. 1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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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yes24.com

진중권(2005).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휴머니스트.

 

마무리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제 이런 책 읽는게 피곤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책에 담긴 방대한 키워드를 머릿속에 쑤셔 넣으려고 애를 썼겠지만, 그러기엔 내가 책상이라는 공간과 너무 멀어지기도 했고 나이도 들었나보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뭘 얻자고 이 책을 골랐는지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언니는 "사람이(진중권이) 탐탁찮다, 탐탁찮다"하면서도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사들였고, 무조건 읽었다.  그러고선 "똑똑은 하네"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게 언니랑 나랑 차이라면 차이다.  나는 조금 덜된 인간인지라 사람이 탐탁찮으면 그 인간이 만들어놓은 위대한 결과물도 점수를 깍고 들어가는 인간형이다.  언니는 결과물과 인품을 구별할 줄 아는 인간형.

 

내가 대학을 다닐때 그의 이름이 알려지긴 했으나 그의 책엔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집어든 책이 <시칠리아의 암소>였나?  기억도 안난다.  그리고 첫장을 읽고 덮어버렸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 모든쪽을 향해 따박따박 말댓구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고나.  그런데 그거만큼 무책임한 게 있나?  그 후 신문에 실린 글 정도나 볼뿐 글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요란스럽게 민주노동당을 지지할때도, 그리고 떠나갈때도'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라 그런가'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대학생들이 민주노동당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였으니, 그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하고 그 요란스러움에 대해서는 싫다 좋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의 입장을 싫어하는 이유는 날선 비판때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사회를 향한 그의 비판은 날이 서서 따갑게 느껴질때가 있지만, 가끔 그 비판은 경계 밖에서 들려오는 공허한 울림처럼 느껴질때가 많다.  늘 반대의 반대를 오가는 사람이다보니 어떨때 저만치 왼쪽으로 가 있다가도 그쪽과 수가 틀리면 다시 반대로 이동한다.  그는 반대로 이동했을 뿐이겠지만, 왼쪽의 반대이다보니 가끔은 오른쪽 언저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한번도 내가 그를 진보진영이라거나 대안진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다.

 

꽃불은 황홀하다.  세상의 그 어떤 색깔도 꽃불의 빛깔에 비할 수 없다.  꽃불은 허무하다.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도 이렇게 짧을 수가 없다.  짧은 순간의 황홀함, 이 농축된 강력함이 꽃불의 매력이다.  이탈리아인들이 이 덧없음에서 '연인들의 키스'를 연상한다면, 일본인들은 거기서 다른 것을 떠올릴 것이다.  하늘에는 황홀하게 스러지는 '하나비', 땅 위에는 일제히 피었다가 일제히 져버리는 '벚꽃', 인간들 틈에는 제 몸을 불살라 짧은 삶을 살다 가는 사무라이.  하나비, 벗꽃, 사무라이는 일본식 존재미학의 정점이다.
위험한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하나비 속에서 '위험함'과 '아름다움'은 하나가 된다.  꽃불과 전쟁은 작열하는 모양이 같고, 폭발하며 내는 소리도 같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풍기는 냄새도 같다.  가령 여름밤의 하늘을 수놓는 축제의 꽃불과, 대공포의 연화를 헤치며 벚꽃처럼 떨어지는 가미카제는 서로 닮았다.  도덕적 판단을 접고, 순수미학적으로만 보라.  놀이와 전 쟁 어느 쪽이 더 격렬한 감동을 주는가?(진중권, 2005. pp.276~277)


좀 미안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 돌았나..' 

그의 행적과 언쟁을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도덕적 판단' 떼고, 이것저것 분리해서 생각하고 떠드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서는 안될 말도 있고, 따로이 접고 생각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전쟁을 순수미학적으로만 보라는 말은 해서는 안될 말이고, 도덕적 판단은 따로 접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싫어하 하지만, 어떤 면은 그와 닮아있는 조선일보가 그의 글을 이렇게 저렇게 잘라 이 부분을 지면에 활자화한다고 생각해봐라.  참으로.. 재미있겠다.

 

쏟아진 말도 주워담기 힘든 것을, 활자로 남은 글을 어찌할까.

 

 

책에 대한 내용으로 말하자면, 너무 많아서 머리에 쑤셔 담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굳이 쑤셔 담고 싶다는 생각이 안드는 이유는 이거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고.  깊이보다 방대함으로 승부하는 이런 책이 이제는 피곤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