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0년

[life] 잠시 멈춤

토닥s 2020. 1. 18. 02:06

아파서 연이틀 학교를 쉬는 누리 덕에 잠시 멈추어 쉬어가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도 지난 수요일 중요한 일정이 있었는데, 덕분에 한 달여 잠을 자지 못했다(준비하느라 잠을 자지 못한게 아니라 걱정하느라 잠을 못잤다), 누리는 목요일부터 결석 중.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정하고, 학교에 전화하고 그 어느때보다 천천히 아침을 먹었다.  입맛이 없어서 라떼를 밥 삼아 먹었다.


꼭꼭 씹어 먹는 기분으로 마신 라떼 덕분에, 지비가 찾은 EBS kids 링크 덕분에 누리가 아파도 수월하게 보냈다.  하루 종일 TV를 보기는 했지만, 사이사이 학교에서 내준 책도 읽었고, 폴란드 주말학교 숙제도 했다.


+


낮에 멀쩡해서 오늘(금요일)학교를 갈 수 있겠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열 때문에 누리가 잘 잠들지 못했다  덕분에 나도 밤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보다 더 뜨거워서 오늘도 결석.  이틀 달아쉬면, 그리고 주말을 조용하게 보내면 월요일은 나아지리라 믿는다.  오늘 누리를 학교에 보내놓고 생애처음 김치를 만들어볼까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한국인 지인 둘 집에 놀러 갔는데, 두 집에서 다 김치를 얻어왔다.   주신다니 넙죽 고맙게 받아왔다.  먹어보니 진짜 김치 같은 김치였다.  가짜 김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만 그 동안 사 먹고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사실 사 먹는 김치가 날이 갈 수록 매워지는 경향도 있고, 예전보다 혼자 있을 때 밥을 먹는 횟수가 많아져 김치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누리가 집에 있어서 함께 만들었다.  누리의 요구대로 오래전에 한 번 만들어본 백김치도 함께.



김치를 담아보기 위해 며칠 동안 검색했는데, 만드는 사람마다 너무 방법이 달라서 적당한 조리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의 유일한 요리책 나물씨 책을 보고 만들었다.  처음 시도하면서 두 가지를 함께 만드려니 정신이 없었다.  만들어보니 약간 큰 잼병 딱 두개 분량(이러려고 내가 고생했나 싶은).  사실 비주얼은 김치 같은데 풀맛이 많이 나고, 좀 짜다.  나물씨는 배추 반포기 분량이었는데, 내가 여기 마트에서 산 배추는 한국서 살 수 있는 배추 반포기보다 작은 크기라 그런건가 싶다.  거기다 백김치를 담기 위해 저린 배추를 나눴으니 더더더더 짜다.  언니 말로는 익히면 또 나아진다고하니 며칠 뒤에 맛을 보고 재도전해보던지, 아예 포기하고 김치는 사 먹고 살던지.  그래도 김치를 담으면 김치전을 해먹을 수 있으니 좋을 것도 같다.  


+


바쁘다면서 먹는데 이렇게 시간을 쓰는 걸보면 나도 참-.


그리고 어느날 번개처럼 내 머리를 스친 부쉬맨 빵의 추억(?).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아웃백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고기랑은 거리가 멀기도 하고, 가격이 너무 비싸기도 했고.  그래도 맛나게 먹었던 빵이 갑자기 떠올랐다.  한참 동안 내 머리 속에 부쉬맨 빵(지우개가 아니라).  그럼 먹어야지.  그래서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에 만들어본 부쉬맨 빵.  보통 카카오와 커피가 들어가는데 누리와 함께 먹을 빵이라 카카오와 보리커피를 넣고 만들었다.



누리랑 내가 만들고 우리 모두 감동한 빵.  아웃백에서 먹었던 빵보다는 좀 질긴 느낌이었지만 달걀, 과일과 한 끼로 먹기에 좋을만큼 묵직했다.  이 빵 만드느라 또 통밀 빵밀가루(강력분) 사들였으니 더 만들어봐야지.  대신 담엔 좀 많이 만들어야겠다.  3시간 노동에 아이손 반만한 크기의 빵 6개라니.  그러고보면 한국 갈 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빠리 빵집의 빵이 비싼 게 아니었다.  재료비와 노동을 생각하면.


+


가끔 한국처럼 쉽게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게 아쉽기도 한데, 덕분에 하나씩 만들어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먹거리에 관한 생각, 노동의 가치에 관한 생각 , 시간에 관한 생각 그리고 엄마에 관한 생각.  올해는 적게 먹는 게 목표인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