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7년

[life] 역시 영국

토닥s 2017. 11. 23. 22:01

멍멍이들의 천국


누리가 어릴 땐 공원과 놀이터를 매일 출근했다.  그때마다 볼 수 있는 건 나 같이 유모차를 끌고 있는 엄마들이거나 개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었다.  듣자하니 영국에선 개를 하루에 두 번 산책 '시켜야 한다'고.  그래서인지 개들이 크기를 떠나 다들 순한 편이다.  마치 아이들처럼 하루에 두 번 바깥 공기를 마시며 맘껏 뛰니 집 안에서, 다른 개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다.  물론 그래도 문제성 개는 늘 존재하겠지만.  나이든 개를 싣고 있는 개용/고양이용 유모차도 가끔 본다.  공원에서 그런 유모차를 신기해하며 보던 우리에게 그런 유모차를 끌던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여기는 개들의 천국"이라고.

오늘 장을 보러 갔더니 할로윈 상품이 빠져나간 자리를 빼곡히 크리스마스 상품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아 역시 영국이구만'했던 상품 - 개들을 위한 민스 파이.


영국에선 크리스마스에 민스 파이를 먹는다.  나는 다진 고기가 든 파이인 줄 알고 몇 년을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져서 조린 과일이 들어 있는 디저트용 파이다.  사람들이 먹는 크리스마스용 디저트 파이를 본떠 만든 개들을 위한 민스 파이가 있었다.  물론 개들용 진저맨 브레드 인형도 있고, 개용/고양이용 스톡킹 선물 꾸러미도 있었다.  양말 모양의 주머니에 개들과 고양이가 좋아할만한 장난감과 간식이 담겨 있었다.


재미로 집에 와서 오늘 뭘 샀는지 보라고 지비에게 찍어 보냈다.  개들을 위한 민스 파이라고 놀라는 지비.  "싸서 많이 사왔는데 어쩌냐"고 했더니 더 놀라는 지비.  놀려 먹는 재미가 솔솔하다.



자폐 아이들을 위한 학교


어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못보던 학교를 하나 발견했다.  '듣도보도 못한 이 학교는 뭐지?'하고 검색해봤다.  자폐 아이들을 위한 초등/중등 학교였다.


누리가 학교를 신청할 즈음 보게 된 브로셔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구와 인근 지역의 초등학교 목록을 보게 됐다.  그 중에 장애 학교가 있어서 '어디지?'하고 생각했다.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일반학교에 다닌다.  정부에서 이동과 학습을 보조할 수 있는 어시스턴트 교사를 지원해준다.  아마 그때 본 장애학교가 이 학교가 아닐까 싶었는데, 놀라운 건 자폐 아이들을 위한 학교라는 점이다.  잘은 몰라도 장애에 유형에 따라 특화된 교육과 시설이 필요할텐데, 요즘 급증하고 있는 장애 유형을 반영해 생긴 학교인듯하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장애가 있어도 일반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생활하기를 바란다.  교육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나는 그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더 특별한 교육환경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선택지가 필요하다.  '역시 영국'이구나 싶었다.  유럽에서 복지수준이 높지 않은 영국이 이렇다면, 유럽의 다른 곳은 어떨까 싶다.   궁금하지만 그 곳에 살지 않고, 또 또래의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이런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장애학교 설립을 두고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충돌하고, 장애아이를 둔 부모들이 무릎 꿇은 사진을 본 뒤라 이 학교의 존재가 더 깊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