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7년

[life] 집집마다 아들들

토닥s 2017. 9. 21. 22:25

아들 둘을 둔 언니가 아들 셋이라고 이야기할 땐 웃었다.  얼마 전 다녀간 친구도 역시 아들 둘인데 그 비슷한 말을 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젠 그 말에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되고 보니.  여러가지 면에서 지비의 어깨에 많은 짐이 지워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은 주로 내가 끌고 간다.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 본인이라는 점에서 지비는 본인이 우리 가족의 보호자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가끔/자주 보호자의 보호자, 아니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평생교육이라며 수 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좀 피곤한 건 사실이다.


여행을 하게 되면, 새로운 곳의 정보가 둘에게 있건 없건 방향을 잡고 결정을 하는 건 내 몫이다.  특히 밥을 먹는 것은 물론 커피를 마시는 것도.  요령있게 여행하는 친구 부부를 둔 언니는, 여행 경험이 많은 그들 부부에게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걸 신기해했다.  특히 먹고 마시는 일에서.  여성들이 언어나 요리재료를 잘 알아서 그런건가 하고 되묻기도 했는데, 그런 면도 있긴 하다.  거기다 배만 부르면 되는 남성들과 달리(요리 재료 이름 따위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건 주로 여성이니까.  나도 그런 1인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메뉴판을 보면 정신이 없다.  누리 먹을 것도 시켜줘야하고, 내가 먹을 것도 골라야하고, 어떨때는 지비가 먹을 것도 의견을 줘야한다.   주로 우리가 가는 식당들이 일식당, 한식당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하기는 하지만, 이번 여름 폴란드에 가서도 종종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더 복잡했다.  폴란드어로 된 메뉴판을 가족들이 궁금해하면 영어로 물어보고, 폴란드어를 지비가 보고, 영어로 알려주면, 내가 한국어로 풀어줄 수 있는데, 지비가 폴란드어를 알아도 그 식재료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거기다 온가족이 메뉴판에 집중하고 있으니 누리는 이것저것 요구하며 저도 한 목소리 더한다.  보글보글 끓다가 부글부글 끓어오른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쩌겠나, 내 숙제인걸.  그래서 좀 바꿔보기로 했다.


보통은 밖에 나가면 내가 먹을 걸 주문하러 가고, 지비와 누리가 앉아서 기다린다.  문제는 내가 가면 누리가 나를 따라오려고 해서, 같이 가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지비에게 주문과 계산을 시킨다.  이제 익숙한 곳에서 주문과 계산은 할 수 있게 됐다.  지난 주말 시내에 나가서 늦은 점심을 새로 문을 연 Japan Centre에서 먹기로 했다.  주말학교를 마치고 온 누리는 배고 고팠고, 점심시간의 분주함까지 더해져 정신이 없었다.  스시와 김밥이 든 작은 도시락을 각자의 취향에 따라 하나씩 고르고 우리는 앉을 자리를 찾을테니 지비에게 메뉴판에서 본 새우튀김우동을 사오라고 했다.  정말 복잡했지만 애 딸린 나를 불쌍히 여긴 한 가족이 일어서면서 멀찍이 서 있는 나를 불러 빈 자리를 넘겨줬다.  자리를 정리하고 한참만에 나타난 지비는 빈손이었다.  긴 줄을 기다린 뒤 주문과 계산을 담당하는 직원 앞에 섰는데 우동이 없다는 거다.  Japan Centre에 우동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  없을리도 없지만 없으면 뭐라도 애가 먹을 걸 사와야지 빈손으로 오면 어떻게 하냐고 화를 내고 일어섰다.  보통은 누리가 나를 따라 나서는데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자기가 고른 새우가 올라간 스시를 먹고 있으라니 그런다고 한다.  마침 한 차례 긴 줄이 쓸고 간 뒤여서 그랬던지, 주문과 계산하는 곳이 텅 비어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우동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비가 먹을만한 차슈가 든 라멘과 누리와 내가 먹을 수 있는 채소 라멘을 사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우동이 다 떨어졌다는 걸 영어로 설명하지 못한 직원의 몫인지, 이해하지 못한 지비 몫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묵직한 분위기에서 점심을 먹었다.  반쯤 체했다.  그래도 중단해선 안된다고 혼자서 다짐한다.



점심을 먹고 누리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도 매장에선 못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니 누리가 들어오면서 윗층에 있던 입구에서 봤단다.  지비에게 가서 사오라고 했다.  평소 지비 같으면 한 번은 나가면서 가자고 했을텐데 나의 화가 식지 않은 시점이라 두 말 않고 혼자 가서 사왔다.  말이라도 잘 들으면 됐다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누리가 혼자 먹을 저 아이스크림을 4파운드나 주고 사왔다는 걸 알게 됐다.  또 속으로 화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