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World

[hoian] 오래된 도시, 호이안

토닥s 2007. 1. 27. 06:35



다낭danang. 다낭은 중부지역의 중심지라 할 만큼 큰 도시지만 우리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 인연이 있는 도시다.



한국과, 정확히 말하면 한국군과 악연이 있는 곳인데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기만하다. 한 번 제대로 둘러보고 싶은 곳이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호이안hoian을 둘러보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의 방문이었다. 호이안은 베트남에서도 이름난 관광지라 숙소잡기가 쉽지 않아 큰 도시인 다낭에 숙소를 잡고 호이안으로 출퇴근을 하였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꼭-.



호이안hoian을 나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안동이라고 소개해줬다. 가만히 생각하면 안동과는 또 다른 것 같다. 최근 몇 년 안동에 한 해 한 번씩 갈 기회가 있었다. 안동도 한국의 다른 지역들처럼 변화하고 있는 도시일뿐 예전에 가졌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다시 수정을 하자면 한국의 경주? 경주라고 크게 다를까만은.

호이안은 접근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오히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접근이 쉬운 면도 있겠다. 호이안의 터미널에 도착하면 관광안내센터가 있다. 이곳에 가면 호이안 여행정보도 얻을 수 있고, 필요한 티켓을 살 수도 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여러곳을 둘러볼 수 있는 티켓 묶음을 사는 것이 개별 입장에 요금을 지불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우리 일행은 다수여서 무료로 관광안내를 받을 수 있는 가이드까지 제공(?) 받았다.




호이안은 16~17세기 교역의 중심지였다. 상거래가 활발한 도시였고, 그래서 외국문화의 유입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처음 간 곳은 복건회관.




이름만으로도 알겠지만 화교들이 모이는 곳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 너무 이쁘지 않나. 복건회관에서 만난 아이들이다. 외국인들을 구경하는게 일상인데도 주변을 따라다니길래 세워놓고 찍었다. 사진에 보이는 미소도 수줍지만, 찍은 사진을 액정으로 보여주자 더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이쁜 아이들.(^ ^ )



우리의 가이드. 이름은 모르겠네. 여행을 마칠무렵 일행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을 하기도 하였다.





호이안의 거리. 호이안에서 볼거리는 몇 개의 박물관, 올드 하우스, 그리고 외국문화의 유입 흔적을 볼 수 있는 곳들이다. 해질무렵 도착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이곳은 일본교라고 불리는 다리다. 이 다리를 경계로 한 쪽에는 일본인 중심지역이, 한 쪽에는 중국인 중심지역이 있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일본인들이 만들었다. 일본 느낌 물씬?



호이안에서 박물관 관람을 포기하고 갔던 곳은 몇 개의 올드 하우스다. 올드 하우스는 말그대로 1~200여 년 전의 집들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것들이다. 현재는 후손들이 가업을 이으며, 부분적으로 관광객들에게 공개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추측하여 볼 때(정확히 기억이 안난다만) 떤끼tanky의 집이었다. 어부출신 화교의 집이었는데, 기억나는건 그 집 부엌에서 후손이 들려준 옛이야기였다. 한 남자의 아내를 탐했던 또 다른 남자는 남편을 눈멀게 했다. 눈먼 남편을 거두기 위해 아내는 이 집에 들어와 일을 했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을 부엌 짚더미 속에 숨겨두고 거두었는데 이 사실을 안 남자는 그 짚더미에 불을 놓았고, 아내는 그 불 붙은 짚더미로 뛰어들어 아내와 남편 모두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며 모시는 거라고 했던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 그 나쁜 남자가 이 집 주인이야?'( ' ')a






관광객에게 공개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면서 후손들이 일상을 사는 곳이기도 했다.



어부출신 화교의 후손.



그 집에서 파는 기념품. 사람 팔뚝만해서 살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사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일본의 교토인형과 나란히 놓으면 좋은 기념품이 될텐데. 물론 나는 같은 이유로 교토인형도 없다. 여행 중엔 돈보다 짐이 늘어나는 것이 두려워 기념품을 살때 늘 망설인다.



이 집은 꾸언탕quanthang의 집. 정원이 아름다운 집으로 소개돼 있다.



실제 정원은 없다, 물리적인 공간이 좁아. 그래서 정원을 형상한 조형물이 집 중간 마당에 꾸며져 있다. 지붕의 잉어가 그렇고, 한 쪽 벽 면의 창 모양 부조가 그렇다.





수공예품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베트남 기념품을 살 수 있는 마지막 동네였던 것 같다. 하노이-후에-호이안까지가 비교적 저렴하고, 나짱-호치민 시티가 약간 비싼 편이다.



씨바. 파괴의 여신이다. 파괴라고 해서 부정적인 눈으로 볼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씨바는 중요한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파괴가 있어야 새 생산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파괴-생산이 맞닿아 있는 셈이다.







수공예품 구입은 뒤로하고 마당에 앉아 베트남 커피를 시켜 먹으며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때 반해버렸다, 베트남 커피에. 진한 아이스라떼다. 컵이 작아서 아쉬웠다. 에스프레소 추출방식은 아니지만, 진한 커피에 달콤한 연유, 그리고 얼음을 넣어준다.

+ 다낭은 미국에 의한 베트남 전쟁때 미군 기지가 있는 도시기도 했으며 청룡, 맹호, 백마 등의 한국 군인들이 베트남으로 들어간 관문이기도 하다.  

정치(결국은 경제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과의 관계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그런 것들도 중부지역은 예외다.  한국군이 들어가 민간인 학살을 했던 곳이 바로 이 중부지역, 그 중에도서 중부내륙지역이다.  한겨레21이나 몇 권의 단행본에 실린 것처럼 이 지역의 어느 마을에 가면 증오비가 있다.  무엇에 대한, 누구에 대한 증오인지는 내 입에 담기 참으로 부끄럽다.

이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참으로 힘들다.  나는 학살에 참여했던 모두를 가해자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가해자면서 피해자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가해자로 인식될까봐 그들은 진실을 숨기려고만한다.  오히려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앞장서서 막고 있다.  베트남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조명했던 한겨레로 파월 군인들이 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억울하기도 하겠지, 전쟁의 기억으로 몸과 마음이 그렇게 고통받게 사는데.   하지만 그들이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그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