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etc.] 2015년과 2016년

토닥s 2016. 1. 19. 00:16
2015년의 끝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누리의 어린이집이 2주간 방학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전엔 그 동안 만나지 못한 동네 사람들(?)도 만나고, 크리스마스엔 지비와 또 함께 그 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다. 지비가 연휴를 끝내고 출근한 뒤 여전히 방학인 누리와 나만 남았다. 날씨가 춥지만 집에 있으면 누리와 투닥투닥할터 어디에 가면 좋을까하고 생각하다 일전에 Y님이 알려주신 링크를 타고 발견한 V&A 방학프로그램 - 팝업 공연이 그날이 마지막이라는 글을 보고, 부랴부랴 누리를 챙겨 박물관으로 달렸다. 어찌나 달렸던지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버렸다.


팝업 공연은 호두까기 인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25분짜리 공연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이곳은 가족공연이 많아 우리도 시도해보고 싶었는데, 누리가 그 시간과 어둠을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너무 비싼 도전이라 올해 크리스마스는 그냥 보냈는데 이 팝업 공연이 좋은 연습이 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론 공연이 너무 좋았다. 누리 역시 좋아했다.

내가 좋아한 이유는 클라라 역을 맡은 이는 여장 남자였다. 못생겼고, 펑키했다.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은 작그마한 여자 무용수였다.
고전적인 음악과 함께 고전적인 미를 그대로 전달하지 않은 것이 나는 좋았다.

공간 분리를 위해 이용한 무대장치인 반사판을 옮길 때 조명이 반사되어 둥그런 극장 천정에 반사광이 생겼는데, 물론 의도된 것이다, 그런 것까지도 누리가 찾아보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리고 약간 길어져 35분 정도 되는 시간과 어둠을 견뎌낸다는 점도. 누리보다 어린 아이들 중에는 여장 남자 클라라를 무서워하여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날 밤 누리와 함께 볼 수 있는 공연들을 찾아 열심검색에 돌입하였다는 뒷이야기1.


공연을 마치고 나와 박물관 곳곳에 마련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던 누리. 날 더러 이 사진을 찍으라고 하였다.(- - );;


박물관 중앙에 연못이 있는데, 장난치다 빠져 우는 아이를 보며 옷깃을 여미던 누리.


또 나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함.


그리고 다시 집 근처 하이스트릿으로 달려달려 - 누리님이 배고프시기 전에. 둘이서 늦은 점심을 (내가) 배터지도록 먹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니 맥주 한 잔 아니하고 갈 수 없어서 - 지비 용용 죽겠지하며 사진도 보내주고.


마지막 날 저녁은 얼마전에 Y님에게 대접받고 감동먹은 어묵탕 - 오뎅탕이 더 느낌이 살지만.
이를 위해 일본어묵과 곤약까지 공수하였으나 뭔가 많이 심심했던 어묵탕. 맛의 비법은 육수인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네.

어쩐일로 일찍 잠들어주신 누리님을 남겨두고 각자 볼 일 - 주로 휴대전화 보기. 폴란드 시간으로 12시 자정에 맞추어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받은 프로세코(이탈리안 탄산 와인)을 오픈했다. 폴란드와 유럽은 영국보다 1시간 빠르다. 1시간 동안 열심히 마시고 영국 시간으로 12시 자정이 되어 TV로 불꽃놀이를 시청한 다음 꿈의 나라로 고고.


평범하게 특별한 2015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숙취로 꽤 고생을 하였다는 뒷이야기2.

2016년의 시작

사람들은 우리더러 부지런히 다닌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지비가 그렇다. 나는 하루 종일 집에 뒹굴어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인데.
새해 첫 날 퍼레이드를 보러 갔다. 출발 지점에서 가까운 피카딜리 서커스로 갔음에도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나서야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왜 안오냐"는 누리의 질문의 시달려야 했다.


나는 이 퍼레이드에 관한 정보 없이, 시작점과 시작시간만 알고서 갔는데 가서 보니 이국적인 스타일. 미국의 각지에서 온 악대, 치어리더들이었다. 그런 이유인지 미국서 온 관광객들이 넘쳐나는듯 했다. 그런 이유로 미국 팀들을 초청해 퍼레이드를 하는 걸까?

우리는 행렬이 보이기 시작한 뒤로부터 십 분 뒤에 점심을 먹기 위해서 자리를 떴다. 그런데 가려던 한국 식당이 문을 닫아서 결국은 그 한국식당 앞 까페에서 토스트로 점심을 먹어야 했다는 뒷이야기3.


누리는 토스트로 점심을 먹고, 우리는 사발 커피로 해장을 하였다. 내 얼굴 크기를 짐작하면 커피 잔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집으로 쓍하고 돌아와 그때까지도 계속되는 퍼레이드를 생중계로 보았다.

개인적으론 이 새해 퍼레이드보다 매년 11월 초에 있는 런던 메이어 퍼레이드가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여느 해는 육군, 해군, 공군, 동네 방위 이런 것들만 줄줄이 나와서 실망스러웠지만, 동네시민단체나 전통적 직업조합의 흔적인 길드의 행렬도 있어 볼 거리가 있다.


지비는 생중계를 보며 폴란드 책 뒤에 있는 종이 인형을 힘겹게 오렸으나, 누리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는 슬픈 뒷이야기4.


그리고 저녁은 새해니까 떡국으로 마무리.

3주가 지난 2016년, 그래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그리고 꼭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선거에 투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