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3년

[food] 크리스마스 이브

토닥s 2013. 12. 25. 08:39

우리에겐 연말 공휴일에 지나지 않는 크리스마스가 이곳에선 정말 유별난 연휴다.  한국의 설과 추석 격이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인데, 크리스마스에 비하면 부활절은 아무것도 아니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가족들의 선물을 위해 평균적으로 대략 600파운드 정도 대출을 한다고 하는데, 그럼 크리스마스 준비 비용은 그 이상이지 싶다.  초과되는 건 지출만이 아니라 주부들의 가사노동도 그렇다.


가족들이 모이는 크리스마스 이브 디너를 위한 음식준비는 물론 크리스마스와 다음날 이어지는 박싱데이까지 상점들이 문을 많이 닫기 때문에 주부들은 2박 3일치 먹을 것을 장봐둬야 한다.  이번엔 가족 없는 우리도 2박 3일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래저래 길에서 시간을 허비할 일이 생겼고,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 장보러 갈 시간이 없었다.  또 오지 않는다던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점심을 먹으로 온다고 뒤늦게 번복해서 그를 위해서 장을 한 번 더 봐야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곳에 시댁도 없는 내가 명절증후군이 걸릴 지경이었는데, 대가족을 위해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장보러 가니 그냥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되는 음식들도 널렸더라.  평소보다 비싸서 그렇지.


나는 크리스마스에 지비가 일을 하지 않으니 누리를 맡겨두고 그저 침대에서 뒹굴고 싶은데 지비는 그렇지 않다.  지비도 이곳에서 온 사람이라 크리스마스가 특별하다.  작년에 백일이 지난 누리와 차 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보니 도대체 못할 일이었다.  지비가 너무 심심해 한다.  그래서 작년처럼 그럴꺼면 그냥 폴란드 가자고 했다.  사실 난 추워서 싫지만.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 티켓을 검색해본 짠돌이 지비.  마음을 먹지 못하고 그냥 포기했다.  폴란드는 아직도 가족&종교 문화가 깊어서 고향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귀성길에 오르는데 그런 이유로 비행기표가 평소의 2~3배가 넘는다.  그러고도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16~20시간 걸려 차를 몰고 가기도 한다.  도버 건너서, 프랑스 지나서, 독일 지나서.

올해도 역시 24일 오후부터(심지어 24일 오전은 재택근무) 29일 일요일까지 쉬는 지비는 매일매일 뭐할꺼냐고 나한테 묻는다.  애도 있으니 그냥 있자고 했더니 "그래"라고 해놓고 또 어디 가고 싶은데 없냐고 묻는다.  그래서 친구네도, 사촌형가족도 결국은 우리집으로 놀러오게 됐다.  그래서 그 음식 준비에 내가 약간 골머리를 앓았다.  골머리를 앓아도 답은 없어서 있는대로 먹게 될듯하다.


크리스마스 당일 보다는 그 전날 저녁을 잘 챙겨 먹는데, 우리도 집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식당을 예약했다가 날씨 때문에 취소하고 집에서 챙겨먹기로 했다.  사실 내가 오전에 볼일 보고, 오후에 장 보느라 집을 세 번을 들락날락하고서 지쳐버렸다. 

이곳에선 미국의 영향인지 칠면조가 대세다.  하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고기보단 생선을 먹는다고 한다.  북유럽이 그렇다는 건 알았는데, 북유럽이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탈리아도 그렇고, 폴란드도 그렇다.  지비 말론 이브 자정까진 금식의 의미로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생선을 먹는다고 한다.  내가 딱히 폴란드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생선과 고기로 나누자면 그래도 생선파라(내 고향은 바다도시) 해산물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냥 오븐에 넣고, 프라이팬에 볶기만 하면 되는 걸로 샀다.  매운 토마토 소스 새우에 파스타를 곁들이고, 크림 소스 게살(범벅 같은 걸) 골랐다.





진짜 게껍질인줄 알았는데 가짜였다.  심지어 게살 함량마저도 너무 작았다.(-ㅜ )  그래도 와인맛 크림 소스는 맛있었다.




매운 토마토 소스는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담에 한 번 만들어볼 생각이다.  파스타는 生 탈리아텔레를 샀는데, 누리 뒤치닥거리 하느라 너무 삶아버렸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먹고나니 속이 편하다.  건식 파스타가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요렇게 이브 저녁상은 넘겼고, 낼 크리스마스 점심으로 이곳 사람들이 먹는 고깃덩이와 로스트용 채소를 사놨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찾아봐야겠다.  정말 챙겨먹는게 일이구나.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접시를 바꾸고 싶어졌다.  하얀 접시들이 심심해서 알록달록한 접시들을 샀는데, 음식하고 조화를 이루기가 어려운 것 같다.  문안하게 흰색 접시들로 채리티(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중고물품가게)를 탐색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