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3년

[food] 크리스마스 런치

토닥s 2013. 12. 27. 09:17

크리스마스에 런던은, 아니 영국은 모든 것이 정지된다.  문을 여는 곳이라곤 교회나 예약만 받는 펍 정도가 전부다.  우리도 한 달 전쯤 크리스마스에 펍 런치를 먹으려고 알아봤다.  11월 말경이었는데 이미 예약이 완료되서 대기자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그런데 그 가격이 한 사람당 £75.(헉!)


크리스마스에 모든 것이 정지되는 이유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듣기론 운수노조의 영향으로 일년에 하루 쉬는 것인데, 그러니 다른 서비스 종사자들도 일터로 갈 수 없어 쉬게 되었다고 한다.  간혹 호텔이나 레스토랑이 문을 열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예약제다.  그리고 그날 일하러 가는 노동자들은 두 배 또는 세 배의 임금과 택시비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꼼짝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건 우리 같이 차 없는 사람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차가 있어 시내에 가도 갈 곳이 없다.  나도 처음 영국에 와선 그게 참 이상했는데, 일년에 하루 정도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지비의 친구 커플 고샤와 줄리앙이 점심을 먹으러 왔다.  이 친구들도 차가 없어서 차를 렌트해서 타고 왔다.  그렇게까지 오는데 뭘할까 고민해도 답이 없어서 남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먹는 음식을 크리스마스 런치로 준비했다.  로스트 비프.


한 번도 해본적 없는 음식이라 일단 고깃덩이 먼저 사놓고 인터넷 검색했다.



요리 전 고기를 30분 정도 방치한다고 한다.  그리고 오일, 허브, 소금, 후추 정도를 뿌려주고 예열된 오븐에 넣으면 끝!  고기 250g 당 20~25분씩 계산하는 게 재미있다.  그렇게 좋은 고기를 산건 아니라서 웰던으로 25분씩 계산해서 넣었다.  사실 고기 포장지에 시간이 적혀 있다. 

고기를 넣을 때 채소들도 함께 넣는데 단단한 정도에 따라 알아서 넣는다.  감자는 처음부터 넣었고, 중간에 버터넛 스쿼시Butternut squash, 붉은 양파, 브러셀 스프라웃Brussel sprouts을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30분엔 붉은 와인을 넣어주고 쿠킹 포일을 덮어주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인데.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것처럼 바삭하게 로스팅되지는 않았다.  마지막에 쿠킹 포일을 덮느냐 마느냐로 지비와 한참 머리를 맞댔는데, 바삭한 걸 원한다면 쿠킹 포일을 덮지 말았어얄듯.


이 외에도 폴란드식 만두인 피로기Pierogi와 비트루트 스프, 로즈마리 포카치아, 모짜렐라 샐러드 정도를 준비했다.  그리고 고샤가 폴란드 음식인 비고스Bigos를 준비해왔다.  그런데 그 사진은 없다.  다 먹고나서 '아차!'하고 사진이 생각났다.  정말 음식 챙겨내랴, 누리 밥주랴 내 음식은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한국식은 한 번에 쫙 놓으면 되는데, 순서대로 내놓은 이곳 방법이 좀 사람을 바쁘게 하는 것 같다.


늘 둘이 먹는 양만 준비하다보니 많은 양(고작 4인분)을 준비하는 게 조금 버거웠다.  그리고 양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메인이었던 비프가 좀 작았다 싶다.  하지만 고샤가 가져온 폴란드식 케이크까지 곁들여 후식까지 잘 먹었다.  사실 그건 1차 후식이었고, 2차 후식은 내가 준비한 스콘을 먹었다.






고샤와 줄리앙이 사온 누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우리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지 않고 크리스마스 카드만 준비했는데, 이런 걸 챙겨와서 너무 미안했다.  한국가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샤와 줄리앙의 선물은 꼭 챙겨오자고 지비와 이야기했다.(-ㅜ )







사실 우리가 아기가 생기고 보니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면 참 불편하다.  누리가 대화를 훼방놓기도하고, 우리 중 한 사람은 대화에 끼지 못하고 누리 뒤치닥거리를 해야한다.  그래서 우리를 만나러 온 혹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집중을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참 불편하다.

그런데 어제는 고샤가 누리랑 기꺼이 놀아주었고, 심지어 나를 찾지도 않더란, 덕분에 지비랑 나도 후식까지 먹는 호사를 누리면서 줄리앙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통 아이들은 줄리앙을 따르는데 누리가 고샤를 따르니 고샤는 좋다고, 줄리앙에게 메롱메롱하면서 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덕에 우리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저 멀리서(동쪽 런던) 와준 두 친구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보냈는데, 하루가 지난 지금도 계속 크리스마스 같다.  어제 남은 음식들을 저녁, 점심, 그리고 다시 저녁으로 먹다보니.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