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35weeks] 아기 이름 무엇이 좋을까?

토닥s 2012. 8. 26. 07:17

밀린 Newbie Story ③

8월이 됨과 동시에 가족들이 런던에 왔다.  지난 일요일 저녁 비행기로 보내고, 이틀 동안 청소와 빨래 그리고 낮잠을 번갈아하다가 정신차려보니 수요일.  모르는 사람은 벌써 애 놓으러 간 줄 알았겠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생각은 했는데 올리지 못한 꺼리들 어서 올려야겠다.



몇 년 전 접했던 뉴스에 그런 것이 있었다.  영국에서 새로 태어나는 남자 아기 중 가장 많은 혹은 인기 있는 이름은?  윌리엄William도 해리Harry도 아닌 바로 모하메드Mohammed라는.  출산을 많이 하지 않는 영국인에 비해 출산율이 높은 무슬림 이민자들 혹은 무슬림 영국인British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일종의 증거였다.


아기를 가지고서 어떤 이름이 좋을까 당연히 이미 생각해봤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손녀를 엘리자베스Elizabeth라던지 앤Anne으로 부르는 건 상상이 안됐다.  이름을 짓는다면 좀 유니버셜하면서 발음이 쉬우면 좋겠다는 정도에서 생각을 마무리 했다.  지비는 성은 폴란드 성인 자기 성을 따르게 되니 한국 이름을 짓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은 나더러 결정하라고 했다.  말이 그렇지 "이건 어때?"하면 "그건 좀 그래"하는 반응이다.  말은 나더러 결정하라면서 내가 몇 가지 꼽으면 그 중에서 선택하겠다는 태도다.(_ _ )


내가 첫번째 생각한 이름은 '보리'다.  쌀과 보리에 보리.  뜻이 뭐냐길래 그냥 보리Barley라고 했더니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 보수당 소속의 런던 시장 보리스 존스Boris Johnson이 연상된다며 별로란다.  '그래?  그냥 보리가 왜 싫어?  그럼 내가 좋은 의미를 찾아보겠어.'하며 인터넷을 잠시 검색한 결과 불교 용어면서 인도어인 bodhi를 찾았다.  인도어론 bodhi지만 우리 말로 '보리'는 불교에서 앎과 깨달음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해주니 잠시 경청하는듯 하더니 그럼 보리가 아니라 bodhi로 해야 본 의미가 살아나는데 그럼 인도이름이 된다고 다시 싫단다.


어떤 한글이름이 많냐기에 '하나', '다운' 등등 몇 가지 이름을 들어줬더니 '하나'가 마음에 든단다.  영어이름에 한나Hanna가 있으니 우리가 '하나'라는 이름으로 Hana를 써도 어색하지 않고, 더군다나 한글이름이니 좋겠다고.  이 이름은 내가 반대했다.  '하나'라는 이름이 많기도 하지만, only one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느낌이 싫었다.  누구에게나 자식은 소중하지만, 이름마져 그렇게 지어놓으면 아이는 떠나서 내가 오직 우리 아이만 소중하다 생각하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그런 부모가 되기 싫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이름은 지비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이름이다.


그러면 한국 사람 중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누가 있냐고 지비가 물었다.  참고로 지비의 이름 지빅니예프Zbigniew는 폴란드의 유명한 축구선수 이름이란다.  '황진이', '신사임당' 이런 이름만 떠오르고 현대적 이름의 유명한 여성이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 생각해낸 것이 우디 앨런의 부인 '순이'.  '순이'가 누구냐길래, 우디 앨런의 입양아였다가 부인이 된 여성이라고 설명해주니 그건 좀 그렇단다.


언니에게 아기 이름 이야기를 하니 '누리' 어떻냔다.  좋다.  지비에게 세상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라고 설명해주니 좋단다.  그런데 이 야기를 들은 이곳의 한국인 지인의 반응이 영 아니었다.  '왜 누리가 어때서.'


지비도 나도 선명하게 고집을 부리지 않으니 답이 나오지 않아 가족들이 런던으로 휴가를 오면, 그리고 기차로 파리로 가게되면 그 때 의논해보자하고 남겨두었다.  35주차 파리로 여행을 가면서 이 아기 이름을 꺼냈더니 언니들은 '보리'가 좋단다.  '누리'도 좋고.  '하나'라는 이름에 관한 생각은 나와 비슷했다.  부모님은 "시댁엔 물어봤니?"하시며 어느 것도 좋다 싫다 말을 안하셨다.  다수결로하면 '보리'가 맞는데 영 지비가 동의가 안되는지 이야기는 흐지부지.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짐을 부쳐놓고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면서 커피 한 잔을 하며 다시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혼자 짐을 지기 싫어 "결정해주고 가셈"이었다.  그날 새롭게 나온 이름이 '하니'였다.  한국 사람이라는 뜻의 '한이'를 쉽게 쓰자는 내용이었는데 지비가 '한국 사람'이라는 뜻이 마음에 든단다.  영어로 Hani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서로 보통 Honey라고 부르는데 그것과 헛갈린다는 거다.  그래서 그럼 이제 darling이라고 불러준다니 고개를 절래절래.  그럼 여보라고 불러준다니 웃기만 웃는다. 


그 외 '가을', '하늬', '샛별' 같은 의견도 있었지만 영어표기가 어렵다는 지비의 의견.  그 의견엔 일부분 나도 동의.  그 자리에서도 결국은 결정짓지 못하고 가족들은 떠나갔다.  여전히 아기 이름은 내게 숙제로 남았다.

폴란드의 가족들에게 물어보라는 나의 요구에 따라 형 마렉과 통화하면서 지비가 이제까지 나온 안들에 관해서 들려주고, 설명해줬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 태어난 마렉의 딸 이름은 마리아Maria.  가장 많이 쓰이는 평범한 이름이라고 마리아로 지었다고 한다.  폴란드는 그런 것 같다, 평범한 이름 많이 쓰여지는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그래서 지비 주변엔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참 많다.  고샤Gosia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내가 아는 것만도 3명 이상이고, 에바Eva도 역시 마찬가지.


그냥 5월에 태어났으면 영어라도 메이May라고 하는 건데, 9월에 태어나도 그냥 메이라고 할까?  끙.. 좋은 이름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