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만 글 한 달에 뒤에 이어쓰기)
한국행을 결정하고 정신 없는 가운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뵐 수 있는 면회시간은 하루에 한 번 정해져 있는데, 그 이외 시간엔 뭘 하지? 여름에 가는 한국인데 아이가 물놀이는 해도 될까? 아버지가 누워 계신데 어디 시원한 곳에 앉아 맛있는 건 먹어도 되나? 웃어도 되나.. 그런 생각들. 그래서 언니에게 물었다.
"수영복 챙겨 가도 될까? 아버지가 병원에 계신데 어디 다녀도 되나?"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나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지만, 이대로 몇 달을 계실 수도 있어. 사람들도 부모님 요양병원에 모시고 일상을 살아."
그래서 수영복을 챙겨서 한국을 갔다. 오전엔 요양병원에 들러 아버지를 뵙고, 나머지 시간은 나가서 밥을 사먹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멀리서 온 사촌언니네가 아버지를 보러 온 날을 제외하곤 매일 아버지를 뵈러 갔다. 처음 간 날, 몰라보게 달라진 아버지를 보고 너무나 놀랐지만 아이가 있어 표정을 숨기느라 힘들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지비와 나까지 알아보셨다. 아이를 보고는 아이 이름 대신 내 이름을 부르셨다. 닮은 모양-.💦
우리도 그렇지만 조카들도 아버지 생신을 앞두고 내려와서 광안리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뜻밖에 드론쇼까지 구경.
사실 올해는 이미 봄에 한국엘 다녀왔었기 때문에 여름방학에 아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급시험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게 되면서 연습이 막연해진 상황. 부모님 댁 근처에 학원을 알아보니 마땅한 곳이 없어 바이올린은 대여하고, 피아노는 연습실을 찾아 연습하기로 했으나, 계획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별 계획 없는 날은 피아노 연습실을 찾아 감을 잃지 않을 정도만 연습했다. 그래봐야 3주간 4번 정도 갔나-.
지비가 돌아가기 전날 아버지를 뵙고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는 뷔페식 A식당을 가고 싶다고 했고, 지비는 감천문화마을을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해서 고고.
무척 덥고 멀어서 피곤하긴 했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잠시나마 밀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지비는 영국으로 돌아갈 짐을 싸고 잠들었다. 새벽 1시 엄마의 전화벨이 울려 내가 받았다. 병원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니 서둘러 오라고-.
내가 전화를 받은 시간은 1시 6분이었고, 우리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1시 17분인가, 18분인가 그랬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우리보다 뒤에 온 당직 의사가 사망을 확인 한 시간은 1시 21분인가 그랬다. 슬펐는데 당장 해야 할 일들이,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