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3년

[life] 달팽이구조대

토닥s 2023. 5. 7. 08:21

요즘 애들이 지렁이를 알까?

영국에선 비가 오는 날이면 달팽이를 쉽게 볼 수 있다.  달팽이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어릴 땐 비가 오는 날이면 지렁이가 나왔는데 여긴 달팽이구만’. 아이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국은 가든있는 집도 많고 공원도 많아 아직 흙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런던에 살아도 그렇다.  온통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에 살고 있는 한국의 아이들이 지렁이를 알까? 아직도 한국은 비가오면 지렁이가 나올까? 그런 생각을 한다.

몇년 전 비가 내린 뒤 등교 길에 아이가 달팽이를 발견했다. 쪼그려 앉아서 그 달팽이를 보고 있으니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이 작은 녀석(little fella)는 길 한가운데 있다가는 밟혀서 깨지니까(그래서 죽으니까) 저리로 보내주자”며 살짝 발로 굴려 화단으로 보내버렸다.  그 날 ‘아 내가 밟아서 죽일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뒤로 우리는 비가 온 뒤 달팽이를 길 한가운데서 발견하면 아주 바쁘지 않는 이상 길 옆 화단 같은 곳에 옮겨준다.  오늘 오후 아이 친구 가족과 만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 집에 오는 길에 달팽이를 만났다.  살짝 들어 길 옆 어느집 담벼락 나무 옆으로 옮겨주었다.


아이와 지비는 집으로 가고 나는 가운데서 헤어져 가까운 마트에 먹거리를 사러 갔다. 오가는 길에 달팽이 여럿을 또 만남.  마트에 갈 때는 빈손이라 사진 찍고 길 밖으로 옮겨 주었는데, 올때는 손에 짐이 있어 그냥 왔다.

오후에 만났던 아이 친구 가족을 저녁 9시가 넘어서 다시 만났다.  영국 찰스3세 대관식을 기념해 인근 공원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해서 함께 보기로 했다.  그런데 공원에 도착하기 전에 불꽃이 시작되서 끝나버림.  다행히 공원으로 가는 길에 불꽃을 볼 수 있었고, 아이들은 밤에 다시 만나 즐거워했다. 선선한 날씨에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헤어져 돌아오는데 주차장에서 달팽이 떼를 만났다.

달팽이구조대

처음엔 보이는대로 화단에 옮겼다.  그런데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그 수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다닐법한 길목에 보이는 달팽이들만 옮기고 나머지는 그냥 둬야했다.  우리가 실수라도 밟지 않도록 ‘밤길 조심하면서’ 왔다.

화단에서 기어나오려는 지렁이도 보기는 했지만, 달팽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달팽이를 보고 아이가 한 마리 키우고 싶다고.  그건 좀..😑 그냥 구조만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