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0년

[life] 손가락이 짧아진 장갑(feat.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토닥s 2020. 12. 10. 02:44

몇 년 쓴 U브랜드의 히트텍 장갑에 구멍이 났다.  양쪽 검지.  새로 살 수도 있지만, 재주껏 꿰매면 한 해쯤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 꿰맸는데, 역시 재주가 없으니 뭉툭하게 쑥 짧아졌다.  뭉툭하게 쑥 짧아진 장갑을 보다가 떠오른 한 사람.

 

초등학교 때(당시는 국민학교) 학교 앞에 일명 뽑기 아저씨가 있었다.  손수레에 여름이면 설탕물인지 미숫가루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음료도 팔았고 번데기 같은 것도 팔았는데 주거래 품목은 뽑기였다(다른 지역에선 달고나라 하더라만).  설탕을 녹여 그림으로 모양을 찍어내면 바늘로 모양을 따라 오려내는 것도 있었고, 숫자판을 주어진 가림막(?)으로 가린 다음 숫자가 적힌 통에서 직접 가린 숫자를 뽑아내면 상품으로 내걸린 (또 설탕을 녹여 만든) 달달구리를 받을 수 있는 뽑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박성이 가득한 손수레였네.  하여간 그 아저씨는 계절에 상관없이 목장갑을 끼고 계셨는데, 목장갑을 끼었어도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지 않았다.  엄지와 한참 짧은 뭉툭한 네 손가락으로 음료를 덮어둔 뚜껑을 잘도 열었다.  아이들은 그 아저씨를 상이용사(장애를 가지게 된 군인)라고 했다.  그 아저씨가 스스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오늘 문득 상이용사가 아니라 일하던 중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중 군인이 손가락만 잃는 게 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상이용사라는 말은 알아도 노동자라는 말은 모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다 다치고, 죽는다는 사실은 자주 잊고, 모르고 사니까. 

손가락 정도 가지고 무슨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떠올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크던 작던 그런 변화(장애)는 분명 개인의 인생을 바꿀만한 중대재해다.  그런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고 발생해도 그에 걸맞게 책임을 묻지 않는 나라가 한국이다(물론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닌).  그러니 이런 재해가 무한반복된다.  그저 개인의 부주의나 불운으로 여겨질 뿐이다.  재해와 빈 재발방지 약속을 몇 번을 반복해야 할런지.. 씁씁.. 답답..

 

+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중대재해기업처벌은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안전 시스템이 미비해 그 이용자(시민), 노동자가 피해를 입으면 그 책임을 묻는 제도다.  책임의 대상은 기업은 물론 정부(공무원), 시설주 모두 포함된다.   

nomoredeath.kctu.org/measure/contents.php

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692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