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0년

[coolture] 사회가 아이들에게 권하는 책 (9~12살)

토닥s 2020. 12. 3. 23:41

우리집에서 가장 '영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누리다.  '한국어' 책까지 포함시켜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이 누리일 것 같다.  영국에서 자라지 않은 내가 영국에서 자라고 있는 누리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 할지가 어려운 숙제다.  영국 엄마들에게 혹은 누리보다 나이가 많은 자매가 있는 엄마들에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책을 물어보고 사주기도 한다.  그 책 내가 읽어보니 너무 재미가 없더란.

 

영국의 학교는, 적어도 누리가 다니는 학교는 영어 쓰기와 읽기를 무척 '빡세게' 한다.  가끔은 한국의 아이들이 한국어 쓰기와 읽기를 이렇게 빡세게 하는지 궁금하긴 하다.  초등학교 준비과정인 리셉션부터 일주일에 한 번 읽기 책이 나온다.  아이의 진도에 따라 한 권 내지 두 권이 나오는데, 단계(oxford tree reading level)가 있다.  누리의 경우 기본적인 영어 읽기 능력(알파벳 읽기)이 완성되는 초등학교 1학년까지 5~6명이 아이들이 그룹이 지어져 비슷한 등급의 책을 읽는 아이들이 보조교사의 도움을 받아 책을 읽었다(선생님과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고 함께 그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쉽게 말하면 그룹별/수준별 영어 읽기 교육이 진행됐다.  누리가 2학년이 될 무렵 학교 전체의 기조가 바뀌어 이 그룹별/수준별 교육이 없어지고 통합교육으로 바뀌었다(물론 높은 수준에 있는 부모들이 불평했다).  하지만 특별히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경우는 별도의 그룹별/수준별 교육을 유지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목표가 12단계까지 읽기고, 이걸 마친 아이들은 프리리더free reader라고 단계에 연연하지 않고 원하는대로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13단계 읽기를 시작하는데, 누리학급을 보면 1/4정도가 이 13단계 읽기를 시작한 것 같고 많은 수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주로 영국부모들) 이 아이들의 읽기 단계에 부담을 받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좋은 점은 '일괄적'으로 아이들이 맞지 않는 옷에 자기를 끼워 맞추는 식으로 어려운 수업을 '획일적으로'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호흡으로 영어 읽기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내 집에 책 한 권 없어도 영국 아이들이 자라면서 읽는 '나름' 고전동화들은 다 읽게 되어 있다.  

 

누리 학급 친구들은 대부분 7살이고, 누리처럼 생일이 빠른 아이들은 8살이다.  누리는 요즘 David Walliams의 책 Granpa's Great Escape라는 책을 읽고 있다.  학교의 단계책도 읽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끝나면 읽을만한 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줄까하고 검색했더니 9~12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하면 좋을 책이라는 리스트가 있어서 읽어봤다.  총 18권이 리스트에 있었는데, 이 리스트를 보고 문화충격 같은 걸 받았다.

www.penguin.co.uk/articles/children/2018/oct/christmas-books-9-12-year-olds.html

 

 

 

 

영국에서는 10월을 블랙히스토리의 달이라고 해서 흑인들의 역사, 차별의 역사를 많이 다룬다.  학교는 물론 아이들이 보는 TV 채널에서도 특별히 이런 소재들이 많이 다루어졌다.  흑인 작가들이 쓴 책들도 많이 소개 됐다.  그 때 들은 한 마디가 나를 실소하게 했다.  "영국 아이들이 보는 미디어엔 심지어 동물이 흑인보다 많이 나온다"는 말이었다.  정말인가 생각하며 그 동안 누리와 함께 본 TV프로그램과 책들을 떠올려봤다.  확실히 동물이 많긴 하다.  나는 그게 성차별에서 자유롭기 위한 전략이면서, 성을 정형화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적은 있다.  주인공이 사람인 경우는 여성이 조금 더 많은 편이고, 여러 종류의 장애아동들도 많이 등장한다.  경제적, 인종적 소수계층을 반영하는 경우도 많은데, 흑인 당사자가 부족하다고 말하니 부족한 게 맞다.  긴 식민지(소유)의 역사로 한국에서 말하는 '다문화사회'가 벌써 오래 전에 시작된 나라가 영국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내홍을 겪으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탄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많지만 운동장이 여전히 기울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영국이란 사회에서 이름난 출판사가 9~12살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에 선물하고 읽히기를 권하는 책들의 목록을 보니 지금은 운동장이 기울어졌어도 나중에는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은 아닌데 추천한 18권 내용/소재가 이렇다.

 

- 판타지/스릴러/SF 6권

- 동물모험 1권

- 크리스마스 고전과 재구성 2권

- 기타 8권

- 일기장 1권

 

기타의 소재는 심장이식 아동 1권, 안면장애 아동 1권, 흑인인권 2권, 따돌림 2권, 멘탈웰빙(우울증 관련) 1권, 입양 아동 1권이다.  그리고 일기장은 아이들의 이모션웰빙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건 그림만보면 판타지/스틸러/SF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유색인종이 없다(이것도 웃긴다).  운동장이 기울어진 영국이 이렇다면,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는 운동장이 기울어지다 못해 뒤집혔다고 봐야할지도 모르겠다(왜 갑자기 일본이냐면 ☞ 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6003449_32524.html).

 

지난 여름 언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전쟁과 그 책임에 대해 비중있게 가르치는 독일교육을 의미있게 보는 언니의 시각에 "글쎄.."라고 말했다.  나의 '글쎄..'의 근거는 그런 독일교육에도 불구하고 네오나치가 있고, 인종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언니의 말이 "그런 독일교육이 없으면 어떻게 됐겠누.. 일본처럼 됐겠지.."였다.  "그건 그렇지..".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소수인의 시각이 담긴 책들을 읽히고, 알게 하는 건 중요하다.  그런 책을 읽고, 교육을 받아도 삶에 그런 시각을 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교육을 아예 받지 못한다면 나와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믿는다).  영국에서 외국인으로, 소수인으로 살면서 다른 외국인과 소수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하는 말이다.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누리에게 보여주고 어떤 책이 읽고 싶은지 골라보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