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Korea

[Korea2020] 한국여행의 마무리

토닥s 2020. 12. 17. 09:48

가만히 세어보면 꼬박 세 달도 지나지 않은 올해의 한국행이 무척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Covid-19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었던 3개월이라 더 길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니 그날이 그날 같아 시간이 빨리 간 느낌도 있다.  시간이 더디 가던 빨리 가던 어떻게든 흘러 지금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  이런 가운데 가끔씩 떠올리는 한국행은 우리 모두에게 무척 즐거운 기억이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대단한 게 없다.  조심스럽게 친구를 만나거나, 언니네 집 근처를 산책하거나, 테이크어웨이 음료를 사서 마시거나 그런 기억들이다.  그런 기억들이 있어 지금도 견딜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동네 맛집에서 와플로 점심을 먹었다.  동네 맛집의 귀여운 와플 비주얼이 영국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비주얼이다.  비주얼은 좋았지만 너무 달달해서 다 먹지 못했다.  음료로 우유가 있는 건 좋았다.

 

늘 한국행의 마지막은 미용실이다.  이번에도 부모님 집 앞 동네 미용실을 찾았다.  누리가 원하는대로 단발로 잘라주었다.  첫날만 보기 좋고, 관리가 어려운 단발.  다시는 해주지 않을 생각..

 

 

그리고 늘 한국행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책정리.   하지만 마무리 짓지 못하고 늘 내년으로, 내년으로 미루고 만다.  그나마 올해는 책 몇 박스 버리고 왔다.

그러던 중 발견한 스크랩북.  내가 유치원 다닐 때 그린 그림들이다.  누리에게 보여줬다.  신기한 건 저 그림들 그릴 때 순간순간이 기억이 난다.  나머지 유치원 생활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데.

 

대학교때 쓰던 학교 다이어리들을 버렸다.  그 안에서 발견한 구두 상품권.  그때 오만원이면 큰돈인데 아꼈다가 💩 됐다. 😭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케리부룩..

 

 

그리고 스크랩북에 끼워져 있던 초등학교 1학년 성적표.  체육을 가장 못했다.  누리에게 보여주니 "왜 체육을 가장 못했냐"며 웃었다.  참고로 누리가 가장 좋아하는 교과목은 체육이다.  그만큼 잘하기도 한다.

 

 

한국에 있을 때 부모님집 벽지 교체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에 갈 때마다 한 쪽 벽에 누리의 키를 부모님이 적어놓았다.  가장 처음 기록은 지금 누리 허리쯤에 적혀 있다.  벽지를 교체하면 없어질지도 모르는 기록이라 사진으로 남겼다.  

 

 

지난 주말 누리가 라이스페이퍼로 쌈을 싸먹으며 한국에서 가장 좋았던 게, 그래서 다시 가고 싶은 게 이모집 근처 버블티라고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그때 지비도 "한국에서 별다른 게 좋다기보다 동네 버블티 같은 게 너무 좋았다"고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누리도 같은 이야기 해"하고 같이 웃었다.  이 버블티 집이 버로 그 집.  맛집도 아니고, 그냥 이모집 근처에 있는 곳이다.  세 잔 시키면 셋 모두 달라 조금 미안하긴 했다.  누리는 우유에 흑당 조금, 지비는 밀크티에 흑당 조금 그리고 나는 밀크티에 흑당 없이.  내년에 가게 되면 지비는 그냥 나처럼 흑당 없이 먹으라고 해야겠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뭘 먹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뷔페식당 애X리와 두고 고민한 뒤 고른 (또 이모집근처) 회전초밥집.  우리가 자가격리를 마치고 밥을 먹으러 간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모집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날 했던 것처럼 산책로를 걸었다.

 

 

우리가 비행기표를 구매할 때만해도 한국에서 영국으로 오면 자가격리를 해야했는데, 우리가 영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후에 한국에서 오는 여행객들의 자가격리 이행 의무가 없어졌다.  그래서 영국으로 돌아와 무리 없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가격리에 대비해 사두고간 짜X게티 한 박스와 밀가루들이 아주 우용했다.  

 

한국에서 돌아와 우리는 가족들과 가끔 줌미팅을 했다.  줌미팅을 좋아하는 손녀 때문에 나이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도 휴대전화에 줌앱을 깔았다.  우여곡절 끝에 접선 성공.  카카오톡과는 달리 여러 사람과 화상통화를 할 수 있어 좋다.  카카오톡도 언젠가는 이런 기능이 나오겠지.

 

 

그리고 누리의 생일을 기념한 줌미팅.  엄마가 절대로 사주지 않을 스타일이라며 한국에서 이모가 사서보낸 옷을 입고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에는 교복을 입으니 학교가기 전에 마음껏 입으라고 했다.  

 

 

학교에서 지난 여름 방학과 관련된 그림을 그린 누리 - 할머니와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그렸다.  할머니가 맛있는 걸 많이 해줬다고.  사실 할머니는 맛있는 걸 많이 해주고 싶어했지만, 누리가 워낙 제한된 음식만 먹으니 뭘 해줘야할지 몰라 고민이 많으셨다.  비록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그 할머니의 마음이 닿았는지 누리는 할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줬다고 기억했다.  누리가 그린 할머니의 머리스타일이 너무 재미있고, 할머니가 너무 이쁘게 나와서 이모에게 부모님댁에 가면 카카오톡 프로파일 사진을 이걸로 바꿔달라고 했다.  그리서 지금 이 할머니 그림은 할머니 카카오톡 프로파일 사진이 되었다.

 

어려웠던 점을 키워서보면 자가격리도, 더운 날씨도 힘들었을텐데 누리는 그보다 좋은 기억이 더 많다.  그게 참 다행이다.  그래서 다시 가고 싶고, 늘 가고 싶은 곳이 한국이니-.

 

+

 

매년 한국을 가지만 처음으로 시작에서 끝까지 기록해본 한국여행.  이걸로 2020년 한국여행의 기록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