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벌써 누리는 TV순이가 되었다. 가끔 낮잠에서 깨서 울땐 아무래 달래도, 물을 준대도 계속 울때가 있다. 그때 TV를 켜주면 울음을 그친다. 울음을 그치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동시에 허무하기도 하다. 엄마도 소용없고, TV가 전부냐 싶어서.
일전에 S님이 집에 아들을 데리고 놀러왔을 때 밥을 차려놓고도 정신이 없어 먹을 수가 없어 TV를 켜줘도 되냐고 물었더니 OK해서 켰다. 그런데 누리만 TV를 보더란.(' ' );;
TV를 얼마나 보여주냐고 물었더니 한 시간 정도 보여준다고 한다. '헙 대단하다'생각했는데 S님 집에 가보니 이해도 됐다. 장난감이 무지하게 많다. 정말 S님 말씀처럼 누리는 장난감이 없어서 책장의 책 계속 빼고, TV도 신나게 보고 그런걸까.
그렇다고 누리가 하루 종일 TV만 보는건 아니다. 주로 아침에 한 시간 또는 한 시간 반, 점심에 반 시간, 저녁에 반시간. 대략 두 세시간 본다. 가끔은 누리가 보는 건지, 내가 보는 건지 헛갈리기도 하지만. 아침에 길게 보는 이유는 그 시간에 누리 밥도 먹고, 나도 밥 먹고, 집안 일을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점심에는 내가 밥 먹을때, 저녁에는 저녁 준비할 때. 저녁 7시가 넘어가면 더 보고 싶어도 유아채널인 CBeebies가 끝나기 때문에 볼 수가 없다. 다행히 그 즈음엔 지비가 와서 한 숨 놓는다.
누리는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 저렇게 멀리 떨어져서 본다.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겠다는 듯이 혹은 수줍은 듯이.
나는 아기들이 시끄러운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소리가 지속적으로 나는. 그런데 누리를 보면 의외로 드라마 같은 걸 잘 본다. 물론 중간중간에 노래가 나오긴 한다. 영국이라 그런지 뮤지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 프로그램이 많다.
사실 지비와 나는 TV 때문에 적지 않은 실랑이를 벌였다. 누리가 어릴 땐 우유주면서 TV액션영화를 즐겨봐서 투닥투닥했다. 그건 내가 여러 번 뭐래도 소용이 없었는데, 어느 날 아동센터에서 가져온 리플렛을 보여줬다. 액션, 뉴스 같은 건 좋지 않다는 내용을 보고 서야 마음을 바꾸었다. 누리부 단TV액션영화지교구먼.
그 뒤엔 축구가 문제가 됐다. TV는 보지 않지만 노트북으로 경기를 보던 지비와 또 입씨름을 벌였다. 누리 앞에서 노트북을 열면 누리는 안달을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폴란드팀이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실적이 좋지 않은 관계로 모두 예선탈락 수준이라, 볼려고 해도 볼 경기가 없다.
그러고선 X factor라는 경연프로그램이 문제가 됐다. 음악경연이다보니 무대의 조명도 강하고, 소리도 강하다. 그게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지비가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날 누리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지비는 그 프로그램과 누리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의 연관성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고 한 번 더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날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 뒤부터 지비도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7시 CBeebies가 끝나면 누리가 잠들기 전까지 TV를 켜지 않는다.
이 사진은 그냥 같은 폴더에 있길래. 지난 11월 감기에 걸렸을 때라 턱받이를 하고 있다. 이 즈음 오신 또 다른 S님이 장남감 티 컵으로 마시는 걸 보여줬더니 혼자서 저러고 있다. 물론 나도 그 전에 마시는 걸 보여줬다. 그땐 쳐다만 볼뿐 따라하지 않더니.(- - );;
근데 장난감으로 마시는 시늉은 해도 실제로 누리는 컵으로 물을 마실 줄 모른다. 그것 참 이상하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