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3년

[life] 11월아 잘가라

토닥s 2013. 11. 30. 23:47

11월이 힘들꺼라고 예상했던 이유는 11월 한 달 매주 일요일에 있는 강의에 지비가 등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5일도 모자라 주6일을 누리와 보내게 될꺼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묵직했다.  그런데 나를 힘들게 한 것들은 다른데서 찾아왔다.


일단 지비가 등록했던 강의는 유보되었다.  학원이 일요일에 강의를 진행할 수 있는 라이센스가 없단다.(- - );;  그래서 강사 일정 맞추고, 수강생 일정 맞추고 그러느라 11월이 다가도록 시작되지도 않았다.


문제는 화장실(☞ 참고 [life] 긍정의 경지 http://todaksi.tistory.com/993 )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집 화장실에 물을 공급하는 파이프에서 물이 새 그 피해가 아랫집으로 갔다.  사람을 불러 수리하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번진 곰팡이도 청소하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마르기는 커녕 곰팡이가 번지고 있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넘어선듯하여 지비와 곰팡이를 처리해 줄 전문 업체를 불러 처리하기로 하였다.  화장실 문제처럼 우리가 그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  이 집을 지은 회사와 잘잘못을 나중에 따지기야 하겠지만, 집을 지은 회사는 화장실을 시공한 회사에 보상을 떠넘길듯하다, 일단은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화장실이 문제되고 나서 수시로 꼼꼼히 집안을 살피고 있는데, 우리집의 천정에 이젠 물이 새기 시작한다.  윗집에서 누수가 생긴 것이다.  아랫집에 문제가 될땐 건물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수시로 우리집에 찾아오더니, 이번엔 우리더러 윗집과 상의하란다.  그런데 그 집에서 누수가 있긴 하지만, 그 집엔 아무런 징후가 있는 게 아니라서, 더군다나 그 집은 임대라서, 우리의 절박함에 응답해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  그 집에 우리처럼 곰팡이 같은 문제가 생기면 이사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윗집에 지비의 고향 친구가 산다.  이건 또 좀 웃긴 인연이다.  이 집에서 2년 정도 산 뒤 둘은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만났다.  친구는 주중에 며칠만 집에 들리는터라 우리에게 열쇠를 맡기고 해결하도록 도와주겠다 했다.


우리집에 화장실을 고치러 들른 배관공은 곰팡이가 계속 생기는 이유도, 이렇게 쉬 마르지 않는 이유도 윗집 누수에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그게 처리될때까지 우린 화장실 벽 뒤에 번지고 있는 곰팡이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다행히 다른 욕실이 있어 그걸 쓰면 되긴 하지만, 거의 한 달째 곰팡이 핀 화장실 벽을 그대로 두고 보자니 속이 팍팍 썩는다.


그러고보니 10월에 청구된 900파운드 가까운 물/전기/가스 고지서 건도 있었다.  그것도 한달 가까이 고지서를 관리하는 회사와 입씨름을 벌여 650파운드 정도에서 마무리 되었다.  11월에 냈다.(ㅠㅠ )


지비는 우리가 이런 판자조각 같은 집에 우리로서는 꽤 큰 금액의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데 기가 찬다고 하고, 하루에 한 번 집을 지은 회사에 전화해 이건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쫓는게(독촉하는게) 지비의 일상이다.  심지어 그 와중에 유지보수를 담당하던 직원이 회사를 떠나 새로운 사람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생겼다.


우리집 천정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윗집의 배관을 열어봐야하는데, 그집이 문제라면, 그 일에 지비의 친구가 적극 돕기로 하면서 한 고비 넘어가는듯하지만 속이 썩는다.  이 집에 평생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어서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와중에 지비의 친구가 폴란드에서 영국으로 출장을 와서 잠시 들렸다.  곧 독일로 이주한다는 친구.  여자친구가 일본인인데 이주하는 곳이 일본인도, 한국인도 많은 북서쪽 독일이다.  리틀 도쿄도 있고, 리틀 서울도 있단다.  그러면서 (장난으로) 같이 가자고 한다.  우리는 그 장난에 귀가 솔깃할 정도다.  독일 사람들은 집을 이따위로 짓지는 않겠지 하면서.  그리고 독일은 강력한 부동산 억제 정책으로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비교적 부동산이 안정된 나라로 보인다.


정말 런던의 물가(주로 집값)는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그나마 우리는 2008년 경제위기 후 부동산 시장이 꽤 침체되었을 때 이곳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침체된 부동산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집값의 5%만 있어도 은행 대출이 가능하도록 정부가 부채질을 하고 난 뒤 순식간에(내 생각엔 1년도 안되는 사이) 런던 집값이 20% 올랐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에겐 인기 없는 우리집 같은 집(플랏/아파트)도 10%가 올랐다.  2008년 경제위기 이전 부동산이 정점일 때를 넘어선다고 한다.  런던에서 생활하는 현지인들은 이제 런던에서 자리잡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다.  그런 사람들은 런던 밖으로 나가고, 이제 런던을 채우는 건 외국인이다.  우리 같은 생활인 말고, 외국인 투자자들.


이런 외국인 투자자들이 있어 지비조차도 런던은 일본처럼 부동산 버블이 무너지지 않을꺼라고 생각한다.  글쎄, 그럴지도.  하지만 분명한 건 벌써 정상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아, 이 야기가 삼천포. 

요지는 이곳에서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 슬픈 사실이다.  


어쨌든 11월아 조심해서 잘 가거라, 뒷처리는 우리 손에 남겨두고.  12월엔 이 마음 어수선, 집안 어수선한 일들을 다 마무리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