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11weeks] 런더너 누리

토닥s 2012. 12. 2. 21:43

지비는 누리가 태어나고 3일만에 출생신고를 했다.  성격상 그런 일을 좀 서둘러 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여권 때문이었다.  출생신고서가 있어야 여권을 신청할 수 있으니. 

간난 아기를 데리고, 머리도 못가누는 아기를 데리고 사진관에 가나 어쩌나 하고 있을 때 친구 알렉산드라가 자기 여권사진은 자기가 찍고 포토샵으로 했다는 이야기에 우리도 집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실 지비의 영주권 신청때 사진도 집에서 찍긴 했다.

출생신고하고 이런저런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지비는 틈틈이 누리의 여권용 사진을 찍어댔다.  누리가 아직 목을 못 가누니 침대에 눕혀놓고서.


1차 시도!  태어난지 일주일 후쯤.



우는 애를 달래가며 눈뜬 사진을 겨우 찍었는데 내가 거절했다.  얼굴이 정면도 아니거니와 어깨선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실패!  


2차 시도!



..하였으나 누리가 지비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스스로 포기.  어떻게 찍었다 하더라도 배경지우기 힘들어 내가 거절했을테다.  또 실패!


3차 시도!



이만하면 됐다 하면서 마지막 사진으로 낙점!


근데 문제는 누리가 한가운데가 아니라 여권사진 사이즈에 맞춰 여백조절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무지하게 얼굴 크게 나왔다.(ㅜㅜ )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지난 수요일 드디어 영국여권을 받았다.  출생지 London.  우리는 "네가 런더너냐"며 막 웃었다.




우여곡절1


영국여권을 신청할 때 Countersignature라는게 필요하다.  쉽게 이해하면 보증인 또는 증인의 개념인데, 누리가 갖 태어났으니 지비를 2년 이상 아는 어느 영국인의 서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영국인은 공적인 영역에 현재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공무원, 신부 등등.  그제서야 우리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영국인이 없는거다. 

우리가 이민자니 주변엔 대부분 유럽인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은 영국 내에서 같은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몇 년을 살아도 영국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겨우 떠올린 친구 한 사람은 얼마전에 일종의 정리해고로 실직한 상태.  여권을 다루는 기관에 이 보증인에 대해서 문의하니, 실직해도 괜찮냐고, 그쪽에서 정 어려우면 직장의 상관으로부터 받아도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비가 현재의 직장으로 옮긴 건 7개월 전.  혹시나하고 직장 상사에게 물어보니 2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 대답을 두고 우린 "역시 영국인"이라고.

결국은 또 한 번의 문의를 통해 SKY NEWS에서 일하는 지비의 친구 디나에게 부탁했다.  직업이 저널리스트니 '대충' 공적인 영역의 종사자로 쳐준거다.  사실 디나는 자마이칸 이민 3세대.  영국이라는 나라, 런던이라는 곳이 그렇다.  정말 영국인을 만나기 어렵다.


우여곡절2


디나에게 서명을 받아 여권신청서를 보내고 우리는 여권을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가도 답신이 없어서 여권을 다루는 기관에 문의를 했더니 보증인이 서명해서 보내야 하는 서류를 보증인 앞으로 이미 두 차례나 보냈는데 응답이 없다는 거다.  어떻게 된거냐 하면서 연락이 닿기 힘든 디나에게 연락을 했더니 디나는 받은 서류가 없다고.  다시 여권 기관에 문의하니 자기들은 보냈다고해서 주소를 물어보니 디나의 직장으로 서류를 보낸거다.  우리가 신청서를 작성할 땐 디나가 집주소를 썼는데 그쪽에서 확인을 위해 그랬는지 직장으로 서류를 보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허술하지는 않네"라고 우리 둘이 깜놀.  어쨌든 디나가 직장으로 온 서류를 받아 팩스로 보냈다.   그런데 여권 기관에서 우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보증인이 팩스를 보내면서 서명하는 걸 까먹었다고.(- - );;

연락이 닿기 힘든 디나에게 또 연락해서 마침내 '서명한' 서류를 팩스를 지난 금요일에 다시 보내고 그날 일자로 발급된 여권을 드디어 받았다.


여권을 받고서 지비랑 내가 너무 신기해했다.  우리도 없는 영국여권을 누리가 받게 된 것이.  출생증명서도 누리의 존재를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서류이긴 하지만, 사진이 있는 여권은 그 느낌이 더 선명했다고나 할까. 


지비는 벌써부터 누리를 데리고 국경을 넘게 될 일이 생기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런 상상으로 즐겁다.  세 명의 가족이 세 나라의 여권을 들이밀면 재미있겠다 하면서.  여권을 받은 다음 날부터 한국가는 비행기표 알아본다고 또 여념이 없다.  그러니 지비가 살이 안찐다.( ' ')



여권 사진을 위해 찍었던 사진을 꺼내려고 지난 폴더들을 열어보니 고작 두 달 전인데 누리 얼굴이 많이 다르고, 많이 컸다.  그 사진보면서 다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