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9weeks] 요술 아기침대

토닥s 2012. 11. 14. 20:06

우리 집엔 요술 아기침대가 있다.  아기를 넣으면 바로 잠이 드는 그런 기특한 아기침대가 아니라 자던 아기도 넣으면 아기가 깨는 요술 아기침대.(ㅡㅜ )


예전에 결혼한 친구가 아기를 낳고보니 필요없는 게 침대라며 왜 큰 돈을 들여 침대를 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혼 혼수로 포켓스프링매트를 사고서 너무 좋다고 했던 친구인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땐 '그런가? 왜?'했다.  대략의 설명은 그랬다.  아기랑 엄마랑 함께 자게되면 아빠가 잘 공간이 없어 도의적으로 다 함께 바닥에 잔다는.  물론 새벽에 밤잠 설치기 싫은 아빠들은 '개인적'으로 거실이나 다른 방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친구의 그 말이 기억속에 있었는데 앞서 살던 집의 침대가 킹사이즈였다(영국에선 공간을 임대할 때 가구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불필요하게 큰 침대라고 생각했다가, 손님오면 가로로 4명도 잘 수 있겠다고 지비랑 키들거렸다.  정말 침대가 컸다.  '애가 생길 걸 고려하면 한국의 부모들은 킹사이즈를 사지'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새집으로 이사를 오면서는 가구를 모두 우리가 샀다.  그땐 당연히 더블사이즈 침대를 샀다.  이곳은 아기가 생겨도 따로들 재우니까.  그리고 우리도 아이가 생겨 아기침대를 샀다.


아기침대를 살 땐 매트리스가 놓이는 부분의 높낮이도 조절되고 한쪽 턱을 떼어낼 수 있는 것으로 샀다.  그러면 아기가 어느정도 자라 직접 올라가서 잠들 수 있는 것으로 향후 2년 정도 쓸 수 있으니까.  물론 그 중에서 저렴한 것으로.  하지만 매트리스는 우리도 못써본 포켓스프링으로.  폼으로 만들어진 매트리스가 소프트하고 저렴하지만 아직 뼈가 단단해지지 않은 아기에게 너무 무른 침대는 좋지 않다고 해서.  침대보다 매트리스가 훨씬 비쌌다.

어쨌거나 아기가 태어나기 전 아기침대를 사놓으니 출산준비가 다된 기분이었다.  누리가 태어나고 처음 2~3주는 누가 업어가도 잘 기세로 자곤 했기 때문에, 물론 아기니까 밤낮으로 깨긴 했지만,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3주쯤부터 시작됐다.  누리가 아기침대에서 자기 싫어했다.  자기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다가도 아기침대에 넣으면 깨버렸다.

그렇게 2~3주를 시달렸다.  새벽에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곤 다시 잠들기 위해 한 시간 정도를 안고 있어야 했다.  금새 잠은 들었지만, 아기침대에 놓는 순간 깨버려서 한 시간 정도 안고 충분히 잠든 후에 아기침대에 내려놓곤 했다.  그땐 밤잠을 못자서 눈이 퀭-.


아기침대가 추운건지, 딱딱한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런 글이 꽤 올라 있는 것으로 봐서 누리가 아주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제시한 해법을 시도해봤다.  엄마의 씻지 않은 베개커버를 아기 아래 깔기.  통하지 않았다.

별로 크지 않은 방이지만 누리가 새벽에 깰 때마다 내 침대와 아기침대를 오가는 게 힘들었다.  누리를 안고 졸려하고 있으니 역시 잠을 설치던 지비가 그냥 지비와 나 사이, 우리 침대에 재우자고 했다.  졸려서 "그럴까?"하면서 냉큼 누리를 내려놓고 잠들었다.  그때부터 우리도, 누리도 새벽에 깨지 않고 잠잘 수 있게 됐다.  그때가 5~6주쯤.

덩치는 가장 작지만 크지도 않은 더블침대 한 가운데서 大자로 자는 누리 때문에 지비랑 나는 침대 양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자지만 깨지 않고 밤잠을 잘 수 있다는데 행복해하면서 잔다.



이 사진은 3주쯤 됐을 때다.  저 땐 저 옷이 저렇게 컸는데 지금은 딱맞다.




누리 얼굴보다 크던 딸랑이가 사실은 내 손보다 작은 사이즈.  지금은 누리 얼굴이 더 큰 것 같다.( ' ');;



아기와 함께 잠들지 않는 이곳의 문화라서 친구 알렉산드라도 "그러면 나중에 고생한다면서 아기침대에 재워야한다고"했지만 지비와 나는 당장 밤잠을 잘 수 있는 게 그렇지 못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이래도 될까?'하고 걱정이 들기는 했다.  그 즈음 한국의 전통육아를 담은 EBS다큐프라임을 보고 '그래 아기는 엄마의 체온이 필요해'하면서 마음의 짐을 1/3쯤 덜었다.


☞ EBS다큐프라임 <오래된 미래, 전통육아의 비밀> http://www.youtube.com/watch?v=J7B9-r1lqzI


언니와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언니가 누리가 밤엔 잘자냐고 물어 여차여차해서 저차저차 함께 자고 있다 했더니 아직은 엄마가 필요할 때니 괜찮다고 했다.  억울하게도 안겨서 잘 자다가도 내려놓으면 깬다고 했더니 언니가 어른들이 말하기를 '아기 등에 가시가 달려있다'고 한다나.  그 말 들으면서 맞다맞다 막 웃으면서 다시 마음의 짐을 1/3 덜었다.


아기침대는 가끔 누리가 초저녁에 잠들었을 때, 누리를 깨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아기침대에 누리를 넣으면 깬다.( - -);;

졸려워하는 낮엔 누리를 아기침대에 넣어도 잔다.  그런데 밤엔 안잔다.  왜 그럴까? 


누리가 자기 침대에서 잠들면 참 좋겠다 생각은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누리랑 함께 잔다.  잠들지 못하는 밤보다 잠들 수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서 침대에 대롱대롱 매달린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