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4weeks] 진정해, 등신들아! Calm down, idiots!

토닥s 2012. 10. 16. 18:50

삼칠일 같은 개념이 없는 이곳에선 아이를 낳고 며칠 만에 산모와 아기가 외출을 하기도 하고, 손님들도 산모와 아기를 보러 방문을 하기도 한다.  내가 이곳에 살아서가 아니라 그런 것에 원래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라 오는 손님 막지 않았다.  지비로서는 나름대로 집에 하루 종일 누리와 있는 나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해서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기도 했다.  주말마다 친구들이 다녀갔다.  


지지난주 다녀간 친구들은 커플이긴 하지만 결혼과 같은 미래가 없는 커플이라 그저 집에 있는 우리를 만나러 온 정도였다.   아기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잠시 들른 해롤드와 함께 부동산 경기와 직업 전망을 이야기하다 돌아갔으니 누리의 밥때와 기저귀 갈때 조절이 불가능한 나로써는 약간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지난주는 지비의 친구 올림피아와 지비의 사촌형 가족이 다녀갔다.  올림피아는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기를 기대하는 친구라 이곳에서 출산을 한 내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아기를 좋아하는 친구라 우리가 차 마시는 사이에 누리를 안아주기도 하고 우유를 주기도 해서 길지 않은 시간을 머무르기도 했지만 정말 부담없는 시간이었다.  지비의 사촌형 가족?  당연 올 9월에 학교를 들어간 딸을 둔 가족이라 나를 더 없이 편안하게 해주었고, 도움이 되는 많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올림피아와 모유수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다 그녀가 이곳 폴란드 클리닉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이곳에서 조산사가 내게 주는 진단과 조언이라고는 아기를 굶기고 무조건 젖을 물리라는 것뿐이어서 그 제안에 솔깃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폴란드 클리닉에서는 한국처럼 진단과 함께 맛사지와 같은 처치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았다.  1회 방문에 70~80파운드 정도가 들긴 하겠지만, 이대로 모유수유를 시도하는 것의 의미있는지 혹은 맛사지와 같은 처방이 모유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비랑 나는 폴란드 클리닉을 알아보고 휴가를 잡아 함께 가보기로 했다.


올림피아가 다녀가고 사촌형 부부 보이텍과 고샤가 왔을 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자신들도 한 번 폴란드 클리닉을 경험해본 일이 있지만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친구 중에 폴란드 클리닉에서 좋은 이미지를 얻은 이가 있으니 그 친구가 다녀간 클리닉을 알아봐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고샤가 했던 말은, 폴란드의 부모들과 클리닉은 극성스러운 면이 있다고.  작은 것에도 부모들은 호들갑을 떨고 클리닉으로 달려가고, 클리닉은 그 호들갑을 이용해 돈을 벌 요량으로 처방과 처치를 남발한다는 의견이었다. 

그 에 비해 영국의 시스템은 처방과 처치를 최대한 자제한다는 것.  사실 이 부분은 이곳의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봤을 때 폴란드인과 한국인들은 참 비슷한 구석이 많다.  그러면서 날 더러 모유수유에 대해서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시간을 가져보라고 했다.  사실 모유수유뿐 아니라 누리의 얼굴에 발진이 있어 의사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조산사에게 한 번 물었더니, 보고선 없어질꺼라고 말했는데 그 뒤로 발진이 심해져 조산사의 말을 믿어야 하나 어째야하나 고민 중이었다.  고샤의 말을 듣고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모유수유도, 얼굴의 발진도.  두 가지 모두 시기를 놓치면 어쩌나 마음 한구석에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자기들도 딸 수시아를 낳고서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고.  약간 긴 분만을 통해 딸 수시아를 얻고 집에 돌아왔는데, 수시아가 24시간 동안 깨지도 않고 잠만 자더란다.  병원에선 신생아가 너무 오래자는 것도 좋지 않다고 깨워 우유를 먹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잠만 자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고.  심지어는 수시아가 숨을 쉬는지 여러 번 코 앞에 손가락을 대고 확인을 해봤다 한다.  잠자는 시간이 너무 길어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엠블런스를 불러야 하나 하면서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그들 표현으론 전화로 다급하게 울부짖었다고, 전화 건너편 상담자가 소리쳤단다.

"Calm down, idiots! 진정해, 등신들아!"

idiot는 해석하면 바보쯤 되지만 상담자의 감정실린 소리침은 바보보다는 '등신'에 더 가깝겠다.  상담자는 아기도 분만에 지쳐 길게 잠들었을뿐 그렇게 호들갑을 떨 건은 아니라는.  정 걱정이 되면 날이 밝으면 병원으로 데려와보라고 했는데, 물론 그 다음부터 수시아는 깨기도 하고 우유도 잘 먹어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 비슷한 경험을 몇 차례 더하면서 고샤는 호들갑 떨지 않는 이곳의 문화가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지금은 웃긴 에피소드가 된 고샤와 보이텍의 경험과 조언이 많은 힘이 됐다.  그 이야기를 듣고 폴란드 클리닉에 가보기로 했던 마음은 다시 바꾸었다.  한 두 시간만에 마음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늘 집안 크고 작은 일에 시원하게 마음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의견따라 흔들리는 엄마더러 귀가 얇다고 언니와 내가 나무랬건만.  내 귀가 나도 모르게 얇아졌나보다.  갈무리의 가사처럼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다.






올 9월에 학교에 간 수시아.  어른들은 떠든다고 정신이 없는 가운데 누리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손님이다.  발도 보고 싶고, 손도 보고 싶은 수시아.


부담없이 유쾌한 시간이었는데 그런 고샤와 보이텍에게도 아직 '극성스러운 면'이 남아 있어 지비와 내가 그들이 돌아간 뒤 한참 웃었다.  늘 얼굴이 잊혀질만 하면 보는 수시아라서 늘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낯설다.  그나마 지비는 폴란드어로 이런 말 저런 말을 걸어보곤 하고, 또 폴란드어를 한다는 사실이 수시아에게 동질감을 주는 것 같지만 영어만 하는, 게다가 인종적으로 확실하게 다른 나는 낯설만도 한다.

학교에 가게 된 수시아에게 학교는 재미있는지 물었더니 부끄러움에 몸을 비비꼬는 수시아 옆에서 고샤가 1초도 안기다리고 "힘들대"하면서 대신 대답해버렸다.  내가 다시 수시아에게 "왜?"라고 물었는데 이번엔 보이텍이 "하루 종일 놀기만 하던 프리스쿨pre-school과는 달리 숙제가 있어 힘들다"고 대답했다.

내가 계속해서 수시아를 보고 한 반엔 몇 명의 친구들이 있는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물었는데, 사실 나는 그런 내용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수시아가 직접 말하게 하고 싶었는데 고샤와 보이텍은 1초를 기다리지 않고 모두 대신 대답해버렸다.  정말 폴란드의 부모와 한국의 부모들은 똑같아 하면서 지비랑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웃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나는 한국에서 일할 때 그런 욕구와 많이 부딪혔다.  어린이나 장애인 또는 손이 더딘 노인들을 교육하면서 어떨 땐 그들의 느린 손놀림을 참지 못해 몇 번이고 '비켜봐 내가 할께'라고 할뻔한 순간을 얼마나 많이 넘겼던가.  그땐 혼자서 손을 꼭쥐다 못해 입술을 깨물 지경이었다.  그렇게 '기다림'이라는 것이, '지켜봐주기'라는 것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내가 이 앎을 누리가 커가는 동안에도 잊지 않을지는 나도 확신이 안선다.  다만 그럴 수 있기를 바랄뿐.



요건 보너스!  좀 크기가 작아 입고 벗기가 힘들긴 하지만 너무 귀여워서 지비와 내가 좋아하는 옷.  사실 겨울외출복이 요거 하나뿐이긴 하다.




모유수유도 목을 겨우 축이는 수준에서 가끔 목울대로 뭔가 넘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얼굴에 발진이 있긴 하지만 고르게 체중을 늘려가며 누리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