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life] 과일

토닥s 2012. 6. 20. 02:18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이 겁나긴 하지만, 먹고 싶은 건 먹자는 지론이라서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  산책 삼아 걸으러 나가면서 과일을 사왔다.  먼저 요즘 매일 같이 먹고 있는 라즈베리Rasberry와 바나나를 슈퍼마켓에서 샀다.  이곳에서 먹는 라즈베리는 한국에서 먹던 산딸기와는 조금 다르게 씨가 딱딱해서 먹지 않았는데, 어쩌다 그도 맛들이고 나니 그럭저럭 먹을만해서 자주 먹는다.  어릴 땐 산딸기에 하얀 설탕을 솔솔솔 뿌려 먹었는데.

그땐 왜 수박이며, 딸기며, 심지어 토마토며 모든 과일에 설탕을 뿌려 먹었을까?  개량 기술이 요즘과 같지 않아 과일이 덜 달았던 걸까?  얼마전 영화 <국가대표>를 지비와 보면서 토마토를 과일처럼 설탕을 뿌려 먹었다하니 이해를 못한다.  지비에겐 토마토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일뿐이고, 더군다나 설탕이라니 말이다.  어지간히 몸 생각하는 친구라 과일은 있는 그대로 먹어야 한다는 지론.  그래도 내가 라즈베리에 설탕을 한 스푼 솔솔 뿌렸다가 차게해서 주니 맛있단다.


바나나는 지비가 도시락과 함께 들고 가기도 하고, 내가 배고플 때 먹기도 해서 늘 채워두는 편이다.  하여간 라즈베리와 바나나, 그리고 다른 것들을 사서 슈퍼마켓을 나섰는데 길거리 상점에 지난 주말 S님이 주신 납짝 복숭아가 있는거다.  여기선 Doughnut peach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먹는 복숭아와 맛은 같되 납짝하게 눌러놓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릴 때 없던 알레르기 때문에 20대 이후로 한국에서도 복숭아는 안먹었다.  복숭아가 맛있긴 한데 먹으려고 씻으면 씻은 손이 가려워 자연스레 먹지 않게 됐다.   물론 엄마가 깎아주면 먹었지. 여기서도 멀리했는데, 지난 주말 너무 맛있게 먹어 사버렸다.  옆에 있던 살구도 너무 탐스럽게 보여 사버렸고.  각각 £1.50니까 가격도 저렴하고. 



과일을 담은 장바구니를 안고 집으로 오면서도 어떻게 씻을까 생각하고, 집에 도착하자 말자 몇 개를 골라 고무장갑을 끼고 뽀득뽀득 씻었다.  아쉬운대로 디카페인 인스턴트 커피로 아이스커피를 만들고 순식간에 살구 네 개, 복숭아 한 개를 먹어버렸다.  별로 크지 않았다고 변명하지만, 요즘 내가 가끔 걸신들린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과일이니까 괜찮다고 다시 변명하면서. ( ' ');;


영국은 과일이 그렇게 비싸지 않은 편이다.  사진에 보이는 모두 과일을 £3에 산거니까.  £3를 다시 한화로 계산하면 그리 싼 가격은 아니지만 다른 물가에 비해서 비싸지 않은 것 같다.  과일이나 채소는 주로 스페인에서 많이 들어온다.  이 가격에 우리가 산 것이라면 농민들은 그야말로 헐값에 넘겼을텐데.  맛있게 먹으면서도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껄끄럽다.


언젠가도 언급했지만 <나는 꼽사리다>에서 들은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도 마음이 껄끄럽다.  대학에서 강연하면서 대부분 타향살이일 학생들에게 우석훈 박사가 일주일 이내에 과일 먹어본 사람, 이주일 이내에 과일 먹어본 사람, 그리고 한달 이내 과일 먹어본 사람을 물었더니 의외로 과일을 먹는 수가 띄엄띄엄 하더라는 것.  '한달 이내 과일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 손을 부끄러워 들지 못했다고, 강연 뒤 찾아와서 말한 학생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마음이 짠했다.  타향살이했던 친구들에게 과일이나 채소가 혼가 먹기에 양이 많고 가격 또한 비싸 잘 먹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달 동안 과일을 먹어보지 못한 젊은이라니.  그 흔한 귤, 바나나도 있는데 말이다.  그게 우리나라의 미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찹하다.  그렬러고 그렇게 아둥바둥 살고 있나 싶은 게.. 슬프다.


작은 사물에도 세계가 담겨 있다는 말, 오늘 내가 즐겁게 먹은 복숭아, 살구와 함께 다시 나에게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