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book] 우리가 사랑한 1초들

토닥s 2012. 6. 13. 00:55


곽재구(2011). <우리가 사랑한 1초들>. 톨.


어느 순간부터 사회관련 책들이 도돌이표 같은 그리고 답도 없는 잔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올 초 한국에서 책을 주문하면서 문학서적을 좀 구입했다.  사회관련 책들은 유행이라는 게 있어 시간이 지나면 잘 읽어지지 않지만, 문학은 좀 다르겠지 하면서.  이 책에 앞서 읽은 책들은 나를 약간 '분노하게'만들었다.  그래서 서평도 없다.  간략하게 쓸 수도 있지만 좋은 말로 남기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내게 분노와 실망감을 남겨준 책들을 뒤로하고, 나를 분명하게 실망시키지 않을 책으로 골라들었다.  바로 곽재구의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


시인 곽재구가 타고르의 고향에서 머무른 1년 반동 안의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곽재구'라는 시인 때문에 샀다.  그 내용이 타고르의 고향에서 지낸 시간의 기록인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내가 곽재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내게는 어렵기만한 그의 시지만 그의 이름은 외면하기 힘들어서, 신간이 나오면 그냥 사보는 편이라고 할까.  사실 인도에서의 시간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안샀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사랑한 1초는 인도인의 매순간, 모든 것이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피부로 느껴가면서, 왜 그들이 그렇게 사는지를 알아가는 매순간과 모든 것.  때로는 그렇게 살아가는데 이유가 없다.  그게 시인의 깨달음이다.


사실 아무리 착한 마음을 먹고 봐도 나 같은 사람은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인도에서의 시간에 관한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사지 않았을 꺼라고 이야기 하는 거다.  내가 보는 그들의 삶의 방식은 '순응'의 방식이라 나 같이 의심많고, 호전적(?)인 사람은 이해가 안되는 거다.  빈곤과 카스트가 대표적이다.  그래도 시인의 눈에는 빈곤과 카스트를 거부하지 않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방식이 평화롭기만 한가보다.  절대 나는 그럴 수가 없는데.


그래도 아예 말이 안되는 책이라면 건성으로 읽고 말았을 시인의 산문집.  활자수도 많지 않은 이 책을 다른 책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결론은 '그래도 나는 이해가 안된다'이다.


+


올초 들었던 요가수업에서 토요일 오전시간을 커버해줄 강사가 구해지지 않아 매주 강사가 바뀌었다.  거의 두 달간 지비와 나는 다양한 스타일의 요가와 강사를 만나볼 수 있었다.  6~7명 중 영국인이 2명이 전부였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 강사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강사가 한 명있다.  이름은 모르겠다.  지비는 이 강사의 수업에 만족하여, 요가스튜디오 운영자에게 메일을 쓰기도 했다.  수업이 너무 좋았고, 그런 사람이 강사가 되면 참 좋겠다고.

떠돌이 같은 봇짐을 들고온 강사는, 가방에 침낭 같은 게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와 다이나믹한 요가 그리고 명상과 허브맛사지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이완단계에 이르러 바닥에 누워있는데 강사가 내 머리 위로 와 허브오일로 목덜미를 맛사지 해주었다.  호..(ˇ.ˇ )

그 강사와의 수업 후 만나는 사람마다 남자친구가 요가 강사라면 참 멋진 일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비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물론 지비의 경우는 여자친구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싱글인 S님께도 요가 스튜디오로 오라고 적극권장하기도 했는데.  그 강사는 한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내가 왜 이이야기를 꺼내냐고.  남자친구가 요가 강사면 참 좋겠지만, 남자친구가 시인이면 참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타고르의 언어인 벵골어를 배우겠다고 인도로 가서 일년 반 동안 돌아오지 않는 남자친구 또는 남편을 상상해보라.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