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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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s 2012. 2. 19. 23:53
영국에 살아도 축구랑은 정말 무관한 나 같은 사람도 지난 한 주는 축구와 관련된 뉴스를 숱하게 많이 본 한 주였다.  참 이상한 일주일이었고, 동시에 영국 사람들의 축구에 관한 관심은 정말 높구나 하는 걸 느꼈다. 

유명 축구 감독의 세금 회피
가장 먼저 스타트한 것은 현재 토튼햄의 감독, 여기선 매니저manager라고들 한다, 해리 레드냅Harry Redknapp의 세금 회피에 관한 공판 결과였다.  5년 전 사우스햄튼에 있을 당시 구단주로부터 돈을 받았고, 이 돈은 그의 해외계좌로 유치되면서 세금을 회피한 혐의다.  한국으로치면 국세청에서 고소한 건인데, 결과는 해리의 무죄로 나왔다.  구단주는 친구로써 돈을 주었을뿐 감독직에 관한 돈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 또는 보너스 같이 세금징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 관련기사 http://www.guardian.co.uk/uk/2012/feb/08/harry-redknapp-milan-mandaric-cleared
그 공판 결과를 보면서 참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세금 회피다.  이미 돈이 많은 사람들이 왜 저런 불명예스런 일을 감수하고도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0%의 세금이 아깝기는 하겠지만, 또 그 만큼 많이 버는 사람들 아닌가.
어쨌거나 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렸고, 그는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법원을 떠났다.

잉글랜드 감독의 사퇴
해리가 공판에서 무죄를 받은 다음 날 4년 여 잉글랜드팀을 이끌어 왔던 감독 파비오 카펠로Fabio Cepello가 사퇴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사퇴의 의사를 밝혔고, 축구협회는 그 의사를 수락했다는 간략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파장은 대단했다.  당장 유로컵 있고, 올림픽있는데 '어떻게해, 어떻게해'하면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 관련기사 http://www.bbc.co.uk/sport/0/football/16941457
파비오 감독의 사퇴 일주일 전 잉글랜드팀의 주장인 존 테리John Terry가 주장직을 상실했다.  그 이유는 인종차별적 발언 때문이었다.  경기 도중 상대팀의 선수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고, 카메라에 찍혔다.  그를 이유로 축구협회는 주장직을 철회 시켰다.  이 결정과정에 파비오는 참여하지 않았고, 존 테리가 주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옹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했다는 '설'이 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 관련기사 http://www.bbc.co.uk/sport/0/football/16866149
이 곳 사람들의 축구에 관한 열정을 생각할 때, 시기의 엄중함(?)을 생각할 때 왜 안잡을까하고 나 같은 보통사람은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동안 잉글랜드팀의 실적이 좋지 않아 축구협회에서는 그를 해고하고 싶었으나 일방적 계약해지에 따르는 위약금을 물어줄 돈이 없어 해고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더라는. 

화해를 거부한 수와레즈
축구 때문에 들썩이던 한 주가 끝나가는 토요일 오후, 또 다시 영국 축구사에 획을 그을만한 일이 벌어졌다.  내 기준에는.  상대팀 선수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서 몇 경기 출전을 정지당한 루이스 수와레즈Luis Suarez가 재출전하게 된 뒤 처음으로 만난 그 상대팀 선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패트리스 에브라Patrice Evra의 악수를 거부했다.  맨유의 홈경기장에서 치러진 경기에서 선수입장을 할 때 맨유의 선수들이 먼저 입장해서 일렬로 서있고, 뒤 따라 들어오는 리버풀의 선수들과 차례로 악수하는데  앞에서부터 악수를 해오던 루이스가 패트리스의 악수를 거부하고 다음 선수로 점프했다.  카메라에 담긴 선명한 그 모습을 보고, '미쳤구나'하고 생각했다.  그의 저급한 태도는 인종차별적 발언에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 관련기사 http://www.bbc.co.uk/sport/0/football/17004667
사실 애초 인종차별 발언으로 출전 정지가 된 루이스가 나는 이해가 안됐다.  우루과이 출신의 그는 내 기준에선 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분류하는지는 모르지만, 또는 선조가 스페인쯤 되는지는 모르지만, 유럽인들의 시각에선 그는 '라틴아메이칸'일 뿐이고, 그 넒은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오와 혼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데 어떻게 인종차별을 해?  내겐 한 마디로 불가사의였다. 
경기 시작부터 문제가 된 루이스의 행동은 경기에서 그가 한 골을 넣어도 길이길이 화제가 될 사안이었다.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리버풀의 감독은 "나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말해 그를 두둔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장이 커지고, 하루가 지나서 루이스는 사과했지만, 애초 출전 정지 후 돌아와 반성하지 않고 이 같이 행동한 루이스의 마지못한 빈껍데기 사과로 보였다.  경기 후 맨유의 감독은 리버풀의 감독과는 다르게 "이건 폭동을 일으킬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강도높게 말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볼때 있을법도 한 일이다.
악수를 거부한 토요일이 지나고, 빈껍데기 사과를 한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서도 새로운 뉴스들이 쏟아져나왔다.  새롭게 쏟아진 뉴스들은 왜 루이스가 다급사과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미국의 리버풀 구단주들이 이 사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영국축구협회가 이 사안에 관해서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겠다고 마무리하면서 사태는 끝이 났지만 새겨볼만한 일이다.


축구와 관련해서 왜 이런 저급한 이슈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걸까하고 지비랑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둘다 똑같은 답을 냈다.  'uneducated'라고.  그야말로 못배워서 그렇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배운다는 건 공식적인 교육만 의미한다는 게 아니란 걸 다시 깨닫는다.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문화를 가졌냐고 물으면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