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figure] £26000

토닥s 2012. 2. 6. 05:21
영국 정부가 복지수당, 보통 베네핏 benefit이라고 한다,을 수정하는 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얼마전엔 아동수당 child benefit을 셋째 아이부터 제한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자와 경기불황으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각종 사회적 예산이 삭감되고, 공공부문 정리해고가 예고된 가운데 사회안전망인 복지수당 예외없이 손을 보겠다는 것이다.  정말 가난한 사람들은 발 붙일 곳이 없구나라는 걱정도 되지만, 사회안전망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 자라난 지비와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이곳의 시스템이고, 이곳 사람들의 인식이다.

가장 최근에 뉴스화 된 이슈는 연간 지불되는 각종 복지수당의 합이 £26000를 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하겠다는 내용이다.  £26000을 원화로 환산하면 대락 4천500만원쯤 된다.  하지만 물가 등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대략 2천600만원 정도의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정도 돈이면 과연 한 가족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을까.  사실 많이 부족한 편이긴 하다.
지금까지 영국의 가족들은 직업이 없는 경우, 그 이 상의 복지수당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복지수당은 아동수당, 주택수당, 실업보조수당, 저임금수당 정도다.  아래 링크를 보면 영국의 가족들이 받는 수당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 Family life on benefits http://www.bbc.co.uk/news/uk-16812185

링크에서 소개된 가족의 경우는 연간 £30000 정도의 복지수당을 받는다.  한 가족이 생활하기에 넉넉한 돈은 아니다.  그러면 £30000이라는 돈은 영국사회에서 어느 정도 가치의 돈일까. 
이제 이곳엔 정규직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직업을 처음 갖게 될 경우 받게 될 연봉은 £18000에서 £22000정도다.  이것도 영국회사의 경우고, 영국에 소재한 작은 한국회사에 들어갈 경우 사실 £10000도 받기 어렵다.  이곳에서 IT로 2~3년의 경력을 쌓은 뒤에야 지비도 겨우 £25000정도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래서 £26000은 한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돈이지만, £26000정도의 임금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적은 돈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베네핏 보다 적은 돈을 받으면서 힘들게 일하기 보다는 그냥 베네핏으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사회안전망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많은 돈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물론 베네핏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다, 그런 그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사회안전 시스템은 변해야 한다.
이것이 베네핏의 규모를 더 줄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더 많은 돈이 일자리 창출이나, 자기 개발에 쓰여질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내가 영어 수업을 듣는 곳은 시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한국식으로 보자면 평생학습기관쯤 되겠다.  여기엔 10시간 정도의 강좌가 보통 £150쯤 한다.  사설 기관에 비하면 절반 혹은 그보다 훨씬 저렴하다.  만약 학생이거나, 장애인이거나, 실업자거나, 난민이라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는 concessionary라고 한다.  보통 코스 비용의 20~30%정도만 내면 되고, 어떤 경우는 무료다.  조금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영국 또는 EU인이 아닌 경우는 보통 코스 비용의 2~3배를 내야 한다. :(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평생학습기관에 직업과 관련된 코스는 많이 부족하고, 있다고 하여도 사설 기관과 다름 없이 비싸다.  한국처럼 요리와 같은 직업훈련과정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본적이 없다.
좀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어지는 베네핏을 소비만 하는 시스템이 아닌 재생산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부메랑 비용
이곳에서 살면서 참 의아했던 점은 사람들이 별로 저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주아주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또는 비판받을 여지가 많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정부는 사람들을 사회안전망으로 길들였고, 지금은 그 길들여진 사람들이 정부에게 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길들여진 사람들은 정부에 저항하지 않게 됐고, 어려워진 이 상황에서도 정부만 바라본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복지수당에 손을 대겠다고 하며 나서자 사람들이 놀랐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큰 사회적 저항을 볼 수가 없다는 거다.  앞서 말한 적지않은 수당의 규모가 일해서 세금내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부축이는 것도 큰 역할을 차지하리라 생각하지만 획을 그을만한 저항이 없다는 게 나는 참 신기하다.
얼마전 이런 이야기를 영어 선생과 나누었다.  "60년대, 70년대 데모 잘했잖아.  반전시위도 하고, 파업도 하고.  그런데 요즘은 왜 안해?"  선생의 반응이 "진짜, 그러네"였다.  

화살을 밖으로 돌리는 전략
한국도 그렇지만 이곳도 똑같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애꿎은 이민자들은 탓하고 나섰다.  그들이 일자리를 다 가져간다는 거다.  하지만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곳의 이민자들이 커버하고 있는 일들을 영국 사람들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겐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베네핏이 있고,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 그게 낫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자리뿐 아니라 이민자들이 베네핏을 받는다고 여론을 조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민자그룹중에서도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이슬람문화권의 가족들은 대부분 자녀수가 많다.  아동수당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이에 제한을 두기 위해 3번째 자녀부터 아동수당을 주지 않는 안도 나왔다.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틀린 말이라고 하는 점은 이 들은 이미 영국시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민자 체류신분인 경우, 유럽인이 아니라면 받을 수 있는 복지수당이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보는 대다수의 이민자들은 힘든 환경에서 불법, 합법으로 정말 많이 일한다.  불법인 경우는 적게 받고, 사회적 혜택이 없기 때문에 더 일해야 한다.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민자들은 주당 60시간은 기본으로 일한다.  어떻게 보면 이 들은 이 사회를 떠받들고 있는 가장 아랫 부분의 사람이면서, 이들이 없이는 사회가 유지되기 힘들어보인다.  그걸 아는 건 정치권이고, 모르는 건 보통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정치권은 화살을 이민자 그룹에게 돌리고 있다.


연간 받을 수 있는 복지수당을 연간 £26000으로 제안하자는 여당의 안에 대해 저항의 목소리는 희미하다.  모두다 어려워지니 이기심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돈을 얼마로 제한하자하는 기준에 관한 논쟁이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도, 그런 사람들의 의식을 이용한 정부가 먼저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차근차근 어려움이 오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챙겨가야 한다.

그런데 사실 현실은 그런 논의 방식과는 좀 거리가 있어보인다.  고속철도를 놓자느니, 새공항을 짓자느니, 그래서 건설로 일자리를 창출하자느니 그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이 놈의 자본주의는 참 안탑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