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1년

[coolture] 난치병

토닥s 2011. 12. 19. 20:18
내겐 몇 가지 난치병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건강염려증'.  어린 시절부터 크고 작은 질병들을 달고 살면서 생겨난 합병증이라고나 할까.

이제 막 GP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영국의 의료시스템이 한국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걸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 GP는 한국의 보건소 격이다.  한국처럼 1차 의료기관을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내 GP가 본인의 1차 의료기관이 된다.  물론 동네에서 자신의 GP를 정할 수도 있고, 마음에 안들면 바꿀 수도 있고, 그 GP에 못갈 사정이면 자신의 NHS번호를 들고 다른 GP에 방문해도 된다.  한국의 보건소가 국가기관/공공기관의 부분인 것처럼 영국의 GP도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보건소는 아주 드물고 개인 의료원이 골목마다 있지만, 영국의 GP는 동네마다 있다는 점.

지난 주에 들러서 GP방문을 예약하려고 했더니 평일 오전은 'walk in GP'니까 기다렸다가 진찰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서, 월요일로 예약을 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해서 예약했는데, 오늘 오후 바쁠 것 같아서 아침에 다녀온 참이다. 

한국에선 영국의 의료 시스템이 공공영역이라 경쟁력이 없고, 아파서 진찰 한 번 받으려고 하면 기다리다 아파 죽는다고 악명 높다는 걸 안다.  그런데 '꼭 그런가?' 싶을때가 많다.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으로부터 그런 경험담은 들어봤다.  괜찮은 GP 의사에게 진찰받기 위해, 그 의사는 예약이 꽉 차 있어, 심각하게 아픈 것으로 면담하여 예약시간을 당겨잡을 수 있었다는.  물론 나는 아이는 안키워봐서 갑자기 아픈 아이를 빨리 의사에게 보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땐 '그런가'하고 들었다.

근데 지금와서 드는 생각은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은 이곳 영국에서도 '한국의 스피드'로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스피드로 보자니 영국의 스피드는 달팽이 기어가는 것보다 늦게 느껴지는 것이다.  근데 이곳에서 그렇게 살면 애타는 본인만 손해라는 점.

영국과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분명 다르지만 닮은 구석이 있다.  한국의 국민의료보험제도 또한 영국의 NHS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전문적인 내용은 내 영역이 아니니 접어두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환자들의 태도만은 또는 의사들의 태도만은 두 나라가 확실이 다르다는 점이다. 

내가 엮어있는 로컬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에 간 날 감기가 들었다고 했더니, 그곳의 코디네이터인 샘Sam의 말이 따듯한 허브 차 많이 마시라는 거다.  그러면서 차를 권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감기에 관해 그렇게 반응한다.  비염으로 고생한다고 하면 뜨거운 물에 민트를 풀어서 증기를 쐬라고 권해준다.  한국처럼 감기에 관한 인사가 '약은 먹었니?'가 아니라는 점이다.
뭐 그러다가 병을 키우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그래도 안되면 약을 사먹고, 그래도 안되면 GP에 간다.  워낙 감기가 흔한 질병이라 감기약도 증상별로 많고 감기약은 GP의 처방없이 약국에서 상담만으로 살 수 있다.  것도 재정 형편에 따라 지불해야하는 약값도 다르다.
환자들의 태도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병에 관한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건강에 있어서 약은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관리와 예방이 중요하다는 표어 같은 말을 나는 왜 찍어내고 있는 것이냐.. 횡설..수설..

그래서 영국의 의료스시템이 한국의 보수언론이 언급하는 것처럼 아주 쓰레기는 아니라는 걸 꼭 한 번 말하고 싶었다.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GP에 가기전에 의사에게 어떻게 설명할까를 머리속으로 몇 번 정리했다.  영어니까, 것도 쉽지 않다.  웬만한 일들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도 필요한 만큼 물어서 해결해낼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병원은 그렇지 않아서 전자사전까지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혹시 설명을 제대로 못할까봐 평소에 먹는 약병까지 주머니에 챙겨 넣고.

예약없이 갔는데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10분이 안되게 면담했다.  지난해 받은 건강체크 결과를 모른체로 살았다고 하니, 문제가 없으니 연락을 않았겠지, 라는 아주 당연한 답을 하면서 걱정이 되면 피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피 두 번 뽑고 왔다. 
피 뽑기를 기다리면서 들었던 생각이 내 병은 '건강염려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병의 이유라면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것.  몸의 변화를 잘 느끼는 편이다.  근데 왜 살찌는 건 찌고 나서야 느끼는 걸까?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