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1년

[book] 사랑바보

토닥s 2011. 11. 22. 18:32

오소희(2011). <사랑바보>. 문학동네.

그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였다.  아마도 세계음악기행.  어린 아들과 여행을 다녀온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녀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친구 S에게도 추천은 했지만, 내가 그녀의 책을 읽은 건 한참 뒤다.  그녀의 첫책을 읽고서 '그렇구나'하는 느낌만 남고 감흥이 없어 더는 그녀의 책을 찾아보지 않게 됐다.  그녀의 새책 역시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를 고민하고 있는 중에 다시 그녀의 책을 만났다.  지나치지 않고 샀고, 그리고 이제야 읽었다. 

'인류가 마스터하지 못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사랑에 웃고 아파하면서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그녀가 썼다.
여행하면서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에 웃고 아파하는 사람들.
1/4쯤은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이 특이한 걸까, 그 사람들을 만난 그녀가 특이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긴장감 있게 책을 읽었다.  그 부분이 지나고 2/4는 느슨하게 늘어졌다.  역시 '이야기 감'이라는 건 책 한 권 내도록 팽팽하게 쓰기가 쉽지 않은 건가, 그런 작가가 되기란 보통일이 아닌 건가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읽은 마지막 1/4에서 사람을 울리고 말았다.

'함부로 지나쳐도 되는 풍경은 없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하지만 그런 풍경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풍경을 지나쳐버린다.  유명한 교회건물을 보기 위해 찾아가면서 가이드북에 코 박고 있느라 매일 같이 교회를 찾는 노부부를 지나쳐버리고, 유명한 사람의 묘지를 찾아가느라 이름도 봉분도 없는 묘지의 사연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귓구멍을 틀어막고 여행하면서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소리를 그냥 지나쳐버린다.  이 모습은 나의 모습이었고, 오늘날 지구 구석구석을 누비는 많은 여행자들의 모습이기도하다.  그들이 그날 그곳에서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풍경들에 대해서 좀더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고 싶어 들여다본 그녀의 여행기에서 내가 길 위에서 만났던, 그리고 잊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잘 풀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잘 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