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1년

[book] 가난뱅이의 역습

토닥s 2011. 10. 25. 23:29

마쓰모토 하지메(2009). <가난뱅이의 역습>. 김경원 옮김·최규석 삽화. 이루.

NHK의 워킹푸어에 실망하고 가능하면 일본발 책은 사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이 책은 최규석의 만화책인줄 알고 샀다.  책을 받고서 약간 당황했지만 그 묶음의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이다.  이유는?  책이 가벼워서.  물리적인 무게가 무지 가벼웠다.  이런 책 좋아한다.  무거운 책 들고다니는 건 너무 고역이다.

책의 무게도 가볍고 화법도 가볍지만, 번역을 잘한 건가?, 그렇다고 내용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을 즈음 한국의 야권 정당들이 통합을 하네, 합당을 하네 그러고 있었다.  그런 이슈에 관한 나의 입장은 워낙 선명해서 한국의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통합이든 합당이든 참 오래된 틀 속에서 요란하게 서로에게 상처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꼭 하나여야 한다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싶다.  서로 다른 걸 한 곳에 구겨 넣으려는 노력은 힘만들고 서로 공평하게 얻을 수 있는 게 있을지 의문이다.  상식적인 '연대' 아래 각자가 잘하는 게 좋지 않을까가 개인적인 의견.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락가락하고 있을때 읽은 책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마쓰모토 하지메가 중고물품 가게를 기반으로 해내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실험과 선거가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그의 문제접근 방식만은 새롭다.  그의 다양한 활동이 새롭지 않은 이유는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문제접근 방식이 새로운 이유는 마쓰모토는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좀 웃긴 표현이지만) 계급적인 이슈로 연결해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이른바 선거작전.

선거라는 공간을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칠 수 있는 공간으로 보고, 사실 선거가 그런 것 맞지 않나?, 지역의 중심지인 역 앞에서 DJ욧시의 공격적인 사운드를 배경으로 "이 망할 부자놈들아!"하고 마구 소리를 질렀단다.  그리고 주민들과 막말 토론을 벌였다.  또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에게 선거에 관심을 가지도록 독려했다.  생각보다 결과도 좋다.  당선되려면 2000표를 받아야 하는데 1000표 넘게 받았단다.  400표 넘겨 공탁금도 돌려받았단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한국야당이나 일본야당이나 참 똑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박장대소한 부분이 있다.  사실 웃을 일은 아니지만서도, 그게 우리 정치를 계속 20세기에 잡아두고 있으니.  그래도 웃긴 건 웃기다.  재활용품 가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들에게 재활용품을 판매할때 검증을 해야하는 PSE법에 반대하기 위한 시위를 준비하면서, 이 법은 대기업들의 압력으로 생겨난 아이디어 아니겠는가, 정당의 선전차량을 빌리기 위해서 전화를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정당의 선전 자동차다.  우리가 역앞에서 떠들면 화를 내는 주제에, 정당의 자동차가 확성기로 연설을 하면 그냥 두지 않나.  뭐 이런 게 다 있어!  자, 어떻게든 그 차를 빌려보자.  그래서 PSE법 실시에 반대하는 야당에 전화를 걸었다.  민주당은 빌려주기 싫단다.  뭐야, 인정머리 없기는!  공산당은 "일본공산당이라는 커다른 글자를 앞에 걸면 빌려주겠다"고 하니 머리털이 쭈뼛 섰다!  사민당은 "지금은 말이지, 자동차가 없어서..."하는 것이다.  아이고!  아니 이런 비상시에 자동차가 없다니 사민당은 그래 가지고 굴러가긴 굴러가는 거야?!  그런데 최후의 수단으로 옛날에 사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신사회당이라는 최약소정당에 전화를 했더니 "으응, 좋아, 마음대로 써"하는 것이다.  앗싸!  이럴때는 약소정당이 힘이 되는구나!


정신없고 대책없는 일본 젊은이들의 활동이라고 보기엔 생각보다 날카롭다.  시장자본주의에서, 특히 일본같은 국가주의(또는 군국주의 엇비슷)에서 가난한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장난처럼 진지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