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1년

[life] 결혼식날 1탄

토닥s 2011. 5. 22. 19:29

영국에 오기 전까지, 지비와 만나기 전까지 내 인생에 '결혼'이라는 걸 넣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지비를 만났어도 결혼식에 관한 욕심, 환상 그런 것은 없었다.  영국에 살기 때문에 법적인 절차는 중요해서, 비자를 받아야 하니까, 미리미리 했지만.
그런데 부모님은 달랐다.  지비가 처음 한국에 왔을때, "말을 전하라"고 내게 요구하고, "한국에서 꼭 결혼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결혼하고 멀리 살게 된터라 효도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따르기로 하였다.  지비도 우리 부모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한국에서만하되 가능한 지비의 가족들이 올 수 있는 기간에 맞추는 것으로.

결혼식의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첫번째는 내 비자 때문이었다. 내 비자를 신청한 것이 지난해 2월.  3개월이면 답이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자를 받아서 봄쯤 가을 결혼식을 준비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비자를 9월초에 받게 되면서 가을 결혼식은 물건너 간거다.  비자에 관한 답을 6개월 내에 줘야하는데, 6개월 가득 채워서 비자를 내준거다.  비자를 받고 보니 비자 발급일은 8월이었다.  치-.  그렇게 지난해 가을 결혼식이 물건너 가고, 결혼식을 대비해 아꼈던 휴가를 그냥 한국을 가면서 써버린거다.
두번째 문제는 결혼의 시기였다.  가을 결혼식을 생각하면서는 지비의 가족이 오려면 9월말이어야 했는데, 그땐 한국이 추석이어서 걱정을 했었다.  한국 사람들이 돈 쓸 일이 많은 시기므로, 또 다른 경조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부모님이 주저하셨다.  이 문제는 가을 결혼식이 어려워지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지비 가족이 올 수 있는 때는 겨울방학, 지비 형이 대학에서 교원 및 연구원으로 일한다.  결혼식을 준비할 시간도 빠듯하고, 이미 야외결혼식을 하려고 하고 있어서 겨울방학은 제외.  다음 시기는 부활절 연휴.  이래저래 부활절연휴, 공휴일, 그리고 휴가 하루 이틀 정도를 붙이면 8~9일 정도의 일정이 나와질 것 같고, 야외결혼식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부활절연휴 기간으로 잡았다.  그러면서 붉어진 문제는 항공권의 가격이었다.  부활절연휴는 유럽 사람들이 다 떠나가는 시기라서 항공권이 가격이 비쌌다.  그래도 윌리엄 왕자가 결혼하는 바람에 런던에서 나가려는 사람보다 런던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더 많아서 여느 부활절보다는 낫지 않았나하고 혼자서 생각했다.
세번째 문제, 아니 문제는 아니고 변수가 생겼다.  처음 유럽에서 가기로 한 지비의 가족은 아버지, 형, 그리고 형수.  항공권은 지난해 10월에 사두었다.  이번 3월에 폴란드에 가보니 형수가 임신을 한 것이다.  결혼초부터 아기를 가지려고 했으나 가지지 못하다가 결혼 10년만에 가지게 된 아기.  형수가 못가는 대신 여동생으로 이름을 바꾸어보려고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방법이 없어 그냥 그 항공권은 포기하는 것으로 정리되서 아버지와 형만 여행을 가게됐다.  그리고 영국에서 친구 실바나가 함께 가면서 우리 일행은 5명이 되었다.

실바나와 우리는 런던에서 출발하고, 아버지와 형은 베를린에서 출발해서 결혼식 일주일 전 서울에서 만났다.  서울 구경 이틀, 부산과 경주 구경 3일 정도하고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큰 비가 올 예정이라는 기상예보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지만, 보슬비는 내렸어도 큰 비는 오지 않았다.  보슬비도 결혼식 후엔 오지 않아 사진찍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게 치러진 결혼식 사진 1탄.  이 사진은 전업 사진가 우창님이 도움을 주셨다.



 



가마를 타고 입장을 하였는데, 언니 왈: "너 좋자고 애들 잡는구나." (. . );;
사실 우리는 가마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결혼식 과정이 담기는 앨범과 비디오가 포함된 결혼식 상품을 고르다보니 가마가 포함된 것이었을뿐 가마를 타고 싶어 탄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이 힘들고,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다리가 저려서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림도 괜찮더라는.


전통혼례에서 때마다 남자는 한 번의 절을, 여자는 두 번의 절을 해야하는 것이다.  투덜거리면서 하기로 했는데, 유생이 집례하는 것이라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절의 횟수가 문제가 아니라 앉고 일어서는 게 상당히 힘든 것이다.  낑낑 거리면서 절을 했는데, 언니들이 웃겨서 힘들었다고.  그래서 이 사진을 제외하곤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결혼식에 나보다는 많이 다니신 부모님도 완전 전통혼례는 처음 보신다고 하셨다.  전날 밤 결혼식 업체에서 준 준비시트와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집에서 연습을 두어 번 한 것으로 리허설은 끝.  별다른 큰 실수 없이 식은 진행되었다.  개인적으론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하얀 웨딩드레스보다 컬러풀해서 보기도 좋고, 소소하고 즐거운 에피소드들이 가족들에게 추억거리로 남은 것 같아 전통혼례로 진행한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내 얼굴이 달덩이처럼 나오기는 했지만, 여느 신부들처럼 살을 빼야한다는 스트레스도 없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지비 옆에서 영어 도움을 준 정민씨에게 감사드리옵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땐 돈도 생각보다 많이 들고, 우린 비행기 값이 가장 비중이 컸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 참 피곤하다 생각했다.  외국인과 결혼하고, 또 영국에서 산다는 이유로 결혼식 준비과정에서 홍역이 되는 것들을 내 마음대로 다 생략하고 진행했다.  그런 상황을 사람들은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서보니 그건 내 착각이었다.  '간단하게 겉치레 없이'라는 내 고집과 보통사람들이 결혼식에 기대하는 것 사이에서 엄마와 가족들이 맘 고생 있었다.  한국갈 날은 앞두고 한국 돌아가는 상황을 간단하게 파악한 나는 끝까지 내 고집만 고수하기 어려웠다.  고집은 내가 부리지만, 한국에서 계속 시달림을 당할 사람들은 내 가족들이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작은 정성이나마 영국에서 선물로 준비해 갔지만, 그 마음이 친척들 마음에 닿았는지는 미지수다.

어쨌거나 결혼식을 치르고 나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내 가족에게는 물론 지비와 지비의 가족들에게도 큰 선물이 되었다.  참고로 지비의 아버지는 태어나서 폴란드 밖을 벗어나본적이 없다.  처음에 결혼식 이야기가 나왔을 땐 우리가 비행기표를 사겠다 하여도 망설이셨다.  날짜가 대략 정해지고, 형 부부가 먼저 간다고 하자 흔쾌히 가겠다고 응답을 하셨다.  응답을 하시자말자 본인은 여권만들기며 남들보다 앞서 준비하셨다.  지비의 표현대로 '생의 여정'을 떠나오신 셈인데 한국에 있는 동안 누구보다도 한국과 한국음식을 즐기신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만날 때 마다 폴란드와는 다른 무엇에 관해서 물어오셨다.   예를 들면 일요일인데 공사장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  한국 입국할 때 전자여권이 인식되지 않아 청첩장을 보여주고서 입국했다는 등등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만들어 돌아갈 땐 가방 가득 막걸리와 매실주를 담아 가셨다. 

이 자리를 빌어 결혼식에 와주시고, 못와도 연락주시고, 축하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특히 우리 가족들 너무 고생했어요.  특히 더 많이 감사해요.

일단 결혼식 보고 1탄은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