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1년

[book]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토닥s 2011. 4. 5. 01:52

장하준(2010).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김희정, 안세민 옮김.  부키.

이 책은 3월 한달에 걸쳐 읽었다.  재미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책 읽을 시간이 없기도 했거니와 곱씹으면서 읽느라 그리 된 것 같다.

한국에선 아마존 베스트셀러라고 광고가 된 장하준 교수의 책.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지비도 이 책에 관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려진 책인 것은 맞는가보다.  나는 한국의 인터넷서점에서 광고를 보고 이 책을 골랐다.  그전에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기는 하였지만, 틈틈히 새책이 나왔는지 검색해가며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기에 인터넷서점의 광고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 같다.  그 뒤에 이 책에 관한, 장하준 교수에 관한 글을 보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책에 관한 글이었다기보다 '영국 캠브리지의 한국인 교수' 장하준이라는 사람에 관한 글이었던 것 같다.  '요즘(?)' 같은 시기에, 한국의 경제가 곤두박칠치고 있는 이 시기에 명쾌하고 예리한 지적이라나.  그런 종류의 글들이었는데 어느 글도 책 내용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기자들은 홍보물만보고 기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러고도 남는다.

어쨌거나 이 책은 경제, 경제학에 관한 책이다.  이제까지 자유 시장주의 경제학이 얼마나 해악을 끼쳤나를 밝혀주는 책이라고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러면 장하준 교수의 영역인 경제학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하는것 아닌가. 장하준 교수는 몇 번을 반복해서 쓰레기통에 쳐넣어야 할 것은 '자유 시장주의 경제학'이지 '경제학'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쯤에서 경제하면 자유시장주의와 동일시하는 우리는 약간 헛갈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렇게 자유시장주의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지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웬지 경제하면 자유시장주의 그런 것들과 동일시 되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장하준 교수는 23가지나 이야기하지만, 몇 가지 인상적인 이야기들만 꼽아보자면 단연 첫번째는 제조업의 중요성이다.
정보화사회니 지식사회니라는 말들로 제조업이 등한시 되면서 경제가 하향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설명.  사실 제조업이 등한시 된 것은 제조업의 역량과 효율이 최대화되면서라고 한다.  이 내용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조차도 대학에서 정보화사회니 지식사회니 하는 글들을 수없이 읽고, 공부했지만 그러한 개념이 도래되게 된 배경에 관해서, 그 결과에 관해서 한 번도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반성이 들었다.  자유시장주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 조차도 사실은 자본주의 토대 위에서 갑논을박하다보니 놓쳐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경제 또한 쇠퇴하기 시작한 미국과 영국.  그 시작은 벌써 1980년대 초반이었다.  그 쇠퇴를 감추면서 이른바 금융산업이라는 것이 부흥되기 시작했고, 실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가치로 분류되는 금융산업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현재의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도래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경제위기 속에서도 중국이 성장하는 것은 제조업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장하준 교수가 언급한 제조업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도, 무시 되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처우는 어떤가.

또 다른 인상적인 이야기는 보호무역의 필요성이다.  지금 선진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국가들은 보호무역을 기초로 성장할 수 있었다라는 지적.  그리고 보호무역으로 성장한 그들은 이른바 개발도상국, 후진국에게 불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다는 현실.  그러면서 여전히 자기들은 보호무역을 고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신세계가 열릴듯 환상을 심어준 FTA라는 것, 그것은 '자유롭게 평등할' 것이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환상을 깨는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깨어진다. 문제는 그 깨어진 환상은 우리에게 경제위기라는 결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 경제위기는 문제의 본질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찾을 여유를 빼앗은채로 또 다른 시장주의 정책을 해법이랍시고 내놓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우리가 IMF사태의 이유와 본질을 찾지 못한채로 IMF식의 대처방안을 받아들이고 또 다시 새로운 경제위기를 맞는 현재의 모습니다.  끊임없는 악순환이다.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불평등해져야 한다는 그의 설명.  불평등이 평등하다는 그의 주장이 경제인연합회에서 보면 얼토당토않는 이야기겠지만, 끊임없는 경제위기의 악순환의 한가운데 계속해서 가난한 우리들의 입장에서보면 맞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복지가 경제를, 사회를 더 발전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  복지가 잘 된 나라에서는 비록 일자리를 잃더라도, 사회시스템에 의존하며 다시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한 재훈련과 재생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여왔다.  한국에서는 해고는 살인이라지 않던가.  지금 쌍용자동차의 파업을 다룬 글을 보고 있어 그런지 복지시스템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면서도 꿈처럼만 들린다. 
사실 영국도 경제가 이례없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복지예산들이 줄어들고 있다.  날때부터 그런 든든한 사회시스템 속에서 자라온 이 사람들은, 그런 사회적 서비스가 줄어든다는 것이 현실에서 어떤 변화를 주게 될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늦지 않게 영국 사람들이 깨닫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이 책은 지금의 사회변화와 맞물려, 한국뿐 아니라 영국의 변화, 흥미롭게 읽었다.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지만, 쉽지만은 않아 권하기가 주저된다.  지비에게도 영문판을 사서 읽힐까 싶었지만, 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폴란드어판이 있다면 모를까.